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정치판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커피 유엔 가입을 철회하겠습니다.”
“저는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해 커피 유엔 가입 유지에 사활을 걸겠습니다.
”정치인들은 공약에 커피 유엔 가입을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밝혀야 했다.
그래야 사람들의 표심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치인들의 입장 표명에 따라서 사람들의 표심이 달라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기범과 영선.
그들은 며칠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
마음 속에서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커피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커피는 표면적인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피가 기폭제가 되어서 그들은 헤어지게 된 것은 분명하다.
끔찍한 효자에 어머니를 우선시하는 기범씨와 살기에 영선씨는 너무나 팍팍했다.
다른 아들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어머니 에어컨 달아들인다고 설치고,
또 그걸 설치하러 가는 길에 그렇게 길에서 커피 순례를 가는 사람들을 욕하고.
그때 한차례 영선씨 마음에 멍이 들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선씨가 커피를 마시는 것을 고깝게 여기는 것을 영선씨는 잘 알고 있었다.
영선씨가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아오면서 커피에다가 쏟아붓는 돈을 얼마나 아까워하는지.
아이구, 치사해.
영선씨는 점차 치사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피를 사마시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영선씨는 커피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해못해주다니.
내 유일한 힐링템인 커피를 마시는 일을 이해못해주는 남편과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얼마전 커피시위에서 남편의 모습을 보았을 때
영선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저 팔팔한 기세.
마치 소라도 때려눕일 것 같은 저 팔팔한 기세라니.
아이고 무서워라.
그의 내재된 분노는 혹시 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쩌면 그는 나와 같이 사는 게 너무나 지겨워져서 커피시위까지 나온 걸지도 몰라.
여기서 헤어지는 게 낫겠어.
기범씨는 기범씨대로 영선씨에게 너무나 서운했다.
아니, 커피 시위를 한번이면 족하지, 두번이나 나가?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기범씨는 영선씨가 자신의 어머니를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어머니에게 해드린 것을 고깝게 생각한다는 것도.
그때 에어컨 설치를 두고 설전을 벌인 것도 사실은
영선씨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에어컨 설치를 하러 가는 걸 마음 속으로 싫어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그야말로 이 세상에 하나뿐인 구원자 같은 고마운 분이셨다.
세 아들 중에 유일하게 대학에 간 사람은 둘째아들 기범씨 뿐이었다.
기범씨가 공부에 소질을 보이는 것을 아는 어머니가 기범씨의 대학 진학까지 팍팍 밀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범씨는 삼형제 중에서 경제적으로 어머니에게 가장 수혜를 입은 그런 케이스였다.
그것도 홀어머니.
아버지 없이 큰 기범씨였다.
홀어머니가 아들 세 명을 입히고 재우고 먹이는 것만해도 벅찬 일인데,
거기에다가 기범씨만 유일한 대학졸업자.
그래서 기범씨는 어머니에게 더 채무 의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범씨는 어머니, 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떨려왔다.
한없는 존경심과 경외심으로.
어머니가 시장에 나가서 막일을 하면서 자신들을 키워온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잘하는 게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그건 대학입학금까지 내 준 어머니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그래서
에어컨 설치도 해드린 것이다.
그리고 그걸 고깝게 여기는 영선이 너무나 미웠다.
이런 현실이라니.
이 둘은 이미 갈때까지 갔다.
그들은 법원에까지 간 것이다.
그리고 4주간의 조정시간이 주어졌다.
4주후면 정말로 이혼이 성립되는 것이다.
때는 마침 대선과 맞물려 있었다.
세상은 커피파와, 반 커피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것은 정치판도 마찬가지였다.
자주당 출신 대통령 후보인 최재천 씨는 말했다.
"저는 커피 문제에 대해 심도깊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한국의 커피연합 가입을 지지합니다.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는 분들께서는 불편한 결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세계의 커피 수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안으로,
또한 그것은 세계의 폭동을 미연에 방지하는 억제제 역할을 하기에
저는 커피 연합의 존재를 지지하고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커피 연합에 참여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합니다."
그래, 좋았어.
영선씨의 선택은 당연히 최재천 후보였다.
하지만 기범씨는 달랐다.
보수당인 최고당 출신의 이수찬 후보를 지지했다.
"여러분,
커피 연합이 순기능이 많다는 것을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폭동을 막는다구요?
오히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의 폭동 혹은 시위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커피 가격은 예전처럼 자율적으로 시장의 손에 맡겨져야 합니다.
이것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의 커피연합가입을 철회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를 지지해 주십시오!"
기범씨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래, 이거지!
아오, 꼴보기 싫어.
남은 사주까지 어떻게 버티지. 이 집에서.
4주간 같은 집에서 사는 것도 정말 고역이었다.
하지만 법적인 이유 때문에 어찌되었든지 그들은 4주간 이혼 숙려 기간을 가져야만 했던 것이다.
안돼!
정말 싫어.
당장 이혼하고 싶어.
저렇게 속 좁은 인간이라니.
내가 커피 한 잔 자유롭게 마시는 것은 고깝게 여기면서 시어머니한테 들어가는 돈은 하나도 아까워하지 않는 그런 인간하고 어떻게 남은 4주간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아, 미쳐버리겠다.
커피 연합이 생기고 한국에 안정적으로 커피수급이 이루어졌을 때
영선씨는 정말이지 세상이 종말에서 구원으로 돌아선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제 커피값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커피 대란이 일어나기 전으로 말이다.
물론 약간 커피 값이 올라가긴 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칠천원 정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질이 나쁜 원두는 사천원 정도면
아메리카노 한잔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게 어디야.
삼만원, 십만원, 이십만원까지 했던 가격이 이렇게 놀랍게 안정되다니.
이것은
커피 연합이 코카콜라와 독점 계약을 맺고 전세계에 평등하게 커피양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에디오피아에 연구소를 세우고 커피 재배에 열을 올려서
많은 커피 수확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좋아.
이 일에는 수천억의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커피 연합에 가입된 국가들이 연구소에서의 커피 나무 개발과 커피 거래에 돈을 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도 매년.
그렇기 때문에 커피 연합에 가입한 국가들은 안정적으로 커피를 수급받을 수 있었다.
아, 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커피 수급이 안정적으로 되면서 커피매니아인 회사 상사인 김부장의 미간도 활짝 펴져 있었다.
예전에 기억하는가.
그는 회사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무섭지만 아내에게만은 순한 양인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회사에서 회사원들에게 심한 질책을 하고 나서는 커피를 돌림으로써
사태를 지휘하는 타입의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요새 너무나 행복하다.
예전처럼 그는 마음대로 회사 식구들에게 커피를 대접할 수 있었다.
이것이 천국 아닌가!
그렇게 커피 매니아들에게는 이 세상이 다시 살만한 곳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깟 세금 좀 들어간다고 그게 그렇게 아까워할 일인가.
솔직히 세금이 전혀 말 안되는 쪽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데.
멀쩡한 도로를 새로 까는 것도 그렇고 세금이 줄줄 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그깟 커피 연합에 들어가는 걸 꼬투리 잡는다는 게 영 말이 안된다는 게
그건 국민의 '행복권'을 막는다는게 커피연합 지지자들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커피연합 가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왜 무고한 자신의 세금이 쓸데없는 곳에 들어가야 하는지'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었다.
물과 기름.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과 같은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유력한 대권후보인
두 사람은 커피 연합에 대해 의견을 표명해야 했던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구원은 전혀 다른 곳에서 왔다.
묻힌 줄만 알았던 한국의 커피 재배자 김재팔 박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