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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18. 2020

책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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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에 빠졌을 때 가장 많이 한 일은 집안일과 독서이다. 책에 무슨 기대를 한 것은 아니다. 책이 기대할만한 반듯한 상태의 독자도 아니었다. 그저 그림을 그리지 않아 붕 뜬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책을 읽었다. 누워서 뒹굴뒹굴하거나 드라마 몰아보기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아이들 보기에 안 좋을 것 같고 지금보다 밀도 높은 폐인이 될 거 같았다. 그래서 책이었다. 내 현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게 피곤해서, 다른 사람의 삶과 이야기 속으로 도망친 것이다. 책은 현실 망각을 도와줄 도구였다.


게다가 책을 읽으면 '난 지금 뭐라도 하고 있어'라는 착각, 합리화, 안도 비슷한 게 들었다. 우울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는 게 없기까지 하면 내가 더 쓸모없는 인간처럼 느껴졌기에 책은 좋은 구실이었다. 사실 잠깐 멈춰서 아무것도 안 한들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좌절 속에선 그런 유치한 안도감까지도 절실했다.


데이비드 실즈는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를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나도 달아나고 싶었다. 멀리 여행 가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나무가 많은 공원이나 예쁜 정원이 있는 카페에서 반나절 죽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가파르지 않은 산을 올라도 좋겠고 아름다운 그림이 가득한 전시회도 가보고 싶다. 전시회…. 상상만 했는데도 너무 좋아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그렇지만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고, 가족의 삼시 세끼를 차려야 했고, 슬럼프가 무르익던 7월은 장마 기간이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내 슬럼프의 역사를 흡수한 신티크, 태블릿 펜, 키보드, 컴퓨터, 모니터, 책상으로부터 나는 달아날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은 물리적 여행 대신 정신적 여행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 다른 세상이 담긴 책으로 들어가는 것. 캐리어나 여권이 필요 없는 간편한 여행을 떠났다. 책은 고맙게도 방랑자에게 말을 걸어주고 위로해 주며 따스한 환대를 해주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게임 등 뭔가에 중독되어 자신을 잊기 바랐다고 했다. 이런 대단한 작가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구나. 나를 잊기 위해 그의 책을 읽고 있는 게 안심이 됐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 카트리네 마르살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은 항상 일을 하고 있었다... 가정과 바깥의 일을 어떻게 잘 조합할까 하는 문제는, 모든 것을 다 갖고자 하는 여성 엘리트들의 배부른 불평이 아니다." 작가는 평생 애덤 스미스를 돌보고 밥을 차려준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 마거릿 더글러스가 바로 경제학에서의 '퍼즐에서 빠진 조각'이라고 했다. 엄마, 작가, 주부, 아내 등 여러 이름을 끌어안고 내 자리를 찾기 위해 어정쩡한 고군분투 중일 때, 누군가 이 거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움이 느껴졌다.


김초엽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도 비슷한 위안을 받았다. 살아있을 때에도 죽었을 때에도 분실된 '엄마'라는 존재, 그 엄마도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였다. 김은하 씨는 결혼 즈음에 일을 그만두게 되고 그 후 가정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어떤 일터에서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쓸쓸한 기분, 어디서든 내 이름을 찾고 싶은 그 기분을 너무 잘 안다. 내 코가 석자면서도 도리어 내가 김은하 씨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다.


빌 브라이슨의 『바디』는 내가 얼마나 기적 같은 생명체인지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주었다.  "몸에 든 모든 DNA를 한 가닥으로 죽 이으면 160억 킬로미터는 된다. 명왕성 너머까지 뻗어나갈 길이이다…. 당신은 말 그대로 우주적인 존재이다." 내가 이렇게 놀라운 존재였다니 그야말로 대박 사건. 내 속의 장기와 세포들이 비현실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그까짓 실패로 쭈그리고 있었다는 게 무안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나오는 마지막 편지도 나를 토닥여주었다.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하지만…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어 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속으로 '네 할아버지, 그럴게요.'라고 대답했다.


『옥중서신』에서 본회퍼는 말했다. "해방은 고난 속에 있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손에서 하나님의 손으로 넘겨드린다는 점에서 말이네." 반나치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생사를 보장받지 못하는 목사님이 하신 저 말씀은 무거웠다. 성가신 짐스러움이 아니라 쉽게 날아가지 않을 거룩한 무게감이었다. 이 분 앞에서 내 상황을 '고난'이라고 부르는 건 염치없었다. 내 손에 쥔 작은 문제를 하나님께 넘겨드려 본다.


성경 『예레미야애가』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는 주께 희망을 두는 사람과 주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선하시다."라고 했다. 정말 그렇기에 매일 성경을 읽는다. 이기적인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얻을 게 있어서 자꾸 보게 된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성경을 펼치면 그 속에서 항상 주님의 답을 듣게 된다. 성경 속의 하나님의 조언, 지혜, 책망, 사랑의 말씀을 읽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께 계속 비비고 치대는 나를 환대해 주신다. 도움을 청하러 오는 나에게 언제라도 선하실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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