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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5. 2020

내 거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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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거 내 사물함에 좀 넣어주라."

전공 교양 수업이 끝난 후였다. 친한 복학생 오빠가 일이 있다며 자기 책을 부탁했다. 


그의 사물함 문을 열자마자 쾅 닫았다. 책은 넣어주지도 못하고 뜨악한 채 서 있었다.


꽃 사이에 끼워진 카드의 수신자는 나였다. 전활 걸었다. "이거 뭐예요?" 성년의 날엔 꽃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부담 없이 받아달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심각하게 큰 꽃다발이 그의 사물함을 꽉 채우고 있었다. 전화기로 들려오는 말속에 로맨스 드라마 대사 같은 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이 날 이후로도 우리는, 같은 과제를 해치우는 동료 용사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허구한 날 밤새워 살인적인 과제를 붓끝으로 찔러 대며, 서로의 전투식량을 아낌없이 오픈하던 여러 동기들. 우리들은 바퀴벌레며 쥐가 발등 위를 스쳐 걸어 다니는 부도난 양말공장 같은 전공 실기실에서도 꽃 같은 그림을 그려냈다. 그 꽃다발은, 실기실 옆자리에 앉는, 센스가 많이 떨어지는, 몇 살 많은 친구의 진심 어린 축하이자 찐한 전우애였다. 성년의 날을 축하한다는 그의 담백한 말에 무지막지한 꽃다발을 집어 들었다. 한 시간 반의 하굣길을 이것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험난하고 민망할 여정이 눈에 훤했으나 애써 눈감아주기로 했다. 고마운 건 고마웠다. 


헛웃음이 기침처럼 나왔다. 꽃다발을 쥔 손가락은 아직도 오그라드는 중이었다. 교문으로 가는 길에 잠시 동아리방을 들렀다. 문을 열자 동아리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랐다. "아! 안 그래도 너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어어?! 꽃? 또?!!"


동아리방 안에는 내 손에 들려져 있는 꽃다발과 비슷한 크기의 꽃다발이 떡 벌어진 어깨를 뽐내며 앉아 있었다. 불행히도 수신자는 다시, 나였다. 오오- 하며 입을 틀어막는 동아리 사람들. 나는 그들보다 더 놀랬다. 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친오빠였으므로.

전활 걸었다. "꽃 뭐냐?", "아, 받았어? 불쌍한 동생이 성년의 날에 꽃도 못 받을 것 같아서 착한 오빠가 하사한 것이다. 하하하~", "정신 나갔냐?" (물론 고맙다는 뜻임) 참고로 이 분이 평소 이렇게까지 날 챙겨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우리가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어여쁜 남매까진 아니다. 꽉 문 어금니가 잇몸을 파고 들어갔지만, 이 허튼짓의 동기에 숨겨진 혈육의 잔정까지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고맙다는 말로 전활 끊었다.


익명성을 사랑하는 파릇한 성년의 양손에는 존재감을 미친 듯이 뽐내는 꽃다발이 들렸다. 학생들이 우글거리는 캠퍼스를 안전하게(주목받지 않고) 빠져나가야 할 차례이다. 미션 임파서블.  출구전략을 짠다. 발걸음을 재촉하고 45도 각도로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더 눌러쓰자. 계단을 내려가고, 건물을 나서고, 무사히 앞마당을 지났다. 평소와 달리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못 본 척했다. 얼굴 불긋해지지 않으려 마인드 컨트롤 마인드 컨트롤. 좋아, 이제 곧 교문이다. 아는 사람 많은 학교를 얼른 빠져나가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던 그때, 나는 발각되고야 말았다. 누가 봐도 어여쁜, 내 또래의 학생 두 명에게. 그들은 꽃다발 틈에 낀 나를 쳐다보며 또렷하게 말했다.


"자기 거 아니겠지?"


그들은 이 꽃다발들이 나에게 왜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을까. 스쳐 지나치는 1 밀리 세컨드 동안, 나에 대해 그들은 무엇을 파악했을까. 함께 머리 쥐어뜯으며 예술을 탐구하던 전우애일까, 여러 일을 함께 겪으며 자라온 동기애일까. 둘 중 무엇이든 제대로 읽어내기엔 다소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아무래도 그들 추리의 단서는 나의 외모였으려나.


미대가 다 그렇지만 우리 과도 과제가 빡셌다. "너희들은 이제 고시생처럼 그림을 그리게 될 거야." 교수님의 말씀은 현실이 되었다. 고등학교 4, 5학년 같은 생활 속에서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외모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가장 화려하고 센스 있게 꾸미고 다니는 학생들 역시 미대생 중에 있었다. 내가 그들의 반대쪽 부류였을 뿐. 밤새 그림을 그리다 스티로폼이나 신문지를 깔아놓고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매일 머리를 감는 것은 사치였다. 야구모자는 신체의 일부였고 운동화, 바지, 남방, 점퍼, 더러운 앞치마, 그림도구 가득한 커다란 백팩으로 몸을 휘감았다. 최근 몇 년간 채식 위주 식단을 통해 정상 체중이 되었지만 그전의 나는 과체중과 비만 사이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과제와 그림 도구들로 완전무장 한 나의 부피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피부도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화장으로 가릴 생각은 못 했다. 종이랑 물감 살 돈도 빠듯하니 화장품은 자연히 관심 밖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화장한 게 졸업사진 찍을 때였다. 사진 찍기 전날, 화장 잘하는 친구에게 화장인지 분장인지를 부탁했다. 친구는 "다른 건 내 걸로 해줄 수 있는데 우린 피부 톤이 다르니까 파운데이션만 네가 쓰던걸 들고 와."라고 했다. 파운데이션의 피읖도 모르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쓰던 파운데이션'을 사러 화장품 가게에 갔다. 뭘 사야 할지 몰라서 사장님이 추천해 주시는 걸로 샀다. 완성된 졸업사진 속엔 한 톤 어두운 파운데이션을 바른 얼굴과 하얀 목이 대조된 내가 있었다.


어여쁜 그 학생들은 어여쁜 꽃다발과 그것을 든 나 사이의 어떤 부조화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자기들의 빈약하고 무례한 추리를 서둘러, 커다랗게 꺼내야만 했을까. 그전에, 아무 죄도 없는 나는 왜 멍청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도둑처럼 학교를 탈출하려고 한 거였나. 뒤로 홱 돌아서 "이 꽃 전부 내 거 맞거든!"이라고 왜 말하지 못했나.




2.


쌀알 만큼 작은 발과 이목구비, 쌀포대 만한 토실한 몸을 한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 그 캐릭터가 100여 개 프린트된 밝은 분홍색 이불 위에서 어린 시절 내내 잠을 잤다. 좋아했던 이불이었다.


그때가 자기 직전이었는지, 일어난 직후였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불이 펴져 있었다. 가족 중 한 명이 볼펜을 들고 왔다. 퉁퉁한 고양이의 코 위에 볼펜으로 돼지 코 모양을 덧 그렸다. 거기에 화살표를 그린 후 '이 이불 주인'이라고 쓰며 킥킥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가족 한 명이 덩달아 재밌어했다. 나와 불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내가 뻔히 쳐다보고 있는 상태에서 그 일은 맥락도 없이 일어났다. 그들은 가벼운 농담을 즐기는 듯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날계란을 맞는 것처럼 불쾌했다. 기분과는 달리 볼펜을 뺏어 벽으로 던져버리지도, 불쾌감을 표시하며 엉엉 울지도, 이게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어른스럽지 못하고 방자한 짓인지 조목조목 따지지도 못했다. 순발력 없고 멍청한 탓에 폭력을 유머로 허용한 셈이 됐다. 내 이불을 훼손한 후 유유히 떠나는 사람을 입 벌리고 멍하게 쳐다보았다. 여러 번 빨아도, 많은 시간이 지나도 볼펜 낙서는 지워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매일 아침과 밤마다 그 낙서를 봐야만 했다.

그 이불은 돼지코를 한 비만 고양이 것이 아니었다. 내 거였다, 내 거.




3.


누군가가 오래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그 사람을 정처 없이 찾아다니던 날. 방바닥에 흩어진 박살 난 물건들에 발이 다치지 않으려 까치발을 하고 걷던 날. 문에 귀를 댔을 때 들려오던 싸움의 소리에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던 날. 만삭의 몸으로, 누구와 누구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서너 시간 기차 타고 달려간 날. 출산 며칠 후, 몸이 급격히 나빠져 다시 병원에 들어가 링거 맞으며 앓았던 날. 그런 내 곁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사람들을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으로 말렸던 날. 그러는 동시에 간호사님들께 사과를 하며 눈치를 봐야 했던 날. 생의 의지가 가득한 줄만 알았던 사랑하는 이가 갑자기 스스로 삶에 마침표를 찍은 날... 눈물 흘려야 했던 이러저러한 순간들은, 더욱 신을 붙잡게 되는 시간이었다. 파도가 힘들었을지언정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내가 감당할 괴로움을 넘어서는 상황이 왔다. 진학이나 공부에 대한 괴로움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할 수 없어서 미칠 것 같았다. 속에 있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한 톨 한 톨 주워 모아야 했다. 겨우 입술이 열릴 만큼 담력을 장만하여 어렵게 말을 꺼낸 들, 나의 소중한 말은 어김없이 거절당했다. 정희진은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에서 말했다. "사랑은 말을 들어주는 것이 첫째", "말은 물질이다. 말 한마디는 빚만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게 한다." 그런 사랑이 당장 필요했다. 나까지 짐이 되면 안 되었기에 참고 눌렀던 말과 행동들. 그 누름의 압력 때문에 마음은 찰흙에서 금강석의 강도로 굳어져갔다.

 

내 말과 존재가 세상에서 받아들여지길 신께 기도했다. 하나님은 지난하게 침묵하셨다.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하나님은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가.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 조건 없이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마저 그러면 어떻게 당신을 믿으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신다는 것이 믿어지지 없었다. 사람을 외적인 조건으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에도 의심이 생겼다. 성경을 읽을수록 상처가 되었다. 다니엘이나 바울 같은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비루한 나는 신의 관심 밖일 거란 착각이 날로 견고해졌다. 기생 라합, 이방 여인 룻, 사기꾼 야곱, 살인자 다윗, 회의론자 나다나엘, 민족을 등쳐먹은 삭개오, 장애인 바디매오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마음이 지친 내 눈엔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리어졌다. 하나님도 사람들처럼 나를 거부하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과 똑같은 하나님은 믿을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앙을 내려놓았다. 


당시 윤리 시간에 쾌락주의니 금욕주의니 하는 것들을 배웠다. 신앙을 부인한 나는 염세주의나 허무주의에 가까워졌다. 발을 딛고 살아온 신앙이라는 반석이 사라졌다. 서 있을 곳이 없었다. 내 마음은 나락으로 영원히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성경을 읽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기로 했었기에, 그 행위는 한 줄기 희망을 얻으려는 발버둥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굳이 내 진심을 밝혀서 시끄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매일 성경을 읽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같이 사는 사람들을 속였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외양을 꾸몄다. 외로웠고 화가 났다. 성경을 정성 들여 읽으며 한 절이 끝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토를 달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부정하던 그 성경 말씀으로 당신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환자가 살 의지가 있든 없든 간에 '의미 있는' 연명치료는 그 환자를 살려낸다.  의식을 잃은 내 영혼에 영양분과 치료 약이 꾸준히 주입되고 있다는 걸 간과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는 "양쪽에 날이 선 칼보다도 더 날카로"웠고, 나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며,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까지 알아" 냈다 (히브리서 4:12). 증거 불충분이라며 성경을 밀어내던 나에게 하나님은 그 성경으로 자신을 선언하셨다. 나만 아는 예전의 기도들이 나만 알아듣는 대답으로 차곡차곡 응답되었다. "나는 살아 있어. 나는 네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나는 너를 조건 없이 사랑해. 이 사랑은 네 거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신의 분명한 대답이 이어졌다. 끝없던 추락이 끝났다.


영화 「콘택트」에서는 과학자 엘리의 개인적인 경험이 공식적인 과학적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하는 엘리에게 마이클은 언성을 높인다. "애초에 당신의 경험이 실제가 아니라고 증언을 철회해야 옳지 않습니까!" 


엘리는 복잡한 심경의 얼굴을 한 채, 울먹이면서도 힘주어 말한다.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까요. 전 경험했습니다.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도 없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걸 압니다. 전 제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소중한 경험들을 했습니다. 우주는 제게 보여 줬어요. 비록 우리 자신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얼마나 귀중한지를 말이에요. (중략) 전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요. 여러분이 제가 겪은 그 놀라운 사실을 함께 공유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제 희망입니다." 철저히 눈에 보이는 증거에만 의존하는 과학자 엘리의, 모순 같지만 진실된  이 고백은 큰 울림이었다. 


성경 말씀과, 나와 나를 포함한 많은 성도들의 계속되는 경험들, 이것이 내가 가진 증거이다. 그것이 내 인생을 다시 살려냈음을 나는 확실히 안다. 미생물 같은 나이지만  우주보다 거대한 사랑이 내 것임을 흔들림 없이 믿는다. 그러나 이런 증거와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증거 불충분에 불과할 것을 안다. 내 신앙을 그에게 과학적으로 증명해 낼 도리는 없다. 그럼에도 나의 희망 역시 엘리의 경우처럼, 내가 경험하고 있는 놀라운 것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4.


꽃다발은 내 것이었다. 이불도 내 것이었다. 우주보다 큰 사랑도 내 것이다. 

때론 남이 볼 때 어이없더라도, 나 자신도 내가 부끄러울지라도,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든지 간에,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남이 나를 사람으로 봐주지 않고, 세상 멍청했을 때에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모두 나를 거절하는 것 같고, 내가 지조 없는 인간에 다름없을 때에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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