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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7. 2020

SNS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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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친구들은 모두 멀리 산다.  쉬 만나기엔 너무 떨어져 있다. 어른에게 주어진 노동의 갯수는 1뒤에 0이 23개 붙는 아보가드로수만큼이다. 일에 치인 어른들은 서로의 근황을 SNS로 확인하는 것에 더 만족해 한다. 나도 빡빡한 생활인이 된 지 오래. 하루치의 노동을 포기하고 기차를 타고 달려가 친구 얼굴 보고 오는 게 쉽지않다. 아무렇게나 하루를 째 버리고 친구들에게 달려가지 못하(않)는 어른이 됐다. 주부 겸 프리랜서에게 주말은 평일과 일반이다. 휴가와 명절 때도 친구들은 친지에게 밀려난다. 평소 못 보던 가족 어르신들의 좌표를 찍고 오는 것만으로 휴가와 명절은 빠듯하게 지나간다.  걔네들과 보냈던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던 시간을 일부러 잘 떠올리지 않는다. 몇 초만 떠올려도 너무 그리워서 마음이 찌르르 아파오니까. 친구들에게 '우리 꼭 만나자' 대신 '정말 보고싶다'라는 말 밖에 못하는 나는, 그들이 그립다.


SNS는 그리운 친구들을 보여주는 기특한 창문이었다. 이렇게 발전된 세상이라 다행스러웠다. 우와 저 집 애가 벌써 초6이라고? P가 이직을 했구나. K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네. 속속 올라오는 친구들의 실시간을 손가락으로 휙휙 훑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가졌으나 내게 없는 단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해시태그 뒤에 붙은 승진, 해외여행, 전시회, 출판, 개업 같은 글자들. 나는 승진할 회사도 없고 전시회를 여는 건 추억속의 일일 뿐인데. 나의 실시간엔 왜 저런 단어가 없을까, 라는 생각이 곰팡이처럼 피어났다. 그 생각은, 난 뒤떨어졌을지도 몰라, 라는 의혹으로 귀결됐다. 친구를 향한 순전한 그리움이 그닐거리는 부끄러움과 불만족으로 변형되었다.


구경도 못해보던 단어들을 구경만 하기를 그치고 나도 뭔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나도 잘 살고 있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생존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낸 하루를 필터로 분칠하여 생색냈다. 영 점 몇 초의 찰라를 담은 그 이미지로 나의 긴 하루를 뻔뻔하게 대변했다. 사진 밑에는 얄팍한 행복와 과장된 슬픔을 뱀다리처럼 질질 적어 달았다. 친구들은 반겨주었다. 짜릿하면서도 뭔가 찜찜한 첫 게시글이었다. 


SNS는 무료 광고판이기도 했다. 나는 프리랜서 그림 노동자였다. 포트폴리오를 뿌려야 하는 나에게 SNS는 쓸만한 도구였다. 그렇다고 내 계정을 방방곡곡 알리는 식은 싫었다. 맞팔이나 댓글로 아무나의 팔로우를  은근히 조르거나 대놓고 부탁하는 스타일은 못 되었다. 나의 광고 방법은 내 그림에 몇 줄의 코멘트를 달고 그보다 훨씬 장황한 해시태그 뭉치를 붙이는 것이 전부였다. 홍보는 해야겠으나 쓸데없이 수줍었기에 오로지 해시태그라는 미끼로 조용히 낚시줄을 던진 것이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홍보 그 자체인 게시글이 내 계정에 점점 많아졌다. 아톰의 결합인 내 그림은 비트의 세상 속에서 희한하고도 미미하게 팔렸다. 생업이었기에 열심히 매일 게시했다. 진심이었고 절박했다. 곡진하게 전단을 뿌려댔지만 수입은 알바비에도 못 미쳤다. 돈 버는 데 소질없는 나의 불가역적 운명을 다시금 깨달았다. SNS의 도움을 받을 때나 받기 전이나 그림 노동의 결과는 언제나 대단치 않았다. 그림 그려서 돈 버는 건 역시 피닉스 같은 일인가. 몸을 불태워 그려댔지만 정당한 대가는 상상속에서나 지급받는 식이다. 성공신화에 인용되는 영원불멸의 그 새는 신화에만 존재한다. 그림 노동과 광고 노동이 부끄러웠다는 것 까진 아니다. 그냥 좀 신산했달까.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이렇게 네 개의 광고 등짐을 동시에 둘러멨던 그때의 나에게 댓글을 달아본다. '일상 생활 가능?'


그림 광고는 신경써서 올렸지만, 일상 게시글까지 공들일 에너지와 시간은 없었다. 나의 밀착 사생활을 시시콜콜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나를 요마안큼만 보여주는게 좋았다. 그 선을 넘기면 안전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지간히 까다로운 관종이랄까. 온라인에서 편하게 꺼낼수 있는 나와, 오프라인에서 보여지는 나는 달랐다. 두 세계에서 두 사람처럼 달랐다. SNS에서는 내 그림을 적극적으로 알려댔는데 오프라인에서는 6개월된 아기처럼 낯을 가렸다. 낯가림은 나의 상당한 일상이다. 확실하게 친한 관계 외엔 나를 비정할만큼 오픈하지 않는 폐쇄적인 사람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 SNS를 덜 가까운 지인들에겐 구태여 알리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군가가 SNS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는 날이 왔다. 나의 자기노출 통제선은 박살났다. 재난경보가 울렸다. 내 사생활과 근면성실한 셀프 홍보글들을 모조리 봤노라고 그가 알은체를 했을 때 37.2조개의 내 모든 세포는 일제히 기함했다. 새벽에 온 불청객 같은 충격이었다. 그는 나의 다른 애매한 지인들 틈에서 스피커로 변신해서 내 SNS의 내용을 2배속으로 출력해댔다. "왜말안했어요?그림잘그리더라!그거어떻게하는거에요?내얼굴도좀그려줘요~호호호애들미술은엄마한테배우면되니좋겠다~근데미술학원보내는게좋나요?" 이런 일은 불행히도 자주 일어났다. 그들은 온라인의 나와 오프라인의 나를 억지로 동기화시키려 했다. 오프라인에선 훈수와 참견을, 온라인에선 댓글까지 남겼다(통곡). SNS를 네 개씩 돌리는 주제에 선택적 노출을 막연하게 바랐던 내가 바보 등신이지. 공들여 적은 해시태그들은 그야말로 '누구나' 나에게로 훅 들어올 수 있는 웜홀 같은 것임을 겨우 알게 됐다. 


중뿔나게 쑤시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태초부터 영원히 거리두기 0단계인 SNS 세상은, 관계를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나에게 점점 불편한 곳이 되었다. 통제할 수 없는 관계, 열등감, 가식, 비효율, 시간낭비, 시력저하 같은 것들이 SNS에서 탁월하게 극대화 됐다. 그리움 해소, 생업 홍보, 나를 증명하는 것은 설 자리가 좁았다. SNS와 손잡는다고 한들 삶의 '아쉬움'이 마술처럼 '쉬움'이 되진 않구나.  흘러가버릴 사진 한 장과 하나마나한 말 몇 줄에 기대기엔 삶은 거대하고 복잡하다. 86400초의 분량을 가진 하루 중 공들여 편집된 1초. 그것은 나의 참된 삶일까. SNS의 짜릿한 첫인상이 희석되고 등짐의 무게는 가중됐다. 피곤한 표류를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의 탈퇴버튼을 터치했다. 어플도 싸그리 삭제했다. 친구 소식이 궁금할 땐 카톡이나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새 블로그를 팠다. 보여져야만 의미 있는 그림과, 폐쇄적이면서도 관종인 다중인격자에겐 숨쉴 공간이 하나는 필요했다. 


신규 블로그를 만들 때 내 이름을 버렸다. 우리 동네 이름, 자주 가는 도서관 이름 같은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가족, 친구, 지인 그 누구에게도 새 블로그를 알리지 않았다. 나의 매일매일을 그들에게 증명하고 전시하는 걸 그만뒀다. 애매한 지인에게 나를 들키는 스트레스도 덩달아 차단했다. 불특정인이 된 나를  불특정 다수에게 소개했다. 내 이름표에 적힌 고유명사 말고 내 속의 고유함을 내가 정한 분량 만큼 보여주었다. 양지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새 블로그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다. 비트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그들과의 사귐이 언젠가 아톰의 영역으로 넘어올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은 없었다. 그들은 오프라인의 나를 찾아냄으로써 날 경악시킬 이유도 방법도 없다. 나의 구획이 침해될 걱정이 없어 안심이다. 점잖은 새 친구들과의 우정은 다육식물처럼 느리고 포동포동하게 자랐다.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내 맘대로 친구 삼는 중이다. 다양한 SNS의 글자들에서, 다 못 읽고 죽을 첩첩한 희망도서로 읽을 거리를 옮겼다. SNS의 글자와 인쇄된 글자는 결이 달랐다. 좀 더 신중하고, 좀 더 진하며, 좀 더 깊은 쪽은 책이었다.


석 달 전부터는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의 피곤함과 트리밍된 남의 삶을 보는 것의 고단함을 잊은 건 아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남의 삶도 세밀히 관찰해야 하는 작업을 하는 건 무슨 경우일까. SNS에서 보다는 좀 덜 경거망동하고, 좀 덜 근본 없는 글을 써 본다. 나를 거짓없이 쓰면서도 성급하고 가벼운 노출이나 르포르타주는 피한다.  에세이에 초청한 타자들은 질투의 대상이나 도구로서가 아닌 내 삶의 부분이자 사유의 대상으로 모신다. '내 마음'이라는 촘촘한 체를 통과한 나와 너의 이야기를 천천히 기록하고 싶다. 엄지로 휙휙 넘겨버리기엔 삶들은 너무 아깝고 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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