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한국이 커피 종주국이 되다
“마침내 한국이 커피 재배국의 종주국이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대선이 한달남은 시점,
갑자기 뉴스 보도에 등장한 김재팔 박사.
그는 엠빅싱 저녁 여덟시 뉴스에 나왔다.
그리고 그의 뒤로 끝이 보이지 않게 넓고 길게 펼쳐진 커피 농장이 펼쳐졌다.
하우스가, 아니었다!
하우스 재배가 아닌 것이다.
현재 에디오피아에서 이뤄지고 있는 하우스 커피재배가 아닌
한국 현지에서 저렇게 대규모로 커피농장이 운영되고 있었다니!
예전 김재팔 박사는 홈쇼핑 사건 이후로 사기꾼으로 판명되어서 세간에 묻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가,
아무도 모르게 커피재배에 아직도 열을 올리고 있었을 줄이야!
커피유엔가입,
그리고 정치인들의 표심 공략에 지쳐 있는 한국인들은 경악하며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국은 알게 모르게 커피 재배에 가장 적합한 온, 습도, 강수량을 지닌 나라로 성장하였습니다.
자, 보십시오.
저희 커피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한국산 커피를.”
에이, 말도 안 돼!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홈쇼핑에서 그가 팔았던 커피는 별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커피를 가지고!
한두명씩 그의 커피를 먹어보는 사람이 생겨났다. 순전히 호기심으로.
그리고 그 호기심은 오마이갓!
광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예전의 그 이상한 짝퉁 커피맛이 아니에요.
에디오피아 커피의 선명한 신맛을 가진
진짜, 커피입니다.
이 정도면 한국 스페셜티 커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에디오피아 커피보다 더 산미가 진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람들의 후기가 이어졌다.
그렇다, 이번은 달랐다.
그의 커피는 에디오피아 G1 커피보다도 더 산미가 진했고 맛이 풍부했다.
오마이갓! 사람들은 그의 커피에 열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더 좋은 소식!
“여러분 좋은 소식입니다. 어디서건 어느정도의 고도만 보장되면 커피 나무를 심으세요. 한국이 이제는 세계적인 커피 재배국입니다.”
김재팔 박사는 자신의 사이트에서 커피 종자를 팔았다.
슬프게도, 온난화 현상의 영향으로 한국은 이제 커피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진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김재팔 박사는 커피 종자의 판매로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리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끝도 없이 주렁주렁 자라나는 커피 체리들.
이 모든 게 돈덩이였다.
그리고 한국은 이제 커피 재배국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줄지어 김재팔 박사로부터 커피 종자를 사들였다.
그리고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야산에 커피 나무를 심었다.
"삼년만 기다리십시오. 그러면 커피수확이 가능합니다."
김재팔 박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커피 아카데미를 통해
커피농사꾼을 모집, 청년 커피농사꾼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살이에 지친 청년들, 그리고 커피 재배에 뜻이 있는 청년들은 그의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저마다시골로 들어가커피 농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삼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지금의 대통령은 다행이랄까, 커피 연합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부지런히 김재팔 박사의 원두 연구와 커피재배, 그리고 산업 육성이 급물살을 타고 현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삼년이 지나갔다.
오마이갓!
오마이갓!
약 삼년이 지나자 한국 시골 전역에서 벌써 커피체리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치 예전에 한국에서 쌀농사를 짓는 것처럼 커피농사를 짓는 게 보편화될 정도였다.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제 기후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더 이상 쌀농사를 짓기가 어려워졌고 그 대신에 커피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내몰리게 되었다.
곧 대대적인 커피 농사가 시작되었다. 정부 주도 하에.
그것이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
한국에서 재배된 커피는 전 세계에서 특급커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맛과 향 모두에서 말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에디오피아에 굳이 커피 하우스를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에서 나온 커피를 바로 수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스페셜티 커피가 이렇게 완성되었다.
그러자 에디오피아에 있던 커피 유엔 본부가 한국 산청으로 옮겨 왔다.
그야말로 빅뉴스였다!
커피 유엔본부국이 한국이 되다니!
한국은 더 이상 커피유엔가입비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어졌다.
커피 유엔 본부국에게는 오히려 운영 지원비가 주어졌고 커피 유엔 창설로 인해 고용 창출이 이루어졌다.
이제 한국이 커피 종주국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전 세계로 커피가 납품되었고 전 세계의 석학들과 커피 종사자 대표들이 모여 합리적인 가격 책정을 위해 노력했다.
그동안 커피 유엔에 내던 세금이 아깝다 어떻다 하던 말들이 쑥 들어가고 전 국민은 커피 유엔의 한국 본부를 지지했다.
그야말로 커피로 인해 국민 대통합이 이뤄진 것이다.!
초대 커피 유엔 대표로 김재팔 박사가 추대되었다.
“한국 커피 만세!”그가 외치자 장내의 모든 이들이 외쳤다.
“한국 커피 만만세!”
그 장내에는 두 손을 꼭 잡은 영선씨와 기범씨가 있었다.
4년 전을 기억하는가!
그 둘은 이혼을 앞두고 이혼 숙려 기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4주가 끝나 정말로 이혼이 이루어졌다.
에이 속 시원하다,
그들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서로의 빈자리가 그리워졌다.
영선씨는 기범씨의 잔소리가.
기범씨는 영선씨의 웃음소리가.
커피 유엔 지지자가 더 많았기에 커피 유엔을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그들이 이혼으로 각자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그 발표를 보면서 기범씨는 노여워했을까.
예전처럼 코카콜라를 들이키면서 '이게 왠 날벼락이냐!'라고 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기범씨는 오히려 씁쓸했다.
'그래. 내가 참 못난 남편이었지.
아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 하나 이해해주지 못하고.'
그는 더 이상 코카콜라가 땡기지 않았다.
에이.
영선씨와 헤어지면서 그는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을 구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오피스텔 1층에 위치한 카페에 하는 일없이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자신이 뱉은 말에 기범씨 본인도 놀랐다.
하지만 바리스타는 기범씨의 사정을 알리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곧 분주히 움직이며 김재팔 박사의 커피 농장에서 나온 원두로 아메리카노를 뽑아 대접한 바리스타.
'응, 이런 맛이라고?'
한모금 커피를 들이킨 기범씨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렇게 상큼하고 맛있는 게 커피라고?
믿을 수 없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시큼 털털한 커피가 아닌 이렇게 과일향이 나는 신선한 커피라니!
"바리스타님. 한 잔 더 주세요."
그는 그 자리에서 세 잔을 더 마셨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자신이 헛살아왔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왜 무턱대고 영선의 의견을 반대했을까.
영선이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 한 잔을 같이 할 마음을 왜 먹지 못했던 걸까.
연애때는 환심을 사려고 그렇게 먹기 싫은 커피도 한잔에 몇 잔씩 들이켰었으면서.
참, 우습기도 하지. 나란 남자.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잔, 두잔, 세잔을 거푸 들이켰다.
그의 회심은 어쩌면 그가 예전에는 정말 맛없는 원두로 만들어진 그런 커피를 먹었기 때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재팔 박사가 만든 산미 풍부하고 신선한 원두가
커피에 대한 그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지도 모른다.
으흐흑.
내가 어리석었어.
그는 사람들이 볼까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그 안에서 흑흑 울음을 터뜨렸다.
보고 싶어. 영선이.
영선이와 같이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어.
내가 어리석었어.
영선이가 그렇게 주말에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할 때마다 귀찮다고 거절했던 자신의 예전 모습이 떠오르자
예전의 자신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이 커피라면 하루에 몇 잔이라도 들이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커피 애호가가 되어갔다.
그리고 어느 밤.
영선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
마침 영선이는 최근에 교제하던 남자와 헤어진 상태였다.
그 남자는 스윗하고 다정했지만 책임감이 부족한 남자였다.
말만 스윗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에휴. 내가 남자보는 눈이 그렇게 없다니.
차라리 무뚝뚝해도 책임감 있는 남자가 낫지.'
이런 생각에 잠을 못 이루던 찰나
전 남편의 문자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주말에 만나
아직 서로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잘할게. 영선아. 많이 미안했어."
그가 반지를 내밀었을 때,
영선은 말없이 끄덕였다.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