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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6. 2020

이렇게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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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기 전에 인사를 하러 온다. 인사는 몇 단계로 구성돼있다. 먼저 날 안고 "잘 자요, 사랑해요, 좋은 꿈 꿔요, 수고했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한다. 그 후 아무 말 없이 10~20초 정도 꼬옥 안고 있는다. 생글생글 웃으며 내 볼에 뽀뽀를 한다.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인사를 마무리한다. 도돌이표에 서서 대기하던 다음 아이가 다가와 "잘 자요"로 출발하는 달달하고 긴 인사를 다시 시작한다. 

오늘은 큰 아이가 자러 가다 돌아서서 말했다. "엄마가 아이를 한 명 더 낳으면 자기 전마다 엄마 팬미팅 하는 것 같겠어요." 그 말 듣고 "줄을 서세요 줄~. 어디에 사인해드릴까요?"라고 말하니 아이는 깔깔 웃으며 "여기요~"라며 자기 등을 보였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가서 똑같이 인사한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밤마다 이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저런 걸 가르친 적이 없다. 다만 나와 남편의 인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길고 달달했을 뿐이다. 아이들 인사가 사랑스러우면서도 소오름인 이유는 그것이 우리 부부의 인사와 나란히 놓았을 때 감별이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복제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딴엔 사각지대에서 포근함을 나눈다고 나눴는데 아뿔싸. 애들 눈과 귀로 다 들어가 버렸구나.


가족 구성원은 서로에게 완전히 발가벗겨진다. 저마다 모든 게 폭로돼 버린다. 자기만의 방이 있다 한들 완전히 감춰지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식의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애들 눈에 안 띄는 데서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문 닫고 대화 좀 할라치면 아이들이 득달같이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것이다. 아빠 엄마가 뭐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쳐다본다. 입으로 "빨리요 빨리~"라고 말하면서 왼쪽 눈 위엔 '고' 오른쪽 눈 밑엔 'ㅠ'를 띄운다. 정말이지 사생활이라곤 없다. 가족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공동체이다. 뭐든 남김없이 공유된 후 조회 수가 백 단위로 뻥 뻥 올라간다. '좋아요'나 '싫어요'가 표정과 말로 드러나고 면전에서 피드백이 뜬다. 하지만 어떤 가정에선 그런 피드백을 마음이나 일기장 같은 데 숨겨두는 편이 낫기도 하다.


나는 5학년 일기장에 주술관계를 초월해가며 이렇게 썼다. "우리 집에 있기가 싫다. 집에 오면 즐거움이 달아난다... 화목한 집이면 좋겠다. 모든 소원 중에서 정말 소원은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 내 꿈은 엄마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 야단도 안 칠 것이고 공부 잘하라고 격려해 주는 엄마... 빨랑 엄마가 되고 싶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종종 화목했다. 남이 봤을 때도 대체로 화목했을 것이다. 나는 많은 날을 화목한 가정을 바라며 기도했다. 나는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너무나 사랑받고 싶었다. 부모님은 당신의 삶을 다 바쳐 자녀를 키워내셨다. 나는 어른들께 붙어 더부살이 식물처럼 생존했으므로 조금의 잘난 척도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하늘 너머까지 닿아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부모님과는 조금 다른 어른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꿈꿨다. 화내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없는 가정. 물건 던지는 사람이 없는 가정. 일관성 없는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가정. 자기 기준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가정. 조롱이나 비난의 말이 사라진 가정. 불신과 질책의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 가정. 솔직한 말을 공격과 반역으로 판결하지 않는 가정. 외모에 손가락질하지 않는 가정. 더 잘하라고 말하지 않는 가정.


남편은 마치 그런 가정 같은 존재였다. 남편 옆에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 남편과 같이 있을 땐 불확실한 일기예보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없었다. 그의 앞에선 나의 바닥을 드러내도 안전했다. 해저 구만리 바다의 깊고 점잖은 사랑을 보장받는 듯한 참 괜찮은 나라. 그곳의 시민이 된 것 같았다. 이렇게 좋은 나라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남편을 볼 때 살짝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쉽사리 감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환장하며 좋아하는 꽃, 나무, 풀, 그리고 온갖 동물들을 남편은 감흥 없이 바라봤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도 역시 감탄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일에 놀라거나 감동하는 법이 없는 그를 보며 짐짓 불안해졌다. '나중에 자기 아이들에게까지 무덤덤하면 어떡하지?' 남편에게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아이를 임신했을 때 10개월 내내 진지하게 기도했다. 남편이 아이를 많이 사랑하고 그 마음을 크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그 이전에 나 자신을 위해서는 손등에 손톱자국이 나도록 손 꽉 쥐고 기도했다. 조부모님과 그의 자녀들, 부모님과 그의 자녀들, 부모님과 그의 형제들의 역사를 보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관계'에 대한 걱정이 발아됐다. 나는 내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나의 새로운 가정 역시 안온하지 못한 건 아닐까? 가늠되지 않던 미래의 관계가 곧 현실로 다가올 참이었다. 『부모 자녀 실록』이라는 제목이 적힌, 속이 흰 종이뿐인 책이 예비엄마에게 주어졌다. 두꺼운 책을 쥔 사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애인도 없던 20대 초부터 가정이나 부부, 결혼에 대한 책을 근심하며 탐독해왔다. 마침내 임신을 했을 땐 기쁨과 염려, 위기감 같은 게 마구 뒤섞여 마음에 어지러운 마블링이 생겼다. 임신 10개월 동안 하루하루 카운트다운하며 산더미 같은 육아책을 끼고 수험생처럼 공부했다. 


나의 좋은 나라에 인구가 한 명 늘어난 날. 새 국민은 몹시 예민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으로 쌓은 밑천이 드러났다. 순식간에 육아 열등생이 되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아이 키우는 게 이런 거였어?'라며 나도 엉엉 울었다. 2000방 사포처럼 밀도 높았던 내 어른들을 향한 촘촘한 섭섭함에 느닷없이 금이 가기도 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주신 것만으로도... 아니 저 '만'이라는 의존명사는 잘못된 것이다. 극진한 치성을 당연한 의무인 양 한정시키는 뉘앙스부터 부당하기 짝이 없다. 한 사람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기 위해 흘리는 땀과 눈물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를 돌보다 보면 눈앞에 물이 차올랐다. 잔병치레하던 나를 키워낸 부모님의 수고가 복잡하고 뜨뜻한 기억이 되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로 체험되며 기억될까. 부모라는 길의 출발점에서 구만리 앞 도착점을 내다보았다. 무질서하고 빽빽한 안개가 내 시야를 막고 있었다.


내가 육아로 전전할 때 남편은 진로를 붙잡고 긍긍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나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둘 다 상처가 만들어진 배경을 답습하지 않으려 나름 애쓰며 살았다. 우린 따뜻하고 진중한 어른이 되었지만 상처 때문에 어딘가 유약했다. 일터에서 부어지는 부당한 말과 중한 업무로 남편은 날로 과적되었다.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도 남편은 가족들을 보며 웃어주었다. 웃는 얼굴의 얇은 피부 밑으로 슬픔이 실핏줄처럼 비쳤다. 그러다 너무 힘들다며 처음으로 그가 울었던 날. 내 마음속 웃음은 잠깐 멸종되는 듯했다. 남편에게 있는 눈물을 모두 짜내어 주고 싶어서 오랫동안 꼭 안아주었다. 나는 당신 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너무 슬펐다.


잘하는 것 없고 버벅거렸지만 우리는 그런 서로가 괜찮았다. 어떤 모습에도 '괜찮다, 이미 충분하다, 사랑한다' 말하며 살았다. 밥을 지어먹고 아이들을 업어주고 서로에게 웃어주고 가기 싫은 곳으로 매일 출근하고 짬을 내서 그림 그리며 하루하루 살았다. 그런 하루가 5500송이쯤 쌓였다.


올해 남편 생일 때 카드에 이렇게 적어줬다. "당신을 만난 지 벌써 16년이 되었다는 게 이상해요. 16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서 불만이에요. 앞으로의 시간은 세 배나 네 배쯤 천천히 흐르길 기도해야겠어요. 오늘은 당신의 생일이네요.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이 옳지만, 그중에서도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건 정말 잘 하신 일이 아닐 수 없어요. 박수 짝짝짝. (중략) 당신이 없었다면 진짜 큰일 났을 거예요. 무진장 슬펐을 거예요. 다행히 그 반대라서 나는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하고 신나는 아내가 되었지만요.(중략)"  큰애는 색종이로 하트가 가득한 카드를 만들었다. 표지에는 '훌륭한 아빠에게'라고 썼고 안쪽엔 '생신 축하드려요'라는 말로 6행시를 지었다. 둘째는 아홉 개의 빨간 하트와 남편이 좋아하는 야구에 등장하는 야구공과 배트를 공들여 그린 후 축하와 사랑의 문구를 더했다. 

일터에서 항상 고단한 남편이지만, 집에 돌아올 땐 언제나 노래를 부른다. 남편의 흥얼거림은 도어록을 누르는 덜컹덜컹 소리보다 훨씬 먼저 들린다. 아이들은 도어록 덮개가 위로 올라가는 탁! 소리를 듣자마자 아빠다!! 라며 신발장 앞으로 날아간다. 아빠 앞에서 발에 용수철 단 것처럼 뿅뿅 뛰고 바람 인형처럼 팔을 펄럭인다. 꽃과 동물에 여전히 무덤덤한 사람, 산수유를 보고 개나리냐고 묻기도 했던 남편은 두 아이들에겐 지구만큼 다정한 아빠가 되었다. 애들과 얼굴을 비비고 사랑의 말을 하고 매일 안아주며 웃어준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존재가 되어갔다. 생각할수록 노래가 나오고, 하트가 뿅뿅 솟고, 시간의 속도를 늦춰서라도 오래 함께이고 싶은.


그럼에도 완벽과는 거리가 있어서인지 바깥사람들로부터 여전히 염려와 불신의 말을 듣곤 한다. 100의 80을 해내고 있을 때 '넌 왜 20은 못하고 있냐'라고 한심해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 확신이 모자란 사람은 그런 말에 마음이 움찔한다. 하지만 나는 새 나라의 시민이다. 내 마음을 가꾸며 행복 추구권을 행사한다. 저런 말은 볕 좋은 곳으로 가져가면 된다. 행복을 건드린 말들을 고추 말리듯 늘어놓는다. 하늘로부터 온  참 빛에 기대어 내 것이 아닌 말을 골라내고, 괜찮은 몇 개는 주워 담는다. 웅크려 앉아 말 고르기 작업을 하는 내 뒤통수와 등에 햇빛이 내려와 앉는다. 노오란 색과 고소한 향의 빛은 마음을 만져주며 어두운 말들을 표백시킨다.


오늘도 100을 꽉 채우지 못하는 완벽하지 않은 하루였다. 내 가족들과 항상 웃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게 잘 풀리는 날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난 여기가 너무 좋다. 오늘은 여러 가지로 힘든 날이어서 세 번 울었지만 힘들다는 말을 해도 되고 울어도 괜찮은 우리 집이 좋다. 내 유약함에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우리 가정이 좋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 이보다 더 좋은 곳을 나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모리 교수님은 그 세상을 조금 더 작은 공간으로 압축했다. "... 정신적인 안정감이야. 가족 말고는 세상의 그 무엇도 그걸 줄 수 없어. 돈도, 명예도... 그리고 일도." 


국민은 네 명뿐이고 GDP는 낮고 서로 사랑하는 나라에 오늘도 밤이 내렸다. 남편과 나와 큰애와 둘째는 서로의 팬이 되어 껴안는다. 눈물 자국 위로 사랑의 팔을 붕대처럼 감는 시간.  참 좋은 나라의 밤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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