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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21. 2020

원자가 모여 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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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모여서 거대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0+0+0+…+0= ∞ 정도 되려나. 틀린 식이지만 현실은 온통 이런 식이다.

원자들 그 자체는 의미나 목적을 추구하려는 낌새가 없다. 하지만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나의 뇌는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가 모이면 뭔가 달라진다. 목적이 없는 원자들의 맹목적인 움직임과 결합이 온 우주를 구성한다.

말의 최소 단위인 음소는 언어의 원자일지도 모른다. 'ㄱ','ㅅ','ㄲ' 각각은 원자가 그러하듯 언뜻 아무 의미 없어 보이기도 한다. 반면 음소들이 결합하여 '개새끼'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순간 쨍한 의미를 가진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언제 왔는지 둘째 아이가 조용히 옆에 서 있었다. 표면장력을 아슬아슬하게 넘기지 못한 눈물이 아이 눈에서 찰랑거렸다. 갑작스러운 눈물의 원인은 '개새끼'라는 단어였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도그맨』이라는 그래픽 노블을 반복해서 빌려보는 중이다. 초등학생을 독자층으로 설정한 책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엉뚱하고 익살스러운 에피소드로 꽉 차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연속이긴 해도 과히 거칠진 않다. '개새끼'라는 말이 드물게 등장하는 것 빼고는. 번역가도 고심을 안 한건 아닐 거다. 하지만 저 단어에 놀라 눈물 뚝뚝 흘리는 어리고 여린 자녀를 둔 부모는, 조금 더 순한 단어를 골라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쪼끔 느끼는 것이다.


"내가, 흑흑, 좋아하는 책인데, 흑흑, 욕이 나왔어요. 흑흑흑흑... 계속 빌려 보고 싶고, 흑흑, 갖고 싶기도 했는데, 으아아앙~!"

휴지로 아이 눈을 꼭꼭 눌러 눈물을 훔쳐 주고 꼭 안아 주었다.


"좋아하는 책인데 나쁜 말이 나와서 당황했어?"

끄덕끄덕.

"그럼 엄마가 그 책을 사서 나쁜 말 부분만 수정테이프로 가려줄까?"

도리도리.


"엄마가 보는 책에도 나쁜 말이 나올 때가 있어. 욕이 나오지 않는 책이라 해도, 이런 이야기까지 써야 했을까, 이 말은 사실일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 정도가 심할 땐 너처럼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구. 그럴 땐 내가 가진 기준과 양심으로 책의 이야기를 가늠하고 정리한 후 넘어가. 다양한 책을 보면서 좋은 영향을 받는 건 좋지만, 이런저런 목소리에 이리저리 끌려다닐 필요는 없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르거든. 각각의 책은 각각의 사람이기도 해. 그래서 어떤 책은 거친 말을 쓰기도 하고, 나랑 생각이 많이 다르기도 한 거지. 나를 힘들게 하는 책이라면 언제든 덮고, 내 맘에 좀 더 편안한 책을 읽어도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읽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아. 조금 불편하다거나, 나쁜 단어가 몇 번 나온다고 해서 그 책의 전부가 나쁜 건 아니거든. 『도그맨』은 보고 싶은데 '개새끼'라는 단어만 싫은 거면, 그 말이 적힌 페이지가 나왔을 때 재빨리 넘겨보는 건 어때?"


이런 이야기를 하며 둘째를 부둥부둥 안아주었다. 포동한 볼을 내 팔에 기댄 아이는 조금씩 차분해졌다. 말은 저렇게 해주었지만 아이에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아이일수록, 약자일수록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말에도 대수로운 타격을 입는 법이니까.

20분 정도 곰곰 생각하던 아이는 그 책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집안일을 마치자마자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주문해 줬다. 아이는, 고맙습니다, 말하며 웃었다. 즐거움은 취하고 까칠한 단어는 그러려니 하며 건너뛰는 아이로 요만큼 자란 것 같아서 나도 조금 웃었다.


나의 초등학교 5학년 일기장에는 이런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천치, 이놈, 이 자식, 바보, 돌머리, 돼지라고 욕을 막 하는데, 우리 보고는 욕하지 말라고 한다."


어른이신 담임선생님은 그 일기의 여백에 도도한 궁서체로 코멘트를 달아 놓으셨다. "어른들이 화를 많이 내는 것은 그만큼 할 일이 많고 일이 잘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당최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지. 그럼 아이들도 할 일 많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어른에게 화를 많이 내도 괜찮다는 소리인가? 변명 같지 않은 변명, 또 한 마디의 무례한 언어였다.

선생님은 조금 더 적으셔야 했다. "…그러나 자기 처지의 어떠함을 이유로 다른 사람, 특히 약자에게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든 비겁하고 부당한 짓이다. 해서는 안 될 일이지.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구나. 내가 모든 어른의 대표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과하고 싶어. 모쪼록, 몇몇 거친 어른들을 보며 세상 모든 어른이 그럴 것이라고 실망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본이 되고 희망이 되는 어른이 되도록 노력할게" 여기까지 쓴 후 마침표를 찍으셨다면 나는 장래희망으로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을지도 모를 텐데.


또 다른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M은 나더러 '전돼협' 회장이라 한다. '전국돼지협회'. 약이 오른다. B는 나를 '쁜지'라고 한다. '예쁜 돼지'란 뜻이다. 억울하다. 성난다."


전돼협도 전돼협이지만 쁜지는 더 짜증 난다. '돼지'라고 놀리는 말 앞에 '예쁜'이라는 쿠션어를 붙인 말. 나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놀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단어다. 남을 놀리는 스스로에게, 되지도 않는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와 다름없다.


원자와 음소는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원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음소에는 의미가 영글어 있다. 우리는  'ㅇㅋ', 'ㅇㅇ', 'ㄴㄴ' 같은 두 개의 음소만 사용해서 대답할 수 있다. 'ㅋ'를 반복해서 쓰면 박장대소가 되고, 'ㅠㅠ'는 눈물, 'ㅠㅠㅠㅠㅠㅠㅠㅠㅠ'는 통곡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초성 게임을 즐긴다. 모음을 감춘 자음은 질리지도 않는 수수께끼 놀이가 되나 보다. 글자의 원자들만 보고서 신통하게 완성된 말을 맞히는데 그때마다 깔깔거리며 향기로운 소음을 터트린다.


음소가 그러하니, 조립되어 완성된 단어는 수만 배 노골적인 의미를 담을 수밖에 없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단어와 문장과 말은 순식간에 우리를 거시 세계의 차원으로 이동시킨다. 보이진 않지만 어마어마한 질량으로 존재하며 힘을 행사하는 우주 속 암흑물질의 몸집만 한 '의미'의 세계로.


글은 보이기 전에 고칠 수 있다. 퇴고 없이 적힌 글은 완성된 글이 아니라고 할 정도이다. 그러니 정상적인 글이라면 신중한 성격을 갖추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신중한 글마저도 독자에게 상처 주는 우를 범하곤 한다. 글이 그러한데 말은 말해 뭐 하랴. 글에 비해 말은 취약 지반처럼 위태롭다. 게다가 말은 급하기도 이루 말할 수 없어서, 글이 자전거라면 말은 로켓에 가깝다. 뱉고 나면 수정도 안 되는 만큼, 말은 글보다 더 신중한 퇴고의 과정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말의 이런 취약함을 모르는 이 없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말을 휘두른다. 웃자고 하는 말, 장난이라고 하는 말은, 보통 듣는 이에겐 장난이 아니다. 이기주는 『언어의 온도』에서 말했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야고보 사도의 이런 말도 있다. "아무도 혀를 길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악하고 난폭한 이 혀에는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야고보서 3:8)" 내 입과 손끝에서 나온 말과 글, 나를 찔렀던 말과 글은 저러한 문구에서 하나같이 자유롭지 못하겠지.


음소는 원자보다 크다. 말과 글은 음소일 때부터 의미를 가진다.   없는  같은  우주에 없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원자로 구성된 인간을 거대한 의미의 말과 글이 통과할  인간은 몹시 휘청인다. 아무 말이나 들어도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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