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녀들의 속사정
“내 몸 하나 돌보기도 바빠서요. 근데 말 놔도 되나?”
첫 딩크 모임. 왜 딩크가 되었는지 사연을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회원인 윤정 씨의 대답은 무척 심플했다. 그 분은 단지 내 대표단에서 아파트 음악회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지난 삼월에 열린 음악회는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처음에는 아이들 발표회쯤으로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 날 할 일이 없어서 남편과 나갔던 자리에 ‘팬 플롯’, ‘피아노’, ‘클래식 앙상블’ 까지 그 화려한 연주에 입을 떡 벌릴 정도였다.
“난 말이야, 애가 없으니까 그런지 음악회도 애들 위주로 하긴 싫더라고. 그래서 우리 아파트에 살면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들 위주로 기획한 거야.”
사람이 달라 보였다.
윤정씨는 워낙 거구였다. 에어컨이 세게 나오는 가게 안에서도 더운지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검은 색을 좋아하는지 위아래 모두 검은색 차림이었다. 남편은 화물차 기사로 일하고 있는 듯했다. 일주일에 세 번만 집에 들어온다고 했다.
다른 한 명 희연 씨의 사정은 이러했다.
“전 원래 아이를 가지고 싶었어요. 그런데 임신이 잘 되지 않아서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니 남편의 정자수가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작년에 맘먹고 수정관 아기에 도전을 했지만 실패했어요. 그래서 둘이 살아요.”
희연 씨는 아주 차분하고 여성스러워 보였다. 아이보리 색의 편안해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 이년 차이고 아직도 서로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했다. “우와, 꿀 떨어지네요.”이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다. 서로 존댓말을 하는 부부라.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아무튼 그녀는 딩크로서의 삶을 선택한 게 아니라 강요받은 케이스였다. 내년에 기회가 닿으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시험관 아기를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시험관 아기 시도하면 여자한테 무척 안 좋아요. 한약 먹고 그러니까 그런지 살이 많이 찌더라고요.”
아무도 먼저 체중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희연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도 살짝 궁금한 부분이긴 했다. 실제로 보니 외모는 여성스러웠지만 꽤 체구가 나가 보였는데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는 늘씬한 몸매와 예쁜 얼굴로 이국적인 바다를 배경으로 남편과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신혼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지 싶었다.
살을 빼기 위해서 뒷산에 다니는데 혼자 다니는 게 심심하다고 했다. 윤정 씨가 말을 받았다.
“난 산 타는 건 재미없어. 근데 시험관 아기 하면 여자가 많이 힘들다 하더라.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애기 낳을까? 하는 마음이 마흔쯤에 와. 그때가 끝인 거 같지? 지금 내가 마흔 다섯인데 아직도 그런 마음 들 때가 있다? 시험관 아기 해볼까, 하는 맘. 아닌 거 같지? 자기들도 한번 겪어 봐.”
다음에는 내 차례였다.
“전 어렸을 때부터 제가 어른이 돼서 아이를 낳는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난 중학생 때부터 어른이 되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내가 학창시절부터 생각한 인생의 모든 계획 중 딱 하나 이루어진 게 있다면 ‘아이 없이 사는 것’ 이 하나이다. 이것만큼은 내 인생의 계획대로 딱 들어맞았다.
“다들 시댁에서 반응은 어떤가요?” 나는 준비해 온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내가 꼭 인터뷰어가 된 것 같았다.
아직 신혼인 희연 씨는 자신이 아닌 남편이 무정자증 비슷한 경우이기 때문에 시부모님이 도리어 자신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딸처럼 여겨준다고 했다.
“근데 시누이 때문에 스트레스에요. 저보다 나이가 적은데도 항상 제 이름을 부르는데 거기에 대해서 시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세요.”
만약 나보다 나이가 적은 시누이가 나에게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한다면 나라도 정말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뭐 그런 경우가 다 있어? 난 그냥 안 둬. 다 엎어버릴 거야.”
역시나 윤정 씨는 분개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나 역시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윤정 씨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 건 있지. 애가 없어서 그런지 시집에 가면 자연히 일을 많이 하게 된다. 그것도 일찍 가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야.”
동감이었다. 왠지 명절 때 남편 형네나 동생네 보다 일찍 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 그들은 아이가 있으니까 좀 늦어도 이해가 가지만 우리는 아이도 없는데 늦게 가면 괜히 미안해지는 게 있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시부모님에게 불만이 있거나 시부모님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없지만 사년 전 동서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많이 의기소침해졌었다. 형님 내외는 일찍 결혼해서 이미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두고 있었고 우리 그리고 동서네가 아이가 없었는데 동서가 결혼 이년 차에 아이를 출산한 것이었다. 물론 축하는 해주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외감이 밀려왔다.
“내가 선택한 길이잖아. 누가 뭐라고 강요한 게 아니잖아. 그런데 왜 의기소침해. 자연스럽게 행동해.”
스스로에게 말해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이는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갓 태어난 아이에게 몰렸고, 아이가 방긋방긋 웃을 때마다 방 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동서는 갓 나은 아이를 돌보느라 명절에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오가며 아이에게 웃어 보이거나 아이의 부드러운 살결을 쓰다듬었다. 난 설거지를 담당했다. 그릇과 눈을 맞추며 설거지 하는 게 속 편했다.
난 딩크족 모임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말을 하자 속이 시원해졌다. 그러자 희연 씨는 “그런 느낌 알아요.” 하며 동조해 주었다. 하지만 윤정 씨는 “시댁에서 눈치 볼 거 뭐 있어? 난 거기서도 할 말 다 해. 형님네 아들이 인사 안 하잖아. 그러면 야, 작은 엄마한테 인사 똑바로 해라, 하고 가르쳐.”
저렇게 살면 얼마나 속이 편할까. 할 말 다 하고 살면. 부러웠다. 윤정 씨는 직설적이고 강한 성격인 듯 했다.
“남편과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에요?” 난 물었다.
“한 때 내가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산 적이 있어. 같이 게임하는 사람들하고 밖에서도 만나 술 마시고 그랬지. 그러다가 남편하고 사귀게 된 거야.”
윤정 씨는 어떤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다. 남편이 운전 끝나고 돌아오면 같이 포차나 호프집에 한 잔 하러 간다고 했다. 아는 사람이 많은지 끊임없이 핸드폰이 울렸다. “어, 나 여기서 사람들 좀 만나고 있어. 어디라고? 그래 갈 때 들를게.”
하지만 그런 윤정 씨도 대형 마트에 가면 문득 소외감이 든다고 했다.
“마트에 혼자 오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 커플이나 가족이 많지. 난 또 남편하고 자주 못 보잖아. 장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갑자기 외로울 때가 있어.”
“어머, 언니 우리 장 같이 봐요.”
희연 씨가 다정스레 말했다. 반대로 난 장 볼 때 아무 생각이 안 든다. 오히려 혼자라 더 편하고 좋다. 내가 사고 싶은 것만 사면 되니까. 남편과는 입맛이 반대라서 과자 하나를 사더라도 쉽지 않다.
이야기가 얼추 끝나가고 있었다. “그럼 또 봐요.” 하고 웃으며 헤어졌지만 과연 셋이 만나서 다시 이야기를 나눌지는 미지수였다. 희연 씨와는 또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성격이 강한 윤정 씨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며칠 후, 난 희연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같이 뒷산 산책할래요?’
‘네. 좋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뒷산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희연 씨가 문득 물었다.
“혹시 멕시칸 음식 좋아하세요?”
“그럼요.”
“그럼 우리 다음 주에 요 근처 멕시칸 음식점 갈래요?”
가슴이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내게도 딩크 친구가 생기는구나, 싶었다. 좀 더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아파트 앞 커피숍에 갔다. 오 마이 갓! 거기서 윤정 씨를 만날 줄이야.
“어머, 언니 여기서 만나네요?”
희연 씨가 살갑게 말을 붙였다.
“뭐야, 둘이 어디 갔다 왔어? 나만 빼고.”
“에이, 언니는 산 싫어한다고 했잖아요.”
그때 내 입에서 전혀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언니, 멕시칸 음식 좋아하세요?”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윤정 씨가 말했다.
“먹어보진 않았지만 먹을 수야 있겠지.”
“그럼 다음 주에 희연 씨하고 저하고 같이 멕시칸 음식점에 가실래요?”
굳이 말하자면 회원들간의 친목 유지를 위해서라고 할까? 이 모임을 조직한 사람으로서 가급적 다 같이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어야 할 책임감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주 수요일 오후 다섯 시에 육교 밑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