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조선족이제?
기세 좋게 출발한 딩크족 모임이었지만 끝은 좋지 않았다. 난 희연 씨, 윤정 씨에게 아무 말 없이 단톡 방을 나와 버렸다.
상관없어, 이 따위 모임. 뭐 내가 조선족같이 생겼다고? 그때 화를 내고 일어나야 했을까. ‘이윤정씨, 당신은 일수 찍는 아줌마 같거든요.’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사람을 만나다니. 함께 한 시간이 아까울 뿐이었다.
하긴 아까 멕시칸 음식점에서부터도 이상했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이야기만 하더니. 하자 접수를 하면 안방 배수관을 시멘트로 막아준다느니, 휘트니스 센터 직원들이 다 개새끼들이다, 하는 이야기들.
도무지 품위란 게 없었다. 옷과 장식품만이 명품이었을 뿐.
말은 어찌나 빠른지 도무지 그 사이에 끼어들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앉아 있는 게 고역이었다.
이미 나는 일차로 마음이 상한 상태였다. 단톡방에서는 가장 그 가게에 많이 가 본 내가 길잡이가 되어 같이 가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나는 사전답사까지 마친 후였다. 하지만 막상 약속시간인 다섯 시가 되자 그 검은 부채를 부치며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날씨가 너무 더워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니는 날씬하잖아. 우리를 봐. 도저히 이 날씨에 오 분 이상 걸을 수가 없어.” 그녀에 비하면 나는 날씬한 편이긴 했다. 할 수 없이 기본요금이 나오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도착한 터였다.
계속되는 쓸데없는 이야기 끝에 그녀의 취미인 수영 이야기까지 등장했다.
“내가 수영 십 년차잖아. 사람들 다들 그래. 수영하면 살 빠지는 거 아니냐고. 절대 아니야. 수영하고 나면 배고프잖아. 수영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또 먹으러 다니는 거야.”
그녀의 잡다한 수영 이야기까지 들어주고 나서야 드디어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집이 이토록 그리울 수가 없었다.
웬걸. 이차가 남아 있다니. 윤정씨는 나와 희연씨 어깨 동무를 하더니 “아쉽다. 회식이 이게 뭐꼬. 이차까지는 가야지.” 하며 이차를 고집했고 “아이고, 음식 먹은 거 같지도 않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야 먹은 거 같지.” 하며 동정심에 호소했다.
당시 나와 희연 씨는 몹시 배부른 상태였지만 윤정 씨는 막무가내였다. 희연 씨는 “배가 너무 불러요.” 하면서 반대했지만 윤정씨는 왼쪽엔 희연씨, 오른쪽엔 나를 잡아끌고 쌀국수집으로 향했다.
다들 칵테일을 마셔 얼굴이 벌게진 상태로 가게에 들어갔다.
“어디 보자, 그래 이게 좋겠네.”
윤정 씨는 멕시칸 음식점에선 메뉴를 앞에 두고 우물쭈물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메뉴판을 한번 쓱 훑더니 바로 직원을 불렀다. “여기요, 쌀국수 세트하고 오백 씨씨 세 개 주세요.”
“이 정도는 먹어줘야 회식이지.”
난 술이 약한 편이다. 가뜩이나 부른 배에 쌀국수와 맥주를 같이 먹자니 갑자기 구역질이 났다. 급히 화장실에 갔다. 실컷 토하고 돌아오니 윤정 씨가 “아니, 뭘 먹었다고 그라노. 술이 약한가베.” 지청구를 해 왔다. 여기서도 여지없이 내가 카드를 긁었다. 이건 최악의 회식이다, 구토에, 카드까지 긁다니, 생각했다.
내가 셋을 대표해 카드를 긁은 건 멕시칸 음식점에서부터였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을 할 무렵이었다. 내가 말을 꺼냈다.
“우리 n빵 할까요? 이 가게에서는 총 금액을 사람 수대로 나눠서 각자 카드 계산을 해주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그게 뭐야. 정이 없잖아. 정이.”
대뜸 윤정 씨가 타박을 해 왔다.
“현금을 모아서 내던가, 아님 한 명이 몰아서 내던가. 이렇게 내면 가게에서도 안 좋아해. 내가 옷 장사 해봤잖아. 아이고, 정 없어라.”
‘아니 n빵 하는 거랑 정이랑 무슨 상관이야.’ 난 속으로 말했다.
윤정 씨가 재차 말을 이어갔다.
“현금으로 모아서 내면 되겠네. 얼마 나왔다고? 각자 얼마씩 내면 되나.”
불행히도 난 그때 카드뿐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늘 n분의 1로 계산을 해 왔던 터였다.
“제가 현금이 없어요.”
윤정 씨는 현금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 날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럼 오늘은 다 하율이 네 카드로 계산하고 단톡 방에서 각자 낼 돈을 알려주면 나랑 희연이가 카카오 뱅크로 이체해서 줄게. 그럼 되잖아.”
그렇게 그날 카드를 긁고 정산해서 단톡방에 뿌리는 것까지 내 몫이 되었다.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자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전 이제 가봐야 해서요.”
“왜, 남편이 기다리나? 우리 마지막으로 커피 한 잔 하러 가자” 윤정씨가 말하며 이제 가야 한다며 뒤돌아선 내 팔을 잡아끌었다. 윤정 씨의 완력은 무시무시했다. “내가 살게, 가자. 가서 우리 셋이 뭔가 같이 할 걸 정해보자. 뭔가를 같이 해야 친해지는 법이야.”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딩크족 모임의 주최자로서의 책임감을 쥐어짜내어 카페로 향했다.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개 주세요.”
윤정씨가 한 쪽에 나와 희연씨가 반대쪽에 앉았다.
“희연이는 아주 부잣집 딸내미 같애.”
윤정씨가 말했다. 뭐야, 뜬금없이. 우리 셋이 뭔가 같이 할 걸 정해보자더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리고는 내 가방을 가리켰다. 그 가방은 태국 여행을 갔다 온 친구가 사다 준 거였다. 검은색과 빨간색 바탕에 색색의 실이 지그재그 문양으로 짜여 있는 이국적인 천 가방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기 전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니는 마. 조선족 같다. 생긴 것도 그렇고 하고 다니는 것도. 이런 거 매고 다니지 마라. 꼭 조선족이다.”
마루에 나가 뉴스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조선족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니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난 울분을 토했다.
“그 사람이 맞는 말 했네, 뭐. 그 가방 좀 갖다 버리라니깐.”
에구. 역시 남편은 남의 편이었다. 속 터져,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