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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Nov 09. 2020

잡채 같지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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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을 드러내는 이불과 베개 틈에서 눈을 떴다. 어제와 달리 내가 누운 곳은 눈부신 흰색 침구 위가 아니었다. 폭삭하고 새하얀 이불과 베개의 추억이 끝났다. 친척의 주도하에 4일간 여행을 다녀왔는데 추억 70, 피곤 30을 얻어왔다. 납작하고 울긋불긋한 이불을 접으며 일상을 다시 펼친다.


4일간 밀린 집안일을 어디서부터 매만져야 될지 아득하다. 캐리어가 뱉어낸 짐의 부피도 상당하다. 여행하며 쌓인 빨랫감이 빨래 바구니에 넘쳐흘렀다. 작은 세탁기 안에 옷을 끝까지 채운  '동작' 버튼을 눌렀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식단 일기를 썼다. 3 가까이 쓰고 있는 일기인데 고작 4 쉬었더니 나흘  만큼 정직하게 낯설다. 아침 먹은    빨래를 널고 세탁기를 2차로 돌렸다. 세탁조가 이어달리기를 하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한살림과 농산물 시장에서 장을 보고,    냉장고에 넣고, 덥수룩한 머리를 자르러 단골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텔레비전에선 과장된 말투와 인공조미료 같은 배경음악이 여백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목덜미를 면도칼로   여전히 따끔거린다. 시끄럽고 따끔거리는 것이 피곤해서 머리 자를 때마다 눈을 감는다. 소소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용실의 단골이다. 가성비 때문만은 아니고 익숙한 소음, 익숙한 손길, 익숙해진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좋아서이다. 단골 미용실에 앉아 찰칵거리는 가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행지에 마음을  움큼 흘리고 왔더니 현실 감각이 떨어져 어벙한데 미용실에서 귀로 일상을 감각하니 안심이 됐다. 목덜미를 산뜻하게 해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점심 차릴 시간. 오늘 점심엔 감자 수제비를 1.5인분 먹을 거다. 감자, 양파, 애호박, 표고버섯, 팽이버섯, 수제비를 다시마 우린 물에 넣어 익힌  고추장 간장 등으로 간을 했다.   며칠 남이 해주는 밥과, 쓰레기 속에 담긴 레토르트 식품을  먹다가 나흘 만에  손으로 밥을 하니 평소의 4배쯤 귀찮다. 취향에 맞는 음식을  먹을  있는 일상의 자유는 좋다. 4일간 돼지고기, 생선, 전복, 과자, 빵의 홍수 속에서 푸릇푸릇한 것을 골라 먹은  자신을 대견해하며 수제비를 싹 비웠다. 점심 먹고 2차로 끝난 세탁물을 널었다. 세탁기를 3 가동해놓고 큰애와 대회 연습을 했다. 큰애는 내일 자신이 지원한 모 대회에 참가한다. 내가 도와줘야  부분이 있어서 함께 연습 장소로 갔다. 연습  아이는 학원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마지막 빨래를 널었다. 세탁기   돌리고도 2 돌릴 분량이 남아있지만 빨래 건조대가 만석이다. 나머지 여행 흔적들은 내일 빨기로 한다. 여행 경비 n 분의 1 계산되었다는 카톡이 왔다. 얼른 입금하고, 감사 선물을 골라 여행 인솔자에게 기프티콘을 보냈다. 느지막이 점심 설거지를 한다.  사이 둘째는 심심해졌다. 도서관에 가자고 한다. 내복 바람의 둘째와 도서관에  30  동안 스물몇 권을 골라 집에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5 30. 저녁 차릴 시간이지만 힘이 나질 않아 매트 위에 누웠다. 빡빡한 일정에 맞추어 놀다가 빽빽한 노동이 가득한 일상으로 돌아와서 그런가. 몸도 맘도 탈탈 털린  마냥 피곤해진다.


피곤한 나에게 "정말 재밌는 책이니까 엄마도 한번 읽어보세요"라며 큰애가 도서관에서 빌려 온 『윔피 키드 5』를 쥐여줬다. 웃긴 이야기들이 떨어지는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쏟아지던 중, 이런 내용이 나왔다. 그레그의 엄마는 '가사노동과 육아에만 치여 살 수 없다'라며 공부를 시작한다. 엄마가 하던 청소와 요리를 아빠와 아들들이 나눠하게 된다. 세 남자가 요리를 망친 후 외식하러 가는 모습 같은 게 재미있게 묘사된다. 엄마가 제공하던 복지가 줄어든 것에 불편해하며 그레그는 엄마의 공부가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 그레그의 그런 생각이 나는 미웠다.

우리 가족들은 자신의 일을 제법 알아서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남편은 밖에서 고생하는 시간이 더 많고, 아이들은 덜 컸다. 집안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결국 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마음껏 쓸 수 없는 일상이 아쉽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그리고, 쓰고, 읽으며 나를 가꿔보자고 생각은 한다. 지렁이같이 느린 이런 꿈틀거림이 무슨 소용이야, 라는 생각도 한다. 쌓인 빨래처럼 밀린 4일 분량의 일상 앞에서는 읽고 싶은 소설의 표지조차 넘겨볼 수 없다. 그림과 글과 책은 밀린 빨래와 요리와 육아와 기타 등등의 일에 더욱 밀려났다. 조바심과 걱정이 쓸데없다는 걸 알지만 『윔피 키드 5』를 보다가 잠깐 울컥했다. 나도 나만의 영역과 시간이 필요한데, 내가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읽고 싶은 책들을 잘 읽어나갈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세 가지 노동에서 100시간 가까이 이탈했더니 진로에 대한 고민이 짙어졌다.


저녁 차리는 걸 미룬 채 멍하게 누워 있었다. 둘째가 "이제 저녁 먹을 시간 아니에요? 오늘 뭐 먹어요?"라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말한 뒤 냉장고를 뒤져 보려고 일어났다. 부엌으로 걸어가는데 둘째가 또 물었다. "뭐 먹을 건데요?" 피곤함이 확 올라온다. "나도 모르겠어. 차려주는 데로 먹어." 퉁명스럽게 말해버렸다. 십수 년 동안 일관되게 집안일이 재미없다. 집안일을 재밌어하는 분께 나의 집안일을 선물해드리고 싶다. 그런 분을 찾지 못한 나는, 나와 가족의 생존을 위해 영혼 없이 싱크대 앞에 선다. 물을 끓여 당면을 삶고 채소를 다듬었다. 오늘 반찬은 채소 잡채. 재료들을 휘젓는데 둘째가 다가와서 프라이팬 안을 구경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잡채가 요리되는 걸 보더니 "잘한다"라며 씩 웃는다. 이것저것 다 때려 넣고 무심하게 젓는 중인데, 요리 잘하는 것 같단 칭찬을 받으니 머쓱했다. 냉동실에서 꺼낸 다진 파에 코팅된 얼음이 서서히 녹듯 피곤했던 내 마음도 녹았다. 난 순정만화 여주의 눈을 한 채 아이의 낮은 정수리를 그릇 닦듯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을 다 차리고 가족들을 불렀다. 순정만화 남주의 눈을 한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요. 항상 고마워요." 빈약한 식탁을 차려냈건만 가족들은 왜 금식 시위 같은 걸 일으키지 않는 것인가? 심지어 고마워하며 먹어준다. 의무적으로 요리를 차려주는 게 미안하고, 그저 그런 나에게 칭찬과 고마움을 표현해 주는 가족들이 고맙고, 집안 일과 육아로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한 것은 아쉽고, 글과 그림과 독서의 일상은 며칠 후에야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아 서운하다.


여행 중 연장자분께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성경 말씀을 언급하셨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저 성경 말씀에 좀 더 순종하는 내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다짐과는 달리, 돌아온 일상에선 기뻐하고 감사하는 상태가 당면 면발의 길이만큼도 지속되지 않았다. 여행 다녀온 피로도 다 안 풀렸는지 이 글 적으며 몇 번이나 졸았다. 글 쓰며 졸기는 처음이다. 오랜만에 입안이 두 군데 헐기도 했다. 예수님과 나를 감히 나란히 놓을 순 없지만, 예수님은 난파 직전의 배 안에서 깨지 않고 주무실 만큼 피곤하셨다. 물건을 다 엎으며 분노하시기도 했다. 고뇌하셨고 우셨다. 누이 좋고 매부 좋아서 헤헤 웃기만 하는 날 같은 건 나에게도 거의 없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이 삶의 피곤과 고민을 부정하고 무시하며 죄악시하라는 명령은 아닐 거다. 밑도 끝도 없는 긍정과 형통을 추구하는 『긍정의 힘』 저자 조엘 오스틴에게 그의 주장의 근거로 이용하랍시고 남겨둔 말씀도 아닐 거다.


내 일상은 기쁨과 아쉬움, 감사와 고민이 잡채처럼 뒤섞인 형국이다. 내가 만든 잡채는 먹을만했다. 잡채 같은 내 일상도 봐줄 만하려나.


4일 멈춰있던 일상의 '동작'버튼을 눌러 가동한다. 일상 안에 몸을 담가 '일상 부적응자'라는 이름표의 '부'자를 닦아본다. 유통기한 지난 여독이 일상의 물속에서 조금씩 녹는다. 탈수 코스의 무시무시한 원심력이 일상을 어지럽게 한다. 익숙하면서도 피곤한 일상의 궤도에서 탈탈 털리는 순간, 기쁨과 감사를 양손에 움켜쥐었다. 부주의하게 배수구로 흘려버릴 것들이 아니니까.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기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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