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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Mar 24. 2023

무덤 산책로



2023. 3.


남편과 약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했다. 지난주에 갔던 나지막한 산에 또 방문했다. 미세먼지도 제법 있었고, 걷다가 살짝 길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즐거웠다. 걷는 내내 손을 잡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산책을 마칠 때쯤 땀이 송송 솟았다. 따뜻한 날씨였다.


한편 산 한쪽엔 관리하지 않는 듯한 무덤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못해도 100개 넘는 무덤들이 무질서하게 펼쳐 있었다. 이런 풍경은 난생 처음이었다. 묘지 앞엔 비석 뿐 아니라 지자체의 안내문도 드문드문 꽂혀 있었다. 산책로 정비 사업으로 묘지를 이전해야하니 연락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묘의 관리상태들로 보아 무연고 묘지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낡은 비석, 비죽비죽한 풀을 덮어 쓴 봉분, 빛바랜 조화들은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조차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는 신선한 생명들이 태연하게 돋아났다. 진달래, 개나리, 냉이, 목련, 봄까치꽃이 곱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니 꽤 괜찮은 산길이 아닌가. 지금은 내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서 걷고 있지만 머지않아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실을 되새기게 해주므로.


생과 사가 얽혀 있는 구불구불한 산책로. 그 길을 남편과 함께 즐겁게 걷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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