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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Dec 03. 2020

친애하는 도둑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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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락호락한 사람이다. 4년 전, 중고나라 카페에서 사기를 당했다. 내 6만 원을 삼킨 그대여 축하드립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 장난감을 사려다 그랬다. 암만 길어도 몇 해 놀고 나면 흥미가 사라질 물건, 지구를 파괴하는 플라스틱 블록, 새 걸 사려면 10만 원이 훌쩍 넘는 그 장난감이 중고나라에 올라온 것이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당장 댓글을 달았다. '아직 안 팔렸으면 제가 살게요.' 카톡 말풍선이 날쌔게 오고 갔다. 마침내 나의 6만 원이 그에게로 갔고, 나에게 장난감이 올 차례였다. 그러나 판매자는 돌연 과묵해졌다. 그는 나에게 한 토막 환희만 남긴 채 증발해버렸다. 나의 입금은 그를 행불자로 만들었다. 장난감에 눈이 멀어 조급했던 나는 그제야 판매자의 아이디를 더치트 사이트에서 조회했다. 검색 결과에 당당히 아로새겨진 그의 아이디. 아~ 중고거래는 직거래가 답이네? 소중한 교훈을 깨닫게 되어 마음에 긍지가 차올랐을 리가 없고 발을 구르고 싶게 짜증 났다. 중고나라에서 즉각 탈퇴했다. 그날부터 내 삶에 중고거래란 없다.


결국 6만 원 보다 훨씬 싼값을 주고 같은 장난감을 샀다. 설명서가 중국어로 된 이미테이션 상품.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해외 직구였다. 개인통관 고유부호를 적는 나의 손이 부끄러웠다. 멍청하게 돈을 잃은 내 손, 플라스틱을 소비한 내 손, 짝퉁 시장을 배불린 내 손, 중국-동해-한국에 탄소 발자국을 남발한 내 손…. 그래도 사기꾼의 손보다는 내 손이 고우려나. 한 6만 원어치 고우려나.


아이들에게 일 년에 두 번 선물을 사 준다. 생일과 새해에만 선물을 받는 것이 우리 집 문화다. 부족한 듯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육아 철학이기도, 부족한 가정경제를 반영한 현실 정책이기도 하다. 사기꾼이 나에게 갈취한 것은 6만 원이 아니다. 환경에 해를 덜 끼치려고 전전긍긍하는 내 마음, 없는 살림에 아껴보려고 인터넷에서 발품을 판 주부의 살뜰함, 아이의 선물을 고르는 어미의 기쁨, 오랫동안 기다렸던 선물을 코앞에 둔 아이의 기대, 이것들을 몽땅 들고 그는 튀었다. 6만 원에 팔기엔 꽤 값나가는 것들인데. 그는 참 운수가 좋다.


돈을 사랑하는 협잡꾼들은 지구를 떠나야 한다. 내 눈앞에서 치우고 싶어서 이런 소릴 하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더 나은 대안이 있어서다. 도둑들을 위한 추천상품을 대인배의 마음으로 오픈하는 바이다.




<게자리 55e 행성으로 모십니다>


땀 흘리지 않고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친애(䞋騃)하는 도둑님들, 안녕하십니까. 푼돈 훔쳐보려고 오늘도 구슬땀 흘리셨지요? 도둑님들의 숨을 고르게 해 줄 단 한 가지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거대하고도 기름진 보고를 놓치지 마세요.


게자리 55e 행성이 그 기회의 땅입니다. 게자리 55e는 지구보다 2배 큽니다. 질량은 8배나 큰 행성이고요. 이 행성의 구성 물질에 주목하세요. 질량의 3분의 1이 다이아몬드입니다*. 지구식 환율로 변환하면 2700양 달러예요. '억'도 아니고 '조'도 아닙니다. '경'도 아니고 '해'와 '자'도 아니지요. '양'입니다 '양'. 27뒤에 0이 30개 붙는 숫자에요. 루비와 사파이어를 선호하신다면 HD219134b 행성도 슬쩍하시지요. 지천에 빨강 파랑 보석들이 널린 곳이니까요.


고작 6만 원을 훔치려고 장난감 사진을 긁어 붙이고, 제품 설명을 작성하고, 구매자와 카톡을 주고받던 너절한 고생일랑 지딱지딱 버리세요. 설마하니 숫자 뒤에 0이 4개 붙는 걸로 만족하시려구요. 똑같은 도둑질로 풀어먹는데 누군 '양'을 삼키고 누군 '만'만 건지는 건 안 될 일이죠. 대박의 냄새를 맡고 벌써 발 빠르게 게자리 55e 행성으로 출소… 아니 출발한 절도범, 주가 조작범, 회계 사기범, 불법 경영 승계범들이 계시답니다. '범'들인 만큼 그야말로 개새… 아니 호랑이처럼 대범하시네요. 사기꾼, 강도, 날치기, 불한당, 보이스피싱 사장님, 여러분도 늦지 않았습니다. 주저 말고 걱정도 말고 도주… 아니 경주하세요. 나눠 먹을 0은 충분하거든요. 우주는 -270 ° C라서 땀 한방울 안 흘리고 돈 벌기에도 딱이에요. 지구에서 21광년밖에 안 되는 곳이니 환생… 아니 환승 몇 번 하다 보면 도착하신답니다. 이제 별 볼일 없는 지구인들은 노 터치하시고 탐스러운 노다지를 삼키러 안녕히 다녀오세요. 지금 바로 당장 즉시 빨리 냉큼.







*팩트 : 다이아몬드일 '가능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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