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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4. 2020

분홍색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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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쳐진다. 게으름을 실천하기 좋은 핑계가 생겼다. 나 지금 고민 많으니까 밥 차릴 기분 아니야. 마침 그때, 가난한 대학생을 도우려고 가난한 목사님이 요구르트 배달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지셨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 같은 건 죽어야 돼... 부끄러워 죽기 일보 직전이 되어 부엌으로 튀어갔다.


저녁을 먹고 나니 점심때의 부끄러움은 뻔뻔스럽게도 증발됐다. 나 요즘 자신감 바닥이라서 설거지할 기분 아니야. 마침 그때 박준 시인의 시구가 눈에 들어온다. "날지 못하는/새는 있어도/울지 못하는/새는 없다" 누가 널 더러 날라고 했니. 할 수 있는 작은 일까지 왜 도매금으로 안 한 대. 폭력적이지도 않은 시로 제풀에 뼈를 맞은 손이 분홍 고무장갑으로 멍들었다. 


어찌저찌 하루를 마감하고 이제야 울적한 생각에 온몸을 담그고 눈물 셀카 같은 글이나 적어보려고 각 잡힌 의자에 앉았다. 마침 그때 아직도 쌩쌩한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새실새실 깔깔거리리고 깔깔거리다가 딸꾹질 나서 "엄마 나 딸꾹질해요."라며 귀에 대고 딸꾹 딸꾹 하는 통에 글은 무슨 글, 귀랑 머리가 울려 정신이 혼미했다.


고민과 우울의 답을 푸는 일에 며칠 동안 진전이 없다. 그러면서도, 목사님의 요구르트와 시인의 말과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옆에서는 걱정과 우울에 빠져 있기가 왠지 무안해지는 것이다. 


개미가 들러붙고 녹아내리는 듯한 달리의 그림 속 시계들은 나의 시간을 고자질하는 것 같아 불쾌했고, 슬픔을 가리려는 듯한 남편의 미소를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심심한 아이들 표정을 보면 미안했다. 그밖에 차마 적을 수 없는 몇 가지 것들까지 더하여 이것도 저것도 다 고민이고 자책이었다. '난 내가 너무 싫어'라는 오랜 습관 같은 대사를 암송하면 마음은 잘도 쳐졌다.


그러다, 한숨으로 변형된 내 우울의 소리에 귀가 깜짝 놀랐다. 어릴 때 나의 어른들이 내쉬는 한숨소리를 이 갈릴 만큼 싫어했는데 어쩌자고 내가 그걸 재생하고 앉아있나. 내 사람들에게 이런 소음을 들려주고 싶지는 않다.


우울한 고민을 고작 30분이라도 집중하는 게 이렇게나 어렵다. 신께서는 내 우울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안방에도, 부엌에도,12년 전의 기사에도, 시집에도 꽃처럼 포진시켜 놓으셨다. 멈춰서 고민하든, 닥치는 하루를 닥치고 살아가든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게 능사는 아니란 생각도 든다. 여전히 답은 모르겠지만 찌그러졌던 형상기억 정신이 꽃의 열기 탓에 처음 모양을 향하여 회복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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