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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3. 2020

이따위 마음, 반짝이는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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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음감을 가진 걸 어른들께 발각되던 날, 나를 향했던 동그란 눈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 : 어떻게 ♭과 이 붙은 음까지 맞추는 거야?

나 : 홍시 맛이 난다고 해서 홍시라 생각... 아니 그게 아니고 B♭소리가 나서 B♭이라고 생각한 것이온데... 어찌 B♭이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때부터 어른들은 '얘는 피아노 전공 각'이라고 결론을 내리신 것 같다.

절대음감은 생각보다 대단한 게 아니다. <1만 시간의 재발견> 책에서도 실험으로 밝혀놓은 사실이지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훈련을 하면 대부분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다. 무엇보다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여하튼 나의 경우는 별 훈련 없이 그냥 절대음감이었다. 그렇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른 중 한 명이 나의 감독이 되었다. 직사각형 피아노 의자 위엔 나와 감독님의 엉덩이가 나란히 놓여 비좁았다. 그 비좁음도, 건반을 누르는 내 손가락을 0.1초 단위로 관찰하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손가락을 찰싹 때리는 감독님의 치밀함도, 감독님의 코 끝에 위태롭게 걸린 안경과 안경테 동그라미에 반쯤 들어간 깜빡이지 않는 눈까지도 무지 무진장 싫었다. 말대꾸는 언감생심, 내 의사를 표현하는 것조차 꿈도 꾸지 못할 집안 분위기 탓에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 낮엔 착하게 네네 하며 피아노를 쳤고 어른들이 잠든 밤이 되면 '너도 맞아 봐'라는 심정으로 발로 쾅! 쾅! 피아노를 찼다. 자다가 뒤척이느라 우연히 발로 찬 것처럼 가장하여 불규칙적인 박자로, 대신 감정을 실어 포르티시모의 크기로 쾅! 쾅! 찼다. 그것은 건반을 누를 때 보다 한층 정교한 동작이었다.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 쇼팽을 쳤다. 대가의 곡들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고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그냥 배우라고 해서 배웠지 이게 뭔 의미가 있으며 왜 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 많은 나는 사람들 앞에서 곡을 연주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내 마음이 반영되지 못한 피아노 공부는 재미없는 의무 노동 같은 것이었지만 '나 같은 걸 키워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고마움을 순종적으로 피아노 치는 것으로 닥치고 갚아나가자'라는 무의식을 품고 얌전히 끌려갔다. 이따위 마음가짐으로 피아노를 두드린 걸 나의 어른들이 아셨다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싼다고 하셨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따위 마음이었다.


반면 나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게 편하고 좋았다. 명화가 담긴 화집을 보고 싶어서 의자를 놓고 책장 위로 손을 뻗은 적이 잦았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의 어린 날부터 그랬다. 명화를 보며 '이게 도대체 무슨 그림일까? 되게 이상하네? 이건 좀 예쁘네?'라고 생각했다. 화집은 그림에 대한 호기심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게다가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지 못 그리는지 감시하는 사람이 없었다. 의무적으로 그려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림 그리기는 정해진 악보를 칼같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답이 없고 자유로웠기에 재밌었다.


중학생이 됐을 때 은인 같은 미술 선생님을 만났다. 화가로도 활동하시는 분이셨는데, 감사하게도 내 그림에 후한 평가를 해주셨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미술부에 들어갔고, 나중엔 미술을 전공하는 걸 추천해주셨다. 나는 집에 계신 어른들께 그 말씀을 전했다. 어른들은 흔들리셨다. 오랫동안 공부시킨 피아노에 미련이 있으셨지만 결국 나의 바람과 미술 선생님의 진지한 추천에 수긍하셨다. 한 가지 다른 사실은, 중학교 음악 선생님도 나에게 피아노 잘 친다고 칭찬하셨다는 거다. 다만 그 말은 집에 들고 가지 않았던 것 같다. 


꾸역꾸역 걸어간 피아노 길은 진로로 연결되진 못했지만 그 후 오래도록 많은 쓸모가 있었다. 클래식 장르는 아니었지만 피아노 칠 일이 계속 생겼다. 치다 보니 점점 잘 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재밌기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그래서 아쉽다. 클래식 안에 들어 있는 보석을 조금이라도 안 후, 스스로의 진심에서 우러나는 의욕을 동력 삼아 공부했더라면 지금처럼 클래식과 담쌓고 살진 않을 것 같아서이다. 

나는 아직도 클래식이 지루하다. 연주하는 건 물론이고 듣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어쩌다 억지로 들어볼 때도 있는데 한 곡을 다 듣는 것조차 어려웠다. 


피아노를 치지 않은 지 1년이 흘렀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속으로 피아노를 안 친 적은 거의 없었다. 예전처럼 악기를 발로 차버린 건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못 치게 됐다. 꽤 오래 유지해온 서브 재능에 먼지가 쌓이고 있지만 아깝진 않다. 영영 손이 굳어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한다 해도 미련은 없다. 클래식이 아닌 다른 많은 음악들을 즐기고 있고 그것으로도 내 삶 한쪽은 충분히 풍요롭다. 되려 피아노 연습할 일이 없으니 홀가분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한층 집중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 


부모는 인생의 선배이니까 아이의 진로나 공부에 대해 당연히 조언해 줄 수 있다. 아이의 재능이 보인다 싶으면 그걸 잘 개발시켜줘야 한다는 책임 같은 게 불타오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아이 본인에게 첫 동기와 최종 선택권이 있을 때 그 공부는 더욱 힘이 붙고, 꽉 찬 열매를 맺지 않을까.


나의 어른들은 아직도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다. 너도 이런 걸 해라. 누가 저런 걸 하던데 좋아 보이더라, 아니면 그런 것이나 해봐라. 마흔이 넘은 나의 진로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싶어 하신다. 그러실 수 없다는 걸 설득하는 대신 조용히 자유롭게 내가 좋아하는 길을 걷는다.


피아노를 손보다 발로 치는 걸 선호하던 어린이는 어느덧 엄마가 되었다.  갓 엄마가 되었을 때 '내 아이의 공부와 진로'에 대한 걱정도 시작됐다. 고민의 답은 책으로 귀착됐다. 

첫아이가 14개월일 때부터 도서관에 데려갔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15만 권 정도 준비했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할지, 어떤 재능이 있을지 아이도 나도 모르던 때.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 시켜줄 수 없기에 책을 통한 다양한 간접 경험을 열어주었다. 그러다 보면 마음 가는 것이 생기겠지, 관심이 점점 자라나겠지, 자기가 원하는 길을 좁혀가겠지, 마침내 자발적인 학습자가 되어 삶을 꾸려나가겠지,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보다, 공부고 뭐고, 아이들은 놀아야 된다. 진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책이 인생 공부의 도구도 되겠지만, 무엇보다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수많은 것들 중 책도 참 재밌는 놀잇감이라는 걸 아이에게 영업하고 싶었다. 첫애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둘째가 뱃속에 들어왔던 그 해. 만삭의 몸이 되었을 때도 배낭을 멘 채 마을버스 왕복 50분 거리의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20권씩 빌려 왔던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남편이 픽업해 준 날이 훨씬 많다).


말도 못 하는 아가를 위해 좋은 그림책을 부지런히 빌려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아이들 스스로 책을 골라 볼 만큼 자랐다. 애들 둘 다 공부와 관련된 학원은 한 군데도 안 다니지만 도서관은 제 집 드나들듯 한다. 내가 도서관에 가자고 강요하는 일은 없다. 되려 아이들이 호시탐탐 도서관에 가자고 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몇 달간 나오지 않아 도서관 관내 열람이 잠시 재가동되었을 때, 큰애는 기다렸다는 듯 매일 도서관에서 한 시간씩 책을 읽고 오기도 했다. 대여도 자주 한다. 많이 빌려올 때는 내가 배낭을 메고 같이 가지만 몇 권씩 빌려올 땐 애들끼리도 다녀온다.


유아였을 때와는 달리 내가 시간을 들여 양서를 엄선해 주지 않는다. 보통은 애들과 도서관에 가서 함께 즉흥적으로 눈에 꽂히는 책을 파바박 뽑아온다. 요즘은 그래픽 노블이나 학습만화, 저학년 문고, 유아 그림책을 즐겨 읽는다. 소위 수준 높은(?) 책엔 당최 관심이 별로 없다. 나는 훈수 두지 않는다. 뭘 빌렸든지 간에 아이들이 재미없어서 안 읽겠다고 하면 토 달지 않고 쿨하게 반납한다. 책을 걸러낸 건 좋은 책을 캐낸 것만큼 괜찮은 수확이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즐거움과 자신의 호오를 발견하는 유익은 정말 소중하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20대 때 였는데, 말도 안 되는 책부터 근사한 책까지 아우르며 넓은 스펙트럼으로 잡독雜讀을 했다. 거지 같은 책을 읽으며 배신감에 이를 간 날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그 책들 덕에, 덮어놓고 네네 하던 둔한 스펀지가 비판적 사고를 갖춘 인간으로 조금 변했으니까. 좋은 책이 얻어걸렸을 때의 달콤한 기쁨, 기어이 알아야만 했던 것들을 스스로 발굴해내는 보람도 컸다. 

내 아이들도 시시한 책을 읽을 자유와 자기만의 안목을 키워나갈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십수만 개의 호기심 중 무엇이 좀 더 반짝일지 스스로 찾아내고 그걸 스스로 더욱 반짝이게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그 여정을 즐겁게 걸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걸어가는 과묵한 짐꾼 노릇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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