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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Nov 29. 2020

내가 생리컵을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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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 이어)


한 달 전, 면 생리대마저 내 외음부를 할퀴었다. 일회용 생리대가 10년 전에 몰고 왔던 그 트러블이 고스란히 재생된 것이다. 내 편인 줄 알았던 면 생리대의 공격에 나는 기함했다.


나는 면 생리대를 이렇게 관리해왔다. 사용 즉시 찬물에 핏물을 뺀다. 세탁비누로 최대한 깨끗이 빨아 헹군다. 세탁한 면 생리대를 작은 통에 넣는다. 거기에 과탄산소다 한 큰 술을 넣고 끓는 물을 부어 하룻밤 둔다. 다음날 깨끗한 물에 여러 번 헹군다. 물기를 꼭 짜서 직사광선에 가까운 햇빛에 소독하듯 바짝 말린다. 이렇게 빨면 처음 상태의 새하얀 면 생리대를 수년 넘게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저런 관리 탓에 면 생리대 표면이 다소 거칠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수년간 열렬히 빨면 순면 100%도 깔깔해지기 마련이니까. 거친 생리대에 외음부 피부가 쓸렸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겉으로 보거나 만져봤을 때, 오래된 면 생리대라고 해서 별다르게 거칠진 않았다. 더구나 나는 오래된 것과 새로 산 것을 교대로 사용 중이었다. 몇 단계의  빨래 루틴과 요만큼 투박해진 원단에 나의 외음부 부상에 대한 혐의를 몽땅 씌우는 건 마뜩잖은 일이다.


생리대라는 물건들은 결국 별 수 없나 보다. 면 생리대에는 일회용 생리대처럼 발암물질 증정품은 없지만, 생리혈을 붙잡아두는 기능에 충실한 물건이다. 몇 겹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방수, 아니 방혈(血)에 최선을 다한다. 그런 생리대에 덮인 피부는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축축하고 밀폐된 면 생리대 안에서는, 그것이 유기농 순면 원단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외음부가 10년 이상 버티기는 힘들었나 보다. 거기에 나의 노화도 보태졌다. 면 생리대를 처음 썼던 날에 비하면 나의 외음부는 10년만큼 얇아지고 약해졌을 것이다.


10년 전, 일회용 생리대 후유증으로 치렀던 흉흉한 고통이 한 달 전 고스란히 재생됐다. 외음부에 생채기와 종기가  생겨 너무 아팠다. 아프면서 가려웠다. 앉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걷는 것도 힘들었다. 다리가 시렸지만 통풍이 잘 되는 치마를 입어야 했다. 출산 후에나 잠깐 사용했던 회음부 방석까지 주문했다. 갑작스러운 피부의 아우성이 곤혹스러웠다. 피부 노화는 점진적이 아니라 계단식인 건가? 외음부 피부가 별안간 화를 폭발하는 듯했다.


도대체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각종 인터넷 카페에 축적된 여성들의 대화를 뒤졌다. 산부인과에 가서 치료받거나 약을 먹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처럼 나도, 산부인과는 편하지가 않다. 보통 내과 진료에서는 자기 배를 열어서 내장을 보여줄 필요까진 없지 않나. 보통의 산부인과 진료는 다리를 벌려서 외음부와 그 속까지 보여줘야 한다.

일단 몇몇 여성들이 추천하는 9천 원짜리 비판텐 연고를 샀다. 약을 즐겨 사용하진 않는데, 이번엔 자연 치유 속도가 너무 느려서 연고에 마음이 열렸다. 비판텐이 좋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다. 오래전, 둘째 아이에게 수유할 때 유두가 헐었었다. 앞니가 나와서 잇몸이 가려웠던 아이는, 젖을 먹다가 나의 유두를 치발기인 양 깨물었다. 안 그래도 헐어서 아픈 유두가 칼 같은 앞니에 씹혔다. 머리가 쭈뼛 서는 극강의 고통이었다. 으악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애 낳을 때도 안 울었는데…. 그때 병원 가서 처방받은 연고가 비판텐이었다. 연고를 바르자 깊고도 아팠던 상처가 잘 아물었다. 믿음직한 연고를 바르고, 치마를 입고, 도넛 방석에 앉아 지내면서 내 외음부도 느릿느릿 아물었다. 그러나 곧 다시 닥칠 생리를 생각하면 심장이 떨릴 만큼 진력이 났다. 예정된 고문을 기다리는 포로의 마음이었다. 이제 어떡해야 되지. 역시 나도 그걸 써야 하나.


인터넷 속 여성들은 비판텐만 추천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많이 추천한 것은 생리컵이었다.


나처럼 면 생리대에도 더 이상 기댈 수 없는 여성들이 생리컵으로 갈아타고 있었다. 생리컵을 사용하면 축축한 생리혈에 외음부가 젖을 일이 없어서 병균이 번식할 위험이 낮아진다. 자연스럽게 생리 후의 피부 트러블도 줄어든다. 하지만 생리컵은 진입장벽이 높다. 여성의 질 모양은 모두 다르다. 그에 따라 생리컵의 모양과 크기, 경도도 다양하다. 자기 몸에 꼭 맞는 '골든컵'을 찾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일회용 생리대나 면 생리대보다 비싼 데다, 골든컵을 찾기 위해 여러 번 생리컵을 구매하다 보면 초기 비용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생리컵을 질 속에 넣거나 빼는 일도 만만치 않다. 질 안에 나 스스로 뭔가를 넣는 게 심적으로도 어색하지만 기술적으로도 어렵다. 질염이나 독성 쇼크 증후군이 생길 수도 있다. 생리컵을 착용해도 생리혈이 새기도 한다.


장애물을 잔뜩 지닌 이런 생리컵을 내가 쓰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생리컵이라는 개념에 서먹했다. 그 단어를 발음하는 것부터 어색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생리컵 주문 버튼을 클릭하다니.

외음부를 뽀송하게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물건이라면 닥치고 써봐야 했다. 돌아버릴 것 같은 이 통증과 가려움, 내 일상과 정신과 육체를 뒤흔드는 생리'후'통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생리컵을 넣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첫 번째 시도해보고 든 생각. 우와, 아니, 이걸 어떻게 넣어??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도 실패했다. 다섯 번째 만에 겨우 넣었다. 시간이 얼마큼 흐른 건지 알 수 없었다. 변기에 앉아서 넣었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쪼그리고 앉아서 넣었더니 더 힘들었다. 다리가 달달 떨렸다. 생리컵은 접은 상태로 질에 넣어야 한다. 탱탱한 생리컵이 펴지지 않도록 두 손가락으로 꽉 잡고 있기가 너무 버거웠다. 하루 만에 손목이 욱신거렸다.


화장실에서 생 고생을 했더니 진이 다 빠졌다. 안방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앓는 소리가 절로 재생됐다. 우울했다. 생리컵을 쉽게 사용할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뭔가 더 알고 싶기도 했다. 여러 번 읽어서 숙지한 생리컵 사용 설명서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유튜브 검색창에다 '생리컵 사용법'을 검색했다. 페트병 입구에다가 생리컵을 넣고 빼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이 맨 위에 떴다. 그 영상은 영상 제목에 적힌 단어처럼 BEST였다. 진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대박. 나도 저렇게 넣어 봐야지. 너무 지쳤으니까 일단 낮잠부터 자고.


한 시간 자고 일어나서 다시 도전해봤다. 아아, 백견이 불여일행이구나.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쓱 구경했다고 내가 그처럼 칠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었다. 생리컵을 사용하는 것도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숙달의 문제였다. 질의 입구를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고, 그곳에 생리컵을 집어넣는 것도 난해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두 가지 생각에 집중했다. 하나, 지난번 생리 끝나고 찾아온 혹독한 고생을 기억하자. 그 통증과 가려움은 절대 또 겪을 일이 못된다. 둘, 나는 두 번의 출산을 했다. 질을 통해 애플 수박만 한 머리가 두 번이나 나왔다. 이까짓 생리컵? 껌이다. 들어가고도 남는다. 처음이라서 서투른 것일 뿐 연습하다 보면 익숙하게 넣을 수 있다.


비장한 생각과는 무관하게 첫째 날은 종일 험난했다. 둘째 날도 쩔쩔맸다. 생리컵을 넣는 것도 일이지만 빼는 것 역시 보통 난감한 게 아니었다. 오므린 채 나오던 생리컵이 질 입구에서 팍 펴져버리곤 했다. 그러면 소위 질싸다구를 맞는데 이게 또 발을 동동 굴릴 만큼 아픈 것이다.

생리컵을 다스리지 못하는 생리컵 초심자는  마음이 북받쳤다. 나의 고생에 맞장구쳐 줄 동지들이 필요했다. 생리컵 사용법 영상 아래에 달린 댓글을 모조리 읽었다. 그곳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질 입구에서 생리컵 펴지면 내 질 아아아아아악ㅠㅠ' 과연 나만 겪는 고생이 아니었구나. 동지여! 나도 그 낭패감과 고통을 안답니다. 가슴 찡하게 공감했고 위로받았다.


이런 댓글도 있었다. '그냥 생리컵이 알아서 기어 들어가면 좋겠다.' 이 댓글의 대댓글 : '나올 때도 기어서.' 손뼉 치며 미친 듯이 웃었다.

절절한 마음은 쭉 이어졌다. '버튼만 누르면 안으로 쏘옥 들어가는 생리컵 있었으면 좋겠다', '저도 신세계 영접하고프네요', '생리 때마다 새로 도전하는 느낌', '한 시간 씨름하고 넣었습니다ㅠㅠ' , '으아아아못하겠어요ㅠㅠ', '면 생리대 쓰면 외음부 다 쓸리고, 생리컵 쓰면 질염 걸리는 나ㅠㅠ' 이 여성들이 곁에 있었다면 나는 그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을 텐데.


 생리컵이 나의 골든컵이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사용법이 미숙해서인지, 생리컵의 기능을 완벽하게 체험하진 못했다. 생리컵을 넣으면 이물감이 느껴졌다. 방광에도 조금 압박이 느껴졌다. 깊숙이  넣은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생리컵이 자꾸 내려왔다. 생리컵을 착용했지만 생리가 조금씩 샜다. 처음 착용한  밤엔 생리혈이  이상  버렸다.  생리대를 같이 써야 했다. 다행히 하루 이틀 지날수록 새는 양이 줄었다. 셋째 날엔  능숙하게 넣고   있게 되었다. 6시간마다  번씩 뺐다 꼈더니 질에 자극이 가서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생리량이 적어진 3~4일째부터는 생리컵을 넣는  불편해져서  생리대만 썼다.


생리컵과 면 생리대를 반반씩 사용한 생리 기간이 끝났다. 한 달 전 생리 땐 후폭풍이 끝없는 태풍처럼 몰아쳤는데 이번 생리 끝엔 가랑비가 며칠 내리는 느낌이다. 축축한 면 생리대에서 100% 탈피하지 못한 탓인지, 참을만한 가려움이 일주일 정도 지속되긴 했다. 그래도 이전 생리보다 생리 후 트러블이 4/5 정도 줄었다. 살 것 같다.


왜 생리는 대변이나 소변처럼 임의로 배출할 수 없을까. 왜 여성의 신체는 생리 배출을 자유자재로 참거나 조절할 수 없는가. 신호를 느꼈을 때 깔끔하게 빼낼 수 있는 배변활동 같은 시스템이면 좋을 텐데. 갑자기 흐르는 코피처럼 생리를 속수무책으로 흘릴 수밖에 없도록 여자의 몸은 설계됐다. 나는 어쩌자고 생리대 같은 게 필요한 불편한 몸뚱이를 데리고 살고 있나. 일회용 생리대를 약 20년, 면 생리대를 약 10년 견딘 내 몸이, 생리컵은 얼마나 견뎌줄지 모르겠다. 매달 찾아오는 생리는 연륜이 쌓일수록 수월해지긴커녕  나이 들수록 더 공포스럽다. 다음 생리 때도 나는 생리컵과 면 생리대 사이에서 전전긍긍하겠지. 조금이라도 나를 덜 손상시키기 위해서.


생리, 생리대, 생리컵만 불편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생리'라는 단어조차 불편했다.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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