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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Nov 30. 2020

내가 생리 이야기를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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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글에 이어)




생리컵을 써본 것도 처음이지만 생리 이야기를 길게 써보는 것도 처음이다. '생리'는 그것을 처음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쑥스러운 단어였다. 가정 교과서에서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나와 친구들은 "나 생리해"라는 말 대신 "나 그날이야", "나 마법에 걸렸어", "나 매직 중이야"라고 말했다.


미처 생리대를 준비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생리가 시작되는 날도 있다. 그럴 땐 친구에게 생리대를 꾸었다. "생리대 좀 빌려줄래?"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 친구 귀에 대고 "혹시 '그거' 있어?"라고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양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직각으로 펴서 네모를 만들어 보인다. 친구들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재빨리 비상 생리대를 꺼낸다. 우리는 누구에게라도 들키면 큰일 날 것 같은 동작으로 책상 아래에 손을 넣어 생리대가 보이지 않게 샤샥 주고받았다. 생리대를 받은 자는 그것을 교복 주머니에 잽싸게 집어넣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옷에 생리혈이 묻어본 적 없는 여성은 지구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조심스럽게 소곤소곤, 그러나 빛보다 빠른 속도로 "너생리샜어"라고 귀띔해 줬다. 옷에 피 묻은 걸 들키지 않게 해 주려고 가방이나 잠바 같은 것도 마구 건넸다. 생리혈이 옷에서 흘러나와 의자 같은 곳에 묻었을라치면 너도 나도 앞다투어 휴지나 물티슈를 꺼내 신속하게 닦아주었다. 자기 일처럼 안절부절했고, 자기 일처럼 도왔다.


피 묻은 교복 치마를 벗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앉아 있으면 꾸중을 듣기도 했다. 전후 사정 모르는 남자 선생님께서 불쑥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 교복 대신 이걸 입었어? 복장 단정히 해라." 우리들은 캐러멜 수십 개가 이에 달라붙은 것도 아니면서 변명도 설명도 못한 채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억울한 분노의 용암을 속에서만 부글거리며.


왜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다. 우리들에게 '생리'는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발음하면 안 되는 단어처럼 취급했다. 금지어는 생리만이 아니었다. '외음부'나 '질' 같은 단어도 '거기/ 아랫도리/ 밑'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눈/ 코/ 입'처럼 '외음부'나 '질'도 몸의 부위에 붙은 이름일 뿐이지 않나. 유독 어떤 이름에는 별명을 붙여야 덜 민망하고, 덜 경박스럽고, 덜 되바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교장인 덤블도어는 말했다. "볼트모트라고 부르렴, 해리. 항상 올바른 명칭을 사용해야 한단다. 명칭에 대한 공포는 곧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 자체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든." J. K. 롤링이 해리 포터를 좀 더 일찍 썼어야 했는데.


나와 내 여중 친구들에겐 "우리의 생리를 세상에 알리지 말라!"라며 장렬히 전사한 장군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린 가상의 장군님께 복종했다. 신경을 곤두세워 생리를 감추고, 생리에 대해 침묵하고, 생리혈을 빛의 속도로 닦았다. 죄도 병도 아닌 생리 앞에서 우리는 움츠러들었다.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면 생리대를 쓰면서부터다. 면 생리대 세탁의 마지막 코스는 쨍한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표백과 소독 효과에 탁월한 햇빛 건조는 면 생리대 관리에 꼭 필요하다. 한편, 우리 집은 주로 1층이거나 2층이었다. 바깥사람들에게 우리 집 빨래가 꽤 잘 보인다. 어느 날 오랜만에 방문한 친정어머니께서 내가 말리는 면 생리대를 보셨다. "저런 건 방에서 말려. 다른 사람 보는 거 민망하다."라며 미간을 찌푸리셨다.


나는 전혀 민망하지 않았다. 저건 내 필수품이다. 햇볕에 말려야 더 깨끗하게 안심하며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더러운 생리대도 아니고 말끔하게 세탁한 것이니 남에게 불쾌감을 줄 일도 없다. 오래전 우리 애들 똥 묻은 천 기저귀도 깨끗이 빨아 햇볕에 말렸었다. 더러운 걸로 따지면 천 기저귀가 앞서지 않나. 하지만 천 기저귀를 널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생뚱맞은 칭찬을 받곤 했다. "아이고 새댁 천 기저귀 쓰는구나. 그래 종이 기저귀 그거 낭비야. 애들한테도 하나 좋을 게 없고." 나는 속으로 '일회용 기저귀를 더 많이 씁니다.'라고 대꾸하며 들을수록 괴이한 칭찬은 세탁기에서 갓 꺼낸 빨래처럼 탁탁 털어버렸다.


세탁한 천 기저귀가 부끄러운 물건이 아니듯 세탁한 면 생리대도 그러하다.


이다혜 작가는 『출근길의 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화장실을 갈 때 "똥 마려워요" "오줌 마려워요"라고 하자는 뜻이 아니라, 여성들의 생리작용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화법을 권장하는 게 싫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일어나지 않는 척하는 데 다들 너무 도가 터서, 자기의 뇌가 판단해 내린 의견과 생각에 대해서도 쿠션을 치곤한다."

일어나지 않는 척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요조에게는, 그래서 시원함을 느꼈다. "언니, 전 생리가 너무 싫어요." *


30년 가까이 생리를 했지만 아직도 쉽지 않다. 도리어 갈수록 어려워진다. 피부가 약해지고 노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그러하다. 생리통으로 말도 못 하게 고생하던 교회 후배의 하소연이 기억난다. "언니, 저는 창세기에서 하와에게 선고된 해산의 고통에 생리통이 포함된다고 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학자들이 이 의견을 어찌 생각하는지 확인하진 못했으나, 나는 후배의 고통에 주저 없이 연대했다.


생리는 생리통이나 생리가 진행되는 일주일만 곤란한 게 아니다. PMS(생리 전 증후군)부터 시작된다. 나의 PMS 증상은 식욕이 상승되고, 가슴과 허리가 뻐근하게 아프고, 약한 몸살기가 도는 것이다. 생리 중엔 생리통을 겪는다. 생리량이 많은 첫날과 둘째 날은 아랫배가 푹푹 쑤시고 외음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몸도 붓는다. 생리 중엔 질에서 피가 콸콸 줄줄 질질 흘러서 외음부에 다 묻는다. 생리 끝나면 생리대 착용 후유증으로 외음부 피부가 벗겨지거나 뾰루지, 염증, 가려움증이 찾아온다. 생리에서 파생된 질염이나 각종 감염으로 치료를 받는 여성도 적잖다. 이런 생리를 대부분의 여성이 약 일주일씩, 매달, 수십 년 동안 겪는다. 이 세상에 쉬운 생리는 없다.


생리는 내 몸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리는 월례 행사이다. 동시에 번거롭고 고생스러운 일상의 방해물이다. 거대한 무게를 양쪽에 끼운 역기 같은 생리를 나는 잘도 존재감 없는 척 대했구나 싶다.


생리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는 것은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를 아무렇게나 펼쳐놓는 것 같은 불쾌감을 주겠다는 의도가 아니다. 부풀려 말하면서 응석 부리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나 자주 반복되는 내 몸의 현상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고,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뿐이다. 나에게 있는 이 거대한 이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다. 내가 학생일 때보다는 사회 분위기가 나아졌지만 아직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해 보인다. 조지 오웰은 말했다. "집안일을 개선하는 속도와 비슷한 속도로 전쟁을 일으키는 방법을 연구했다면 우리 인간은 이제야 막 화약이 뭔지 발견하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전쟁 같은 거 말고, 내 몸에 가까이 붙어있는 일상적인 일들에 더 많은 연구와 개선이 필요한 건 1900년대나 2000년대나 똑같다. 우리나라 식약청이 2017년에 와서야 생리컵을 처음으로 허가한 것만 봐도 그렇다.


생리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불필요한 쑥스러움을 한여름의 패딩 잠바처럼 껴입고 있다. 이 이야기를 괜히 금기시하지 않으면 좋겠다. 여성이 생리하는 건 당연한 건데 왜 유난 떠냐고 지탄해서도 안된다. 그건, 매달 일주일씩 두드려 맞는 사람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할 때 "매번 맞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유세냐?"라며 손가락질 함에 다름 아니다. 세상의 절반이 겪고 있는 중요하고 힘든 일이라는 합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여성이 더 건강하고 쾌적한 생리 기간을 보내기 위한 기초이다.


생리 이야기는 수면 위에 동동 떠있어야 한다. 자꾸자꾸 이야기해야 여성의 몸이 보호받을 수 있다. 안전하고 튼튼하고 편리하고 저렴한 생리 용품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발암물질이 들어간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지식도 대안도 없어서 뭣도 모르고 20년 넘도록 그걸 사용해버린 나 같은 사람은 더 이상 없어야 된다. 몸에서 가장 예민한 피부에 그따위 것을 1700일 내내 붙이고 다니느라 외음부에 진저리 나는 고통을 겪는 피해자도 이젠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여성은 더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하고, 사회는 그 목소리에 바짝 귀 기울여야 한다.


학교에서의 교육도 더욱 세심하게 다듬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초등 고학년인 큰애는 한 달 전 보건 수업 때 생리에 관해 배웠다고 했다. 다음의 것들을 알게 되었느냐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 생리할 때 생리량은 어느 정도인가, 생리대의 종류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각각의 생리대 장단점은 무엇인가, 생리대는 어떻게 사용하고 처리하는가, 생리대 파우치에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가.

아이는 생리대에 관해서는 딱 한 가지만 배웠다고 했다. "날개형과 일자형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 외엔 생리를 왜 하는지에 대해 배운 게 전부란다.

생리컵 관련 유튜브 영상에 달린 어느 초등학생의 댓글이 생각난다. '저는 초등학생인데요 생리가 너무 힘들어요 ㅠㅠ 저도 생리컵 쓸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니 여기 와서 묻는구나 싶었다. 안쓰러웠다. 생리컵 사용 권장 나이는 만 16세 이후이다.


생리로 애먹을 때 생각난 성경 속 이야기도 있다. 혈루증을 앓은 여인의 이야기다. 혈루증은 끊임없이 하혈하는 부인병의 일종이다. 이 여인은 수많은 의사를 찾아갔고 치료비에 전 재산을 다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다. 한 달에 일주일 하는 생리도 엄청난 스트레스인데 이 여인은 12년 동안 끊임없이 하혈을 했단다. 게다가 혈루증을 앓는 여성은 율법에 의해 사회적으로 부정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측정할 수없이 막대한 육체적인 고통, 불치병을 안고 사는 희망 없음, 가난, 사람들의 외면, 사회적 고립 속에서 그녀는 긴 세월을 죽은 듯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다. 그 즉시 혈루증이 나았다. 수많은 인파가 예수님을 떠밀던 중이었으나 예수님의 안테나는 그녀에게로 향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율법에 의해 타인과의 접촉이 금지된 혈루증 환자인 동시에 사회 문화적으로 지금보다 더 멸시받던 신분인 '여성'의 접촉을 예수님은 환영하셨다. "딸"이라고 다정히 불러 주셨다. 피 흘리는 여인의 고통을 이해하셨다. 그 병을 고쳐주셨다. 구원과 평안을 선물해 주셨다. 치유와 환대를 받은 그 여인의 삶은 마침내 해맑아졌으리라.


생명을 잉태할  있는 나의 몸은 경이롭다.  몸속에서 나는 생리라는 신산함을 꼼짝없이 감내한다.  몸엔 성실한 생리 말고도 경이 약속되어 있음을 안다. 나의 월례 곤란을 헤아린 신께서 내게 예정해 놓은  다정한 휴가를 나는 묵묵히 기다린다.


끓는 물에 생리컵을 소독했다. 보글 거리는 스텐 냄비 속에서 생리컵이 동동 떴다. 일 년에 열두 번씩 생리하는 수고로운 여성들에게 우정의 마음을 동동 띄워 보낸다.













*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요조가 임경선에게 한 말.

* 쉬운성경/눅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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