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야 우리 당장 만나
오전 여덟시를 전후해 밖이 시끌시끌해진다. 곧 유치원 차가 아파트에 도착할 시간이다.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고 하나 둘씩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소담한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아파트라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기에 밖에서 나는 소리는 집 안까지 잘 들리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특유의 맑은 목소리로 뭐라 뭐라 하면서 달리고 웃고 그러다 유치원 차량이 도착하면 어디 멀리 가는 것처럼 애처로이 엄마를 찾는다. 엄마와 차량 도우미 선생님은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주고받고 아이와 이별을 나눈다. 이제 아이가 갔음에도 엄마들은 흩어질 줄을 모른다. 여전히 무언가에 대해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한참을 그러다가 여덟 시 반쯤이 되어서야 흩어진다.
한참 무기력 증에 시달릴 때는 밖에서 나는 소리가 잠을 방해하는 소음으로만 들렸다. 여덟시면 한창 암막 커튼을 치고 잠을 자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여름이라 창을 열고 자야 했고 그 소리는 집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는 없었다.
저들은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걸까. 나로서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마도, 유치원에 대해서, 그리고 애들 키우는 이야기들을 하지 않을까. “우리 둘째 이제 유치원 갈 나이인데,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첫째가 다니는 데 보낼지, 아니면 다른 데로 보낼지.”와 같은 질문들. “우리 애 다니는 데 괜찮아요. 관리도 잘 되고 아이도 가는 거 즐거워해요. 자기가 먼저 가자고 잡아끈다니까요.” 또는 “요새 뭐해 먹고들 사세요?” “우리는 진이찬방에서 시켜 먹어요. 맛 깔끔하고 괜찮아요.” 이런 저런 대화들이 아닐는지.
점차 약을 먹고 무기력증이 호전되면서 그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졌다. 같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어내는 웃음소리는 아파트를 울렸고 나 역시도 그런 친구, 혹은 모임을 가지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끼리 내는 웃음소리를 갈망했다.
아이를 매개로 정보 교류와 친목이 발달한 엄마들처럼 나도 딩크라는 공통점을 가진 친구를 만나고 싶어졌다.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다. 아이 없이 살면서 겪었던 숱한 아픔, 특히 시댁 관련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시댁에서 서러웠던 일들, 명절에 가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뭔가 위축되는 마음, 모임에 서 나만 아이가 없을 때 느껴지는 소외감, 이 모든 것들을 기탄없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또한 딩크이기 때문에 얻는 즐거움도 역시 나눠보고 싶었다.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장점, 아이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주는 행복, 이런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우리만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분명 있을 거라 믿었다.
‘딩크족 모임’
아파트 온라인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서로 알고 지내고 싶은 딩크족 모여요.’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심심해서 올려봅니다. 가끔 만나서 수다 떨고 모임도 했으면 좋겠어요. 댓글 달아주세요.’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내가 올린 게시 글에 첫 번째 댓글이 달렸다는 핸드폰 알림이 왔다. 맘이 설렜다.
‘꼭 딩크여야만 하나요? 종일 집에 박혀 있는데 저는 안 되나요?’
약간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난 딩크족을 원했다. 자칫 잘못하면 대화가 아이 이야기로 흘러갈 여지가 있었다.
‘그래, 꼭 딩크여야만 할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임의 정체성은 ‘딩크’였다. 그 주제를 놓칠 수는 없었다. 내가 대댓글을 달지 않자 그 글 밑에 누군가의 대댓글이 달렸다.
‘저도요, 하루 종일 누워 있어서 허리 아파요. 채팅해요, 우리.’
그렇게 그 두 명은 게시판을 빠져나갔고 그 밑으로 댓글 세 개가 달렸다.
‘저희도 딩크에요.’
‘저도 서로 알고 지내고 싶어요, 딩크에요.’
‘와, 이런 모임하면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요. 꼭 만나요.’
그렇게 이천 세대가 사는 아파트에서 딩크로 사는 세 가구를 찾았다. 사람들이 더 많이 댓글을 달 거라고 생각했지만 세 가구뿐이라니, 약간은 실망했지만 그게 어디야,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일단 모여서 이야기해요.’
일단은 모여서 얼굴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칠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그렇게 첫 딩크 모임을 열기로 했다. 장소는 아파트 상가 건물에 있는 제과점으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