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 답글엔 거짓말이 적히곤 한다.
"안녕하세요~ 포스팅 잘 봤습니다~^^ (첫인사부터 거짓말.)
하시는일 하시면서 이렇게 포스팅 하나로
매일 고정수익 나오는 합법부업 소개드려요~!
육아맘인 저도 폰 하나로 하고 있구용~!!
팀으로 함께하는 부업이라 어렵지 않아용~^^
초보자도 할수있습니당:D
문의 원하시면 링크 눌러주세용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하루되세요~^^
http://어쩌고저쩌고알파벳블라블라"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을 피식 터트렸다. 마지막 줄을 클릭하니 이런 문구가 떴다.
"엣지라라와 억대연봉 버실분~~ 숨만셔도 돈들어오는중♡ 1:1 오픈채팅 참여하기."
내가 아무리 맑고 순진한 사람이라지만 저 말이 뻥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저 정도의 인정을 베푸는 종이 아니다. 어렵지 않게 고정 수익을 벌수 있는 일을 알고 있다면 경쟁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기만 알고 있으려는 게 보통의 인간이다.
저런 거짓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비밀글로 달린다. 배고프고 절박한 물고기들이 뻥카에 무수히 낚이길 바라는 엣지랄라씨는 오늘도 만선의 꿈을 꾸고 있다. 그런데도 범장망 그물 대신 쩨쩨한 통발 같은 귓속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들은, '우리 교주 말씀을 반드시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라며 '복음'이라는 단어를 훔쳐 쓰는 이단들을 닮았다. 그들의 아이러니는 '우리의 복음을 모르면 살지 못한다'라고 하면서도 '하지만 오늘 들은 이야기를 부모님께 이야기하면 절대 안 돼'라며 입단속시키는 데 있다. 부모님은 살지 못해도 상관없단 건가. 왜 누군 듣고 누군 들으면 안 되나. 켕기는 게 많은 자는 약자를 노리는 동시에 현명한 자의 레이더망을 피하느라 바쁘다. 엣지라라씨에게 미안하게 됐지만 나는 그대에게 약자이기를 거부한다.
그의 거짓말엔 '팀으로 하는 일'이라는 말도 포함된다. 방어하고 싶은 말을 완곡어법으로 썼다. 완곡어법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단, 언론 · 정치 · 기업 · 사기꾼들의 완곡어법을 들을 땐 통역기를 돌려야 한다. 그들은 '언어 성폭력'을 '말실수', '해고'를 '전략적 노동력 삭감'이라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등에 빨대 꽂혀 말라가는 아래층 구성원의 고통을 은폐하기 위해 '팀'이라는 건실한 단어를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팀은 개뿔. 다단계라는데 내 손톱 프리엣지를 건다. 왜 말을 못 해! 이 일은 다단계다, 왜 말을 못 하냐고!! 철학자 라자로 카레터(Lázaro Carreter)는 이렇게 말했다. "완곡어법은 항상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배반하며, 그것을 숨기려는 부끄러운 욕망, 진실한 얼굴에 가려진 언어의 가면이다... 그러나 단어로 사실을 지울 수는 없다."
그리고 인터넷 부업, 그거 내가 수년 전에 해봐서 아는데, 다른 건 몰라도 '어렵지 않'지 않다.
인터넷에 떠도는 부업은 종류가 무수하다. 우선 위와 같은 다단계가 있다. 다단계 부업들은 '하루 100 벌기', '월 천 벌기', '억대 연봉' 식의 고수익 미끼를 대문에 내건다. '숨만셔도 억대연봉'이라는 맞춤법을 초월하는 유치한 낚시질을 하면서 도둑 제 발 저린 듯 '합법적인 일'이라고 굳이 언급하는 곳은 100%이다. 저런 곳에선 돈을 벌고 싶으면 회원비부터 내라고 한다. 직장인이 첫 출근을 하기 위해 회사에 입장료를 내는 식이다. 참으로 합리적이고 납득할만하다. 삥 뜯은 회원비는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간다. 돈 벌게 해 주겠다면서 시작부터 돈을 갈취하는 개수작. 다단계 종특이다.
나는 인터넷 부업을 가지를 쳐내며 골랐다. 초기 비용이 없을 것. 회원 모집하는 일이 아닐 것. 쇼핑몰 운영으로 물건 판매하는 일이 아닐 것. 물건 홍보가 아닐 것. 육류와 자극적인 음식을 내건 맛집 홍보가 아닐 것. 일확천금으로 유혹하는 일이 아닐 것. 나 자신에게 최대한 덜 부끄러운 일일 것.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 종내는 교육 관련 글을 홍보하는 부업에 가닿았다.
내가 했던 부업은 홍보 글을 적는 거였다. 업체에서 홍보하려는 내용을 내 블로그에 대신 써서 알리는 일이었다. 이 부업만 해도 셀 수 없이 다양한 분야가 있다. 내가 고른 분야는 학습지, 영어교육, 방과 후 교사 교육에 대한 홍보였다. 돈을 버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업체가 원하는 홍보 글을 적는다. 글 마지막에 업체가 제공한 링크를 붙인다. 내 홍보 글을 읽고 마음이 동한 사람이 내 글의 링크를 클릭한다. 링크는 해당 업체와 상담을 예약할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한다. 이용자가 그 페이지에 전화상담을 위해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상담 신청'을 클릭하면 골인. 업체와 이용자의 상담이 이어질 때마다 홍보 글을 쓴 사람은 2~3천 원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참 쉽죠?
일만 보면 단순노동에 가깝긴 하다. 한글 알고 타자 칠 줄 알면 무리 없이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도 안 쉽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부터 난관이다. 블로그에 쓴 글이 검색 페이지 1~3쪽에 나오지 않으면 그 글은 맨틀 근처 지층에 묻힌 화석 신세다. 불행히도 포털사이트들은 영리하다. 홍보 글로 도배되는 블로그를 소위 저품질 블로그로 떨어뜨린다. 처음에 반짝 내 글이 잘 검색된다 해도 저품질 블로그로 찍히면 끝장이다. 저품질 블로그에는 아무리 그럴싸한 글을 써도 검색 페이지 상단에 도통 랭크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검색에서 깔끔히 누락된다. 그럴 땐 아예 그 블로그를 폐쇄시키고 새로운 블로그를 파는 게 낫다. 겨우겨우 내 홍보 글을 누가 봤다 손쳐도, 상담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는 당연히 더 많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모래밭에서 동전 줍는 것 같은 이런 노동을 1년 정도 했다.
1년이나 지속한 이유는 이 일의 정직함 때문이었다. 내 글이 소기의 목적을 이루면 약속된 금액이 기계적으로 입금되었다. 거기엔 정이나 인간이 끼어들지 않았다. 감정 소모가 없었다. 지인 찬스 같은 걸 내세워 내 노동을 두루뭉술 착취하지 않았다. 정확한 날짜에 내가 이룬 성과만큼의 푼돈이 입금되었다. 나의 월급이 떼일 걱정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깃털 같은 단순노동이었지만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생활비에 몇 푼이라도 보탤 수 있어서 좋았다. 집안 일과 육아를 하다 남는 틈새 시간에 뭐라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다단계 같은 지저분한 인터넷 부업과 달리, 다른 사람 등쳐먹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조금 떳떳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1년밖에 못했다. 위에 말했던 것처럼 이 일은 단순노동이지만 마냥 쉽지 않다. 포털의 검색엔진 바이오리듬에 따라 내 홍보 글은 자주 휴지조각이 됐다. 들이는 시간 대비 수익은 형편없었다. 양심에 찔리는 것도 문제였다. 가장 덜 부끄러운 일을 골랐지만 갈수록 부끄러웠다. 문제집 홍보할 때가 특히 그랬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사교육 시장을 열렬히 홍보하는 가식적인 내 모습에 죄책감이 부풀었다. 일이 영 몸에 익지 않는 것도 그만둔 이유 중 하나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다. 뭔가를 창조하는 데서 기쁨과 의미를 느낀다. 홍보 글을 적는 부업은 창조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주문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읊으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앉아 있지?' 마음이 서글프고 건조해졌다. 나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일도 물론 아니었다. 이 일과 이것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내가 그랬다는 말이다. 그 일을 통해 받은 몇 푼의 돈은 나에게 별거였다. 나는 한 푼이 아쉬운 서민이니까. 그럼에도 그림을 1년 넘게 멈추는 것보다는 몇 푼 돈을 내려놓는 게 덜 아쉬웠다. 난 결국 그림으로 돌아갔다.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으면서도 생경한 부업에 잠깐 발 담근 것. 내게 큰 의미였던 그림을 밀어놓고 엉뚱한 일탈을 한 것. 이것은 그림 그리는 일에 끼어든 피로 때문이었다. 아니, 사람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도 아니고, 나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