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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6. 2020

분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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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본 여름 숲과 나무는, 새털구름처럼 푸름이 비치는 투명한 구름이 아니다. 밀도 높고 오글오글한 적란운이 초록이 되어 땅에 그대로 앉은 모양새였다. 여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색종이 같았다. 그곳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초록 구름들은 더 진하게 부풀었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은 낮에 뜬 별이었다. 하지만 그 별은 지긋이 쳐다보기엔 눈이 너무 부셨다. 우리는 밤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렸다. 밤의 산들은 세상의 가장 끝에 선 검정이 되어 모든 색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변했다. 끝을 잴 수 없는 커다란 구멍들이 능선을 그리며 우리 곁을 스윽 스윽 흘러갔다.


은하수를 보러 가는 그 길에서 별자리 어플을 깔았다. 작은 구멍이 하나 둘 늘어나는 차창 밖 까만 하늘에 핸드폰을 갖다 댔다. "어떻게 이런 걸 만든 거야? 이게 말이 돼?" 아이들도 해본다. 감탄, 감탄. 대大감탄. "엄마, 사람들은 왜 이렇게 똑똑해요?" 어플에 뜬 낯선 별들의 이름을 서로 읽겠다고 아이들은 난리였다.


도시에선 불빛과 탁한 공기 탓에 별이 가리어진다. 우리 동네는 마천루 따윈 없는 나지막한 주택가이다. 도시 치고는 공기도 그리 나쁘지 않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도 밤에 별이 10개도 안 보인다. 별 너네들 좀 까다로운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나는, 팔이 안으로 굽는 어쩔 수 없는 도시인인 걸까.


은하수가 잘 보인다는 지점은 높은 산 어디매였다. 시골 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길이 불쾌할 만큼 깜깜했다. 그 속을 달리고, 오르고, 또 달렸다. 차의 전조등 외엔 빛이라곤 없었다. 산은 모든 빛과 색을 잡아먹고도 배가 덜 차서 시꺼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산에게 삼켜지는 내 몸에 힘이 꽉 들어갔다. 우리 말곤 올라가는 차도 내려가는 차도 없었다. 좁은 산길에 한참 동안 우리뿐이었다. 사람도 동물도 빛도 하나 없는 산길의 무서운 표정에 나는 자꾸 납작해졌다. 아, 이 정도는 되어야 밤인 거구나. 도시의 밤은, 되다 말은 밤이었구나. 산속으로 갈수록 기온이 떨어져서 앞 유리에 김이 서렸다. 장맛비를 걷어내듯 와이퍼가 바삐 움직였지만 김 서리는 속도는 더 빨랐다. 안 그래도 잘 안 보이는 전방이 한 단계 높은 수수께끼처럼 다가왔다. 기압이 귀를 눌러서인지, 암흑이 마음을 눌러서인지 나는 마른침을 거푸 삼켜댔다. 핸드폰엔 아까부터 '서비스 없음'만이 떠있다. 무엇보다, 이제 정말 목적지 코앞인데 차 유리 밖으론 인터넷에서 봤던 멋진 은하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도착했다. "어! 여기 사람 있네! 사람이다!" 너른 산속 주차장에서 몇 대의 차와, 10여 명의 사람들,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의 까만 윤곽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별은 아니었지만, 한참의 적막 끝에 본 사람들은 윤곽선 만으로도 웃음이 나도록 반가웠다. 이곳에 반가운 은하수도 있을까? 긴장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와아아~!!!!"


보인다, 많이 보인다. 차 안에서 별이 잘 안 보인 건 유리 선팅 때문이었다. 우리 차 선팅은 약한 편인데 역시 별빛은 까다롭... 아니, 섬세하구나. 별이 구름처럼 보이기도 했고, 콕콕 박힌 다이아몬드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것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서로 봐달라고 난리인 별들을 골고루 바라봐 주느라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태어나서 처음 본 은하수였다. "아아..." 하는 감탄사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 외엔 그 진한 첫인상을 풀어낼 길이 없었다.


아이들은 국자 자리가 보인다며 신기해했다. 토성과 목성이 낮고 또렷하게 보였다. 핸드폰을 들고 별자리 어플을 대어 보니 별과 별 사이에 선이 그어지며 이름이 달라붙었다. 생전 처음 불러보는 이름들을 더듬더듬 불러주었다. 이 날 낮 기온은 35도로 무더웠는데, 여긴 꽤 서늘했다. 둘째 아이가 몇 분 지나지 않아 춥다고 칭얼거렸다. 나는 차마 "그럼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이를 꼭 안아주며 '다음에 또 오게 되면 긴 옷 챙겨야지'라는 생각만 했다. 절대로 벌써 집에 갈 순 없었다.


몇 분간 감탄하며 고개 젖혀 별을 보니 급성 목 디스크 환자가 될 것 같았다. 남편이 차 트렁크에서 돗자리를 꺼냈다. 작은 크기여서 아이들 둘이 먼저 누웠다. 아이들 입에서 나온 소리, "우와~!!!" 조금 뒤 아이들이 일어나고 나와 남편이 나란히 누웠다. 내 입에서 나온 소리도, "우와아~!!!!" 


누워 보니 다른 것은 모두 사라지고 시야에는 오직 별, 별, 별뿐이었다. 시인들을 붙잡고 여쭙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움을 식상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고스란히 옮길 수 있나요. 난 이렇게 밖엔 말하지 못했다. "도시에서 사는 건 너무너무 멍청한 일이었잖아!" 매일 밤하늘에 이런 것이 펼쳐지고 있었어? 이런 걸 못 보고 살았다고? 밤에도 눈앞이 훤한 도시에서, 커다란 은하수를 분실한 줄도 몰랐구나. 무섭기만 했던 까만 산은 고마운 분실물 센터였다.  


'아아~'라는 소리를 한 200번쯤 했을 때 큰애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행복해요?" 반면에 둘째는 "이제 우리 잘 시간 아니에요? 이제 우리 가야 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큰애는 둘째를 챙기며 "동생이랑 차에 타고 있을게요. 엄마 아빠 누워서 별 더 봐도 돼요."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저만큼의 배려를 하고 있었을까. 아이들을 저만큼 따뜻하게 사랑해 주었나. 복잡한 건지 따뜻해진 건지 헷갈리는 마음이 되었다.


그때, 커다란 카메라를 든 분이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사진은 메일로 보내줄 테니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셨다. 안 그래도 핸드폰 카메라로는 까만색 말곤 찍히는 게 없어서 눈으로만 별을 찍어대고 있었는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사방이 워낙 어둡다 보니 촬영 노출 시간이 제법 소요됐다. 작가님이 카운트하는 동안 우리들은 손가락으로 별을 가리키는 포즈를 한 채 최선을 다해 꼼짝 않고 서 있어야 했다. 별들은 촘촘히 선을 그리며 하늘을 달렸고, 습하고 서늘한 바람이 검지를 훑었고, 다닥다닥 나란히 서 있는 가족들의 온기가 팔에 닿았고, 숫자를 거꾸로 세는 명랑한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걸 구경하는 대여섯 명의 웅성거림이 정겨웠고, 나는 참 오랜만에 아이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깜깜해서 얼굴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목소리들이 오갔다. 다 되었습니다! 잘 나왔네, 잘 나왔어! 이리 와서 한 번 보세요. 우와 고맙습니다. 이것도 다 추억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아니겠습니까. 즐거운 시간 되세요.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열댓 명 무리들끼리의 짧은 소란스러움 속엔, 저 아래 땅에서의 휘황찬란한 문제들 따위는 완전히 분실된 상태였다.


집에 안 갈 순 없어서 차에 탔지만 아쉬움은 우주처럼 광대했다. 자동차 시동은 쉽사리 걸리지 않았다. 창문 네 개가 자꾸 지잉 지잉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머리까지 차 안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수 분이 걸렸다. 별들아, 잘 있어. 다음에 또 보자. 안녕 안녕. 


덜컹거리며 산길을 내려오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급하게 핸드폰 메모 어플을 띄웠다. 은하수를 되찾은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 멀미가 오든 시력이 저하되든, 오타를 별처럼 많이 흩뿌리며 방금 전의 조우를 서둘러 기록했다. 

왼쪽이 토성, 오른쪽이 목성, 계속 헷갈렸지만 이젠 잊지 않아야지. 보이진 않았지만 그 사이에 명왕성도 있다고 했지. 우리처럼 별을 보러 왔던 작은 토끼와 아기 고라니도 잊지 말아야지. 토끼와 고라니가 야행성인 것도 처음 알았네. 


내려오는 길에,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차를 한 대 마주쳤다. 저분도 별을 보러 가시는구나. 밤이 더 깊어질 테니 우리보다 좀 더 선명한 은하수를 보시겠다. 내 일처럼 흐뭇해서 웃음이 나왔다.

둘째는 벌써 곯아떨어졌다. 큰애는 "엄마 나는 속은 피곤한데요 겉은 하나도 안 피곤해요. 안에서는 하품이 나오려 하는데요 입이 안 벌어져요."라고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산을 다 내려와 시골길에 접어들었다. 거기서도 잠깐씩 차 속도를 줄이고 창을 내려 하늘을 확인했다. 여기서도 은하수가 반절은 보여요. 그러네요. 열린 창문 안으로 풀벌레 소리도 들어왔다. 달리는 차의 소음을 뚫으면서도 조금도 우악스럽지 않은 신기롭고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집에 가까워 올수록 하늘의 별빛은 수십 개씩 꺼져가고, 땅의 불빛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자동차 후미등, 신호등, 간판 불빛, 가로등 같은 인공의 별빛이 눈을 쑤셨다. 그것들은 도시 소음을 배경음악 삼아 번들거렸다. 인간이 만든 빛과 소리는, 신께서 만드신 빛과 소리와 이다지도 다를까.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에서 윤성철은 "인간은 별빛을 먹고사는 존재"라고 했다. 시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태양이라는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여 식물의 광합성을 유발하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우리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물론 얼어 죽기도 할 테고).  또한 같은 책에서, 인체도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적외선) 점으로 볼 때 사람도 별이라고 칭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은 밤의 별빛도 챙겨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은하수를 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정말로 낮의 별빛만으론 모자라다. 그럼에도 지금껏 내가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고 살아온 건, 순전히 날 사랑해 준 이들의 빛 덕분이었겠지.


집에 돌아오니, 큰애가 나를 꼭 안고 물었다.

"엄마, 오늘 별 봐서 즐거웠어요?"

"응 즐거웠지, 너도 좋았어?"

"네~. 으응, 내가 이번 휴가 전에, 엄마가 별 보러 가고 싶어 한다고 아빠한테 말했어요."

"그랬구나. 네 덕에 엄마가 별을 다 봤네."

"어... (울먹울먹) 엄마가 오늘 즐거운 것 같아서... 좋았어요... (눈물 뚝뚝)"

"근데 왜 울어? 평소엔 엄마가 안 즐거운 거 같아?"

"음... 저번에 엄마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다고 했잖아요."


아이들 앞에서 너무 솔직하게 말했던 걸까. 피곤하다고 엄살을 너무 티 나게 부렸나. 피로에 찌든 내 얼굴과 투정의 말들이 큰아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 같아 정신이 아찔했다. 앞으로는 나도 별답게, 조금 더 반짝반짝 웃어야겠구나 싶었다.


아이를 보듬고 말했다.

"고마워, 엄마 별 보게 해 줘서~"

"나도 고마워요~"

아이는 나를 계속 꼭 안고 있었다.


내 버킷리스트가 은하수를 보는 것임을 큰애가 알게 된 날, 아이는 자기 아빠에게 쪼르르 가서 그 사실을 전했다. 큰애의 속삭임과 남편의 속삭임은 몇 걸음 떨어진 내 귀에 다 들렸다. 여름휴가가 다가오자 남편은 계속 별을 보러 가야 한다며 이리저리 검색했다. 은하수를 보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도시의 빛 공해를 피해야 하며, 달도 뜨면 안 되고, 미세먼지 농도와 습도도 높으면 안 되고, 여름이어야 유리했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숙박하는 건 지양해야 하니 최대한 가까운 곳에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했다. 이 조건을 다 맞추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미안해서, 지금 당장 별 보러 가지 않아도 된다며 계속 사양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결국 가장 적당한 분실물 센터를 찾아내고야 말았고, 나를 거기로 데려갔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 생애 유일한 버킷리스트를 생각보다 빨리 이루었다. 그토록 사양한 사람치곤 너무 민망할 만큼, 나는 은하수 아래서 시종일관 너무 좋았다.


며칠 후 사진작가님이 찍어주신 사진이 핸드폰으로 도착했다. 그날의 충만한 기쁨이 밝게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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