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차 Oct 13. 2020

제발, 제발 손대지 말라

Copyright 2020. 녹차 all rights reserved.


아침 7시가 되면 초등 고학년인 첫애 방에서 알람이 울리고 곧 꺼진다. 몇 달 전, 아이가 아침 7시에 깨워달라고 부탁하길래 알람시계 이용을 권했다. 아! 그러면 되겠네요! 하던 첫애는 그때부터 알람시계를 잘 이용한다. 기상 후 곧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알아서 아침을 챙겨 먹으면서 책을 읽는다. 통밀빵과 주스를 먹은 그릇을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는다. 준비물, 숙제, 물 등 필요한 것을 자신이 챙겨간다. 목욕은 6살 때부터 스스로 했고, 도서관도 혼자 다녀오고 자기 옷장 정리, 책상 정리, 방 정리와 청소도 당연히 자기 몫으로 해낸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보내주었는데 수년간 즐겁게 다니고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온갖 것에 호기심이 많다. 학교 가는 것도 친구도 다 좋아한다. 자기가 알게 된 재밌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재잘거리며 말해주길 좋아하며 질문은 네버 엔딩이다. 우리 집의 1등 수다쟁이 되시겠다. 


첫애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단다. 나는, 엄마도 여전히 그렇다, 그래도 괜찮은 거다, 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방긋 웃는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무서운 기세로 통곡하던 예민한 아기가 이만큼 밝고 멀쩡하게 자립한 것이 무한히 감사하다.


초등 저학년인 둘째 아이의 아침 풍경은 약간 다르다. 첫애처럼 스스로 알람시계 맞춰서 일어나진 않지만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부스럭거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꾸물꾸물 일어난다. 가끔 졸려서 못 일어날 때도 있는데, 그 때도 내가 깨워주지 않는다. '이러다 지각할 수도 있다'라며 위협하지도 않는다. 대신 등교 시간 한 시간 전에 타이머로 60분을 맞추어 아이 책상에 올려 준다. 이만큼의 시간이 남았다는 것만 조용히 고지해 준다. 둘째는 타이머의 변화를 살피며 스스로 시간을 분배한다. 타이머가 끝나기 전 까지 아침을 꺼내 먹고, 이불을 개고, 옷을 갈아 입는다.


나는 둘째의 알림장 내용을 다 기억한다. 언제 받아쓰기를 하고 언제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 지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아이가 알림장 내용을 깜빡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나는 일단 지켜본다. 그러다 보면 준비물이나 숙제, 받아쓰기 예습을 놓치게 된다. 아이는 그런 것도 모른 채 명랑하게 등교한다. 그런 아이를 나는 웃으며 배웅한다. 아무것도 모른 체하며. 그랬던 어느 날, 학교 다녀온 둘째가 "엄마, 오늘 받아쓰기 하는걸 까먹고 공부를 안 해갔어요."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표정에 낭패가 가득한, 울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왔다. "그랬구나. 공부 안 했는데 받아쓰기 시험을 봐서 좀 당황했나 보네?", "네~ 그리고 많이 틀렸어요." 공책을 보여주는데 10개 중 9개 틀려왔다. "그렇구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그래도 한 개는 잘 썼네? 다음 받아쓰기 시험 땐 잊지 말고 미리 공부해갈까? 네가 도와달라고 하면 엄마가 도와줄게." 

아이는 이제 받아쓰기 시험 전날 잊지 않고 스스로 받아쓰기 급수표를 가져온다. 나에게 문장을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챙겨주지 않으니 아이 스스로 알림장과 시간표를 꼼꼼히 확인한다. 스스로의 작은 실패를 통해 느리더라도 한 뼘씩 밀도 있게 자란다. 나는 최선을 다해 한 걸음씩 물러서준다.


받아쓰기의 달인은 아닐지언정 둘째의 현재 꿈은 작가이다. 꽤 진지하게 매일 뭔가를 그리고 쓴다(주로 만화). 그때마다 몇 번이고 맞춤법을 물어본다. 나는 몇 번이고 가르쳐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나에게 보여주면서 사진도 찍어달라 한다. 나는 폭풍 감탄을 하며 장마철에 머리카락 정전기 날 만큼 머리를 싹싹 쓰다듬어 주고 사진을 한 땀 한 땀 찍어준다. 아이가 만드는 습작들의 첫 번째 독자로 산다는 건 너무 심한 행복이다.


많은 면에서 빨랐던 첫애와는 달리 둘째는 느긋하게 자랐다. 5살 때까지 "엄마 아빠" 밖에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어 치료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말귀를 다 알아들으니 언젠간 말도 하겠거니 생각했다. 초등 입학 때 한글을 제대로 못 읽었다. 학습지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중학생 되면 잘 읽겠지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벌써 유창한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었고 한글도 잘 읽는다. 좀 늦되었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던 아이가 씩씩하게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 한없이 감사하다.


서로 조금씩 다른 우리 아이들도 흡사 일란성 쌍둥이처럼 교집합인 부분이 있으니 바로바로 수학. 우리 아이들은 법 없이도 살 애들이다. 선행학습 금지법을 절대 위반하지 않으니까. 이 아이들 사전엔 오로지 '복습'뿐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인데도 집에 돌아와서 펼치면 사뭇 새로워한다. 둘 다 수학 공부할 때 눈물 시동을 부릉부릉 건다. 수학 문제집이 그렇게 감동적인 것인 줄 난 정말 몰랐었네. 


정규 교육의 틀에서 봤을 때 영재도 우등생도 아닌 극히 평범한 우리 아이들의 공부에 대해 나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필요한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할 만한 싹-자립심-을 잘 틔우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공부하는 모습보다 더 예쁜 건 둘이서 사이좋게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놀 때이다. 이렇게 많이 놀아도 되나 싶을 만큼 온종일 놀고 이렇게 공부 안 해도 되나 싶을 만큼 적게 공부해서, 애들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럽다.


대한민국 학부모가 된 지 어느덧 수년이 지났다. 이 땅의 많은 부모가 그렇듯 나도 자녀 공부에 관심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성적을 위한 공부는, 아이고 의미 없다. 아이들이 '인생을 살아나가기 위한 도구'로서의 공부에 눈을 뜨고, '평생 공부'로 삶을 풍요롭게 가꾸길 소원할 뿐이다. 구본권은 『공부의 미래』에서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며  "지식의 구조가 바뀐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학습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발적인 학습자가 되어 하는 공부야말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참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단군이래 최대의 화마가 덮쳤던 영동 산불에 대한 이야기가 김훈의 『자전거 여행 1』에 나온다. 영동 산불을 오래 연구한 정연숙 교수는 인간이 숲을 인공 복원하는 것을 학을 떼며 반대했다. "제발 내버려 둬라, 제발 손대지 말라. 제발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달라."라며 애원했다. 불탄 숲은 인공조림할 때보다 자연복원하는 쪽이 훨씬 속도도 빠르며 재난에 대한 저항력까지 생겨 건강하게 회복된다고 한다. 


스스로 잘 자라나는 자연의 순리는 나무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쓴 나무 의사 우종영은 "나무를 키울 때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아이도 나무 기르듯 하자고 마음먹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곽탁타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곽탁타는 당나라 시절 나무를 잘 기르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는 나무를 잘 키우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심고 난 뒤에는 건드리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 돌아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 뒤는 버린 듯해야 한다는 말입니다."라고까지 말했다. 나무 의사의 딸은 아버지의 바람대로 컸다. 스스로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어른으로, 단단한 나무처럼 자랐다.


유명한 육아 서적 중 『모신母神』이라는 책이 있다. 첫애 임신 중에 그 책을 읽으며 엄마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듯한 뉘앙스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수긍할 수 없는 내용도 꽤 되었다. 제목부터 모신이 뭐냐 모신이. 그러나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내가 자라면서 겪고 지켜봤었던 역사가 책에서 나올 땐 한숨을 쉬며 밑줄을 그었다. 책에 따르면 엄마(또는 주 양육자)의 열의가 높아질수록 아이들의 성장 의욕은 점점 낮아지며, 창의력은 간섭에 의해 시든다고 한다. 책은, 주 양육자가 아이에게 해대는 과하고 부당한 참견과 잔소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사실 내 성향은, 뭐든 대신해주고 싶고, 챙겨주고(또는 잔소리하고) 싶어서 움찔리는 쪽이다.

77억 인구를 겨우 16가지 유형안에 집어넣는 게 지나친 일이기는 하나, MBTI 유형은 자신을 거칠게나마 간단히 소개할 수 있는 방편인것도 같다. 나도 MBTI를 몇 번 해봤는데 그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주로 INFJ가 나온다. 20대 때 처음으로 그 성격유형검사를 했다. 그 때 INFJ 유형의 부모 노릇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부모로서는 항상 맹렬할 정도로 헌신적이다. 여성의 경우는 특이하게 다른 유형의 어머니와는 달리 아이와 심리적 공생의 연계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지나친 유대관계는 지나친 의존 관계로 나갈 수 있으며 때로는 어머니와 아이의 정신건강에 해롭다."


저 문장을 들은 뒤부터 불안했다. 나중에 내가 아이를 옭아매는 부모가 되는 건 아닐까. 사족 같은 잔소리와 참견을 주렁주렁 달고 다녀서 아이를 미치게 하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평생의 트라우마 같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성격유형검사 결과에 나를 끼워 맞추는 건 아니다. 안타깝게도 내 본성이 꽤 그러하다.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참고 돌이키는지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쓸데없이 병뚜껑을 열어주려다가, 입을 옷을 골라 주려다가, 아이가 흘린 물건을 치우려다가, '숙제는 없어?'라고 물어보려다가 이를 악물고 참는다. 


아이에게 온갖 것을 떠먹여주고 인생을 대리 설계해 주는 것은 빨리 좀 크라며 묘목 기둥을 수시로 뽑아올리는 것 같은 수작임을 애써 기억한다. 따뜻한 햇살 비치는 곳에 심어준 후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 흔쾌히 손을 잡아주는 것. 아이가 물어볼 때 웃으면서 친절히 대답해 주는 것. 그런 것이 양육자의 역할 아닐까. 사랑의 울타리를 친 후 그 안에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네가 좋은 대로 해. 네 마음대로 해.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변 어른들께선 우리 애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궁금해하신다. 문제집은 풀게 하느냐. 학원은 다니느냐. 영어는 좀 하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들이나 나나 다르지 않다. 그분들의 마음을 나는 귀하게 여긴다. 대신, 요리조리 넉살 섞인 대답을 하며 아이들을 커버 쳐준다. 우스꽝스럽거나 위태로워 보일지라도 간섭도 방치도 아닌 그 중간 어디매쯤에서 차라리 기우뚱거릴란다. 나무를 기르는 사람처럼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길 기도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이따위 마음, 반짝이는 호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