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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커피 전쟁 20화

커피 전쟁

20. 분통

뉴스를 보던 기범씨는 분통이 터졌다.





“아니, 왜 내 세금이 저 놈의 커피 유엔인가 뭐시기인가로 흘러가는 거야!”





아무리 코카콜라를 벌컥벌컥 들이마셔도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알고 보니 기범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았다.





지금까지는 커피 인구에 밀려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제 커피를 아예 마시지 않는 기범씨와 같은 사람들이 수면위로 떠올라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저들처럼 행동합시다.”





그들은 행동하기 시작했다.





‘왜 내 돈이 나와 상관도 없는 커피 유엔으로 흘러가야 하는가’ 이 주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들이 홍수처럼 퍼졌다.





평소에 개그와 재미있는 짤들로 유명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기범씨였다.





기범씨는 또한 자동차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많아서 자동차 커뮤니티에도 가입되어 있었다.





그런데,





커피와 전혀 상관없는 그 두 커뮤니티에서 갑자기 커피 글들이 자유 게시판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커피 유엔' 가입에 관한 반대글이었다.





아이디 '노커피맨'이 올린 글이었다.





-졸속으로 처리된 커피유엔가입. 우리 힘으로 막아야 합니다.





커피유엔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만을 위한 국제기구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유엔이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실질적으로 전 세계에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유엔 기구를 모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코카콜라에서 생산되는 커피를 나라마다 균등히 분배하고 에디오피아에 커피 재배를 활성화하자는 게 저들의 활동 목적입니다.





어떻게 나라마다 커피를 균등히 분배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같은 값으로.





거기에는 커피 유엔에 가입한 나라들의 돈이 들어갑니다.





그 돈을 모아 코카콜라와 독점 계약을 맺고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에 관계없이 커피를 같은 가격에 분배하지요.





아니, 지금이 공산국가 사회입니까?





왜 회사간의 일에 국가 기구가 나서서 개입합니까?





더군다나.





커피유엔의 각국 활동비





여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은 첫번째로 커피유엔에 가입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찬반 투표도 없었습니다.





당시 커피 인구의 열렬한 시위 탓에 바짝 긴장한 국회위원들이 졸속으로 결정,





커피 유엔에 엉겁결에 가입한 것입니다.





거기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이 들어간 건 일프로도 없었습니다.





커피 유엔의 가입비는 억단위입니다.





그리고 억단위의 활동비를 일년마다 내야 합니다.





그 활동비를 모아서





그들이 말하는 커피 분배의 평등화를 이루는 겁니다.





하지만,





저처럼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





우리의 세금이 거기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의 세금이 거기로 들어가야 합니까?





저는 우리나라의 커피유엔 가입을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뜻에 같이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견을 표현해 주십시오!-





'노커피맨'의 글은 이렇게 끝이 나 있었다.





'바로 이거야!'





아무리 코카콜라를 들이부어도 뭔가 개운하지 않았던 기범씨의 마음이 드디어 개운해졌다.





'우와, 우와!'





기범씨는 댓글을 달았다.





-의견에 적극 찬성합니다. 저 역시도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피같은 돈이 커피유엔인가 뭐시기인가에 흘러들어간다니,





배가 아파 죽을 지경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커피유엔' 이 네글자를 두고 설전에 설전을 거듭하는 실정이 되었다.





커피 유엔 가입이 불가피하다는 측, 즉 영선과 같은 사람들과





커피 유엔 가입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다, 기범과 같은 사람들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이것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선의 회사.





커피홀릭인 김부장은 요새 너무나 행복하다.





한국이 커피유엔에 가입한 후로, 예전보다 훨씬 싼 값으로 양질의 에디오피아 커피를 맛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부장에게 억압받던 서무관을 기억하는가.





그는 김부장이 커피를 마시면서 콧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를 갈았다.





'으, 아까운 내 돈.





나는 커피도 안 마시는데. 커피유엔인가 뭐시기인가 때문에.......





내 아까운 세금이 낭비되고 있어.'





서무관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켰다.








‘이번주 토요일 열두시 국회의사당으로 모입시다!’





'노커피맨'의 글이 올라왔다.





'우리도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회의사당 앞에서 우리 뜻을 관철합시다!





우리의 의사를 확실히 국회의원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저들 역시도 결집했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이번주 토요일 열두시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입시다!





여기에 참여하실 분들,





물품으로 후원하실 분들은 댓글로 마구 알려주세요.





힘을 합칩시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 글을 보던 기범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와, 나가고 싶다!





그런데 나간다면 영선이의 반응이 어떨까?'





아무래도 아내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내가





커피 유엔이 설립된 이후로





"살맛난다, 살맛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기범씨는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지"라는 말이 입에 붙은 채로 살고 있었다.





아무튼지 커피 유엔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팽팽했다.





뉴스에서 커피 유엔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두 사람은 침묵했다.





쉽게 말을 꺼냈다가는 큰 싸움으로 이어질 것을 서로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영선씨한테 커피 유엔 반대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말한다고?





오마이갓!





하지만





불끈, 힘이 솟는게 느껴졌다.








토요일 열두시 국회의사당 앞.





와.





끝도 보이지 않는 인파가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 주변 교통이 마비가 될 지경이었다.





시위의 주동자들은 사람들에게 붉은 띠를 나누어 주었다.





“커피 안 마시는 사람의 재산권을 보장하라.”





주동자가 크게 외쳤다.





그러자“보장하라. 보장하라”사람들이 합창하듯 외쳤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기범'이 있었다.





무엇에 홀린듯, 귀신에 홀린듯 기범은 지하철을 타고 국회의사당 앞으로 온 것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코카콜라를 무료로 나누어 주는 거였다.





코카콜라나 생수를 무료로 나누어 주었는데





기범의 선택은 단연 코카콜라였다.





와.





나와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기범은 기뻤다.





가슴이 확 시원해지고 트이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들은 국회의사당에서 실컷 시위를 했다.





목이 터져나갈 때까지.





목이 터져나갈 때가 되면 생수나 코카콜라로 목을 축이고 또 다시





"커피 유엔 가입을 철회하라!"





"커피는 마시지 않는 사람의 재산권을 보장하라"





를 목청껏 외쳤다.





그렇게 두시간 가량 지났을까.





와.





급기야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종로쪽으로.





그 누가 뭐라 지시한 사람이 없었다.





그저 사람들은





빨간 띠를 이마에 매고 무엇에 홀린듯





묵묵히 걸었다.





구호를 외치면서.





손을 허공에 휘두르면서 말이다.





기범씨도 오랜만에 해방된 기분이었다.





아 , 이 맛에 시위라는 것을 하는구나!





그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엡빅싱 기자 박재기입니다. 인터뷰 좀 응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오, 안되는데.





기범씨는 그때야 영선씨가 혹시나 자신이 이 시위에 참여한 것을 티비에서 볼까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박재기 기자는 기범씨가 그 누구보다도 팔딱대는 활어처럼 이 시위에 진심이라는 것을 아까 전부터 알아차리고 그를 주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박재기 기자는 한 번 타겟을 물면 놓치지 않는 타입의 기자였다.





"모자이크 처리 해드리겠습니다. 의견만 밝혀주시면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어떻게 나오시게 되셨습니까?"





오마이갓!





갑자기 기범씨의 입이 터져버렸다.





"커피유엔에 제 돈을 헛되이 낭비하는 현실이 싫어서 나왔습니다.





정부는 커피 마시지 않는 사람의 재산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어디서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기범씨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곧 기범씨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보장하라, 보장하라"를 외쳤다.





그들은 그렇게 종로로 흘러갔다.





광화문 앞.





오마이갓!





커피 유엔을 지지하는 집단들이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중에 영선씨가 있을 줄이야.





오마이갓!





기범씨는 격해진 감정 때문인지 어느새 시위의 앞자리 쪽에 자리잡고 구호를 힘차게 외치고 있었다.





"정부는 커피 유엔 가입을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





구호가 이어졌다.





그러자 상대편 시위대에서 곧바로 응수가 이어졌다.





“정부는 커피 유엔 가입을 철회 말라.”





“철회 말라”, “철회 말라” 합창이 이어졌다.





그들의 숫자도 엄청났다.





오마이갓!





그 안에는 영선이 있었다.





그들은 적으로 만난 것이다.





그들은 시위대에서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곧 서로를 노려보았다.





설마, 설마,





내 남편이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커피를 이제야 안정적으로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돈 내는 게 고까워서 이 시위까지 나왔단 말이야!





영선은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다.





기범은 기범대로 '이놈의 여펀네가 또 시위에 나왔단 말야!' 하고 분노했다.





시위가 끝났다.





그 둘은 따로 따로 집에 돌아갔다.





집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땀투성이인 채로 두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앉았다.





"이혼해."





영선이 말했다.





"좋아."





기범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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