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야, 아기야, 우리 아기야

아기야, 아기야, 우리 아기야


여기서 난 매우 부끄러운 고백을 하려 한다. 고양이를 사 와 파양 해버린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여름, 결혼 팔년 차. 나이 서른아홉.

뭔가를 키워보고 싶다, 는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지나가는 아이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에게도 마음의 여유, 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나와 남편만 생각하지 않고 아이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정말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대답은 항상 아니, 였다. 괜히 키워서 애한테 상처주지 말아. 너처럼 혼자만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애를 키운다고? 헛생각 하지 마.

하지만 작년 여름 갑자기 길가의 아이들이 사랑스러워지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란 질문의 답은 ‘어쩌면......’ 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엄마가 될 만큼 조금은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백 프로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일단 시험적으로 애완동물을 키워보자. 그러면 내가 뭔가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답이 나오겠지. 지금 생각하면 출발부터가 잘못이었다.

때마침 알게 된 아파트 주민 가연씨는 말티즈라는 개를 키우고 있었다. 한 번 그 집에 놀러가 보았는데 개가 주인을 보자마자 껑충 뛰어오르며 반가움을 어쩔지 몰라 주인 얼굴을 핥는 거였다. 가연씨가 개를 내려놓자 주인 옆을 계속 따라다녔다. 그 모습을 보며 무언가가 날 핥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니 거부감이 들었다. 더군다나 개는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시켜주어야만 하고 같이 놀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이건 거의 반 육아잖아?

그렇다면 혼자 잘 논다는 고양이를 키워볼까?

한창 더운 날, 버스를 타고 집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애완동물 가게에 갔다. 보통 이라면 걸어갈 거리였지만 그 날은 너무 더워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게는 복합 쇼핑몰 이층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다고 안내 표지판에 나와 있었지만 아무리 쇼핑몰 안을 걸어 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보통의 애완동물 가게 입구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쪽에 있는 반면 그 애완동물 가게 입구는 쇼핑몰 밖, 한적한 주차장 쪽으로 나 있는 구조였다.

또 다른 특이점은 보통 애완동물 가게는 동물들이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서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도록 되어 있는 구조이지만 그 곳의 고양이들은 가게 안 쪽 각자의 방에 살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양이를 진정으로 아껴주시는 주인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들었다.

“원래 집에서 고양이 두 마리 키우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전 큰 가게처럼 도떼기로 데려다 놓는 거 정말 싫어요. 믿을 수 있는 곳에서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들만 소수로 데려와 주인을 만나게 해주고 있어요.” 주인아주머니는 말했다.

많은 품종의 고양이들이 있었지만 내 마음에 들어온 건 ‘렉돌’ 이라는 품종의 고양이였다.

“아주 조용하고 품위 있는 종이라서 이 종, 저 종, 다 키워본 분들이 최종적으로 찾는 품종이에요. 무엇보다도 주인이 안으면 팔에 축 늘어져 있는데 그런 고양이는 찾기 힘들죠.”

사람 품에 안길 줄 아는 종이라.

그 말을 들은 즉시 난 렉돌의 노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하지만 남편에게서 답은 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물었다.

“아까 그 동영상 뭐야?”

“우리 고양이 키울까?”

난 대뜸 그에게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웬 고양이?”

“그냥 갑자기 키우고 싶어져서.”

“한 번 데려오면 평생 같이 해야 되는 거 알지? 그리고 잘 돌봐줘야 되고.”

남편은 내게 다짐을 받았다.

“당연하지.”

나는 책임지지도 못할 소리를 했다.

주말에 남편과 다시 그 애완동물 가게를 찾았다. 나는 내가 점찍어 둔 렉돌을 보여주었다.

“이 아이, 집에 데려가고 싶어.”

하지만 남편의 시선은 다른 고양이를 향해 있었다.

눈이 동그랗고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바쁜 활발한 고양이. 회색 바탕에 다람쥐 마냥 검은 줄이 예쁘게 나 있고 귀가 접혀 있는 아이. 다른 아이들보다 다리가 짧아서 더 귀여운 아이.

먼치킨 숏 레그였다.

“너무 귀엽죠?”

눈치 빠른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물었다.

“네, 귀엽긴 하네요.”

난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이내 핸드폰을 꺼내 이 애완동물 가게 네이버 카페의 한 게시물을 보여주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이 고양이 사진을 올려놓은 게시물에 분양가를 묻는 댓글들이 즐비했다.

“제가 저희 가게에 들어오는 모든 고양이들을 사진 찍어서 카페에 올리는데 유독 이 아이 분양가 묻는 사람들이 그리 많아요. 만약에 데려가시면 제가 인터넷에 제시한 가격보다 싸게 해 드릴게요.”

남편은 갑자기 돌변해서 당장이라도 사갈 기세였다. 이미 그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나는 남편을 진정시켜야 했다. “우리 나가서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해 보자.” 남편을 데리고 나와 일층에 위치한 롯데리아에 갔다.

“저 고양이 너무 맘에 든다.”

남편이 먼저 입을 뗐다.

“렉돌이는?”

“난 별로야. 활동량도 적고 기운 없어 보여. 먼치킨 봐. 얼마나 쌩쌩하게 돌아다니는지. 귀엽기도 훨씬 귀엽고. 딱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게 먼치킨이던데, 뭘.”

그렇단 말이지. 상황이 바뀌어 오히려 내가 생각이 많아졌다. 난 팔랑귀였다. 남편이 그렇게 말하자 또 먼치킨이 나아 보였다. 그래, 내가 고양이 키우자는 데 선뜻 동의해 준 남편인데 키울 품종에 대해서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지. 내 마음도 먼치킨으로 기울어 갔다.

남편이 말했다.

“연구 결과가 있는데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안 키우는 사람들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낮대. 미국 어떤 교도소에서 재소자들한테 의무적으로 고양이를 키우게 했는데 거기 죄수들이 고양이를 키운 후로 아주 얌전해졌다는 거야.”

“그렇게 갖고 싶어?”

그때 남편이 내게 했던 질문을 잊을 수 없다.

“자기, 앞으로 아기 가질 생각 있어?”

가슴이 뛰었다. 남편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온 적은 없었다. 나는 이 대답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문득 아기 없이,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도 괜찮을 것 같이 생각되었다. 아기처럼 대단한 헌신을 필요치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존재. 고양이하고 남편하고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아니.”

우린 다시 애완동물 가게에 갔다. “데려 갈게요.” 아주머니는 다시 올 줄 알았다는 듯 침착하게 여러 주의 사항들을 설명해 주었다.

안으면 한 손바닥에 들어올 만큼 그렇게나 새끼 고양이였다. 베개에 올려놓으면 베개의 반 토막도 되지 않았다. 내가 새끼 고양이의 엄마가 되다니. 하루 종일 바라봐도 질리지 않았다.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는데도 신기하게 모래 통으로 가 발톱으로 모래를 판 다음 배변을 하고 모래로 묻는 것도 너무 귀여웠다. 어느 날 바닥에 앉아 있는데 아기가 살금살금 다가와 내 다리에 머리를 얹었다. 그야말로 심장이 쿵 했다. 아기의 머리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내 다리에 머리를 얹은 채 아기는 눈을 감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난 혹여나 고양이가 깰까 봐 미동도 하지 않고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내 고양이, 이건 내 고양이야. 내가 만약에 아이를 낳는다면 남자 아이를 원한 것처럼 이 고양이도 수컷이었다. 이 고양이도 엄마인 나를 알아보고 이렇게 내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자고 있는 거야.

다음날 마침 언니 가족이 놀러왔다. 언니 가족은 중 초등학생 남자 아이 두 명, 초등학생 여자 아이 한명이 있는데 고양이를 보고 아주 난리였다. 연속으로 안았다 놓았다, 하며 고양이를 괴롭혔다. 아이들은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낚싯대를 공중에 던지며 한참 동안 놀아주었는데 결국에는 고양이가 먼저 지쳐서 자기 집으로 들어가 안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아빠의 의견은 달랐다. “인제 너네 집 안 올란다.” “정들기 전에 갖다 줘라.” “키우고 나면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아니?” 등등 부정적인 의견뿐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비염이 있어서 고양이 털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했다.

“고양이를 데려가시면 두 분 사이도 한층 더 좋아지실 거예요.” 하던 주인아주머니의 말씀도 맞았다. 남편도 나도 고양이를 볼 때면 활짝, 활짝 웃었다. 저녁이면 같이 텔레비전만 보던 우리는 고양이가 생기고 난 후에는 텔레비전이 아닌 고양이만 쳐다봤다. 고양이가 미니 캣 타워를 올라가면 조심히 잘 올라가야 할 텐데, 노심초사 눈길을 주느라 바빴고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고양이 배변 치우는 게 일과가 되었다. 우리 둘만 있던 공간이 고양이가 있음으로 해서 달라졌다. 훨씬 밝아지고 환해졌다고 할까. 당연히 우리 둘의 대화 주제는 고양이로 넘어가 예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료는 그냥 지금 먹는 걸로 계속 먹일까?”, “우리 고양이 장난감 좀 더 사줄까, 좀 부족한 거 같은데.” 가끔 남편이 회사에서 전화를 걸 때도 고양이가 잘 있는지 묻곤 했다. “그럼, 지금 아주 잘 자고 있어.”

그렇게 고양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여름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고양이를 ‘아기’라고 불렀다. 나에게 고양이는 아기와 같은 존재였다. 아기야, 아기야.

나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고양이는 마치 태어난 아기와 같았던 것 같다. 내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데려온 만큼 고양이는 우리에게 아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처음에는 집을 낯설어 하던 고양이는 곧 집에 익숙해져 거실과 자신의 방을 돌아다니면서 뛰어놀았다.

이 고양이는 호기심이 아주 왕성했다. 내 방만큼은 고양이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왠지 한 번 공개하고 나면 고양이가 뛰어 놀아서 엉망이 될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고양이는 내가 방문 열기를 멀찍이 기다렸다가 문을 열면 쏜살 같이 내 방에 들어오곤 했다. 그러면 다시 내보내기를 수차례. 다용도실도 마찬가지였다. 이 고양이는 다용도실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세탁기를 사용하기 위해 아주 잠깐만이라도 문을 열면 벌써 다용도실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문제는 고양이가 나의 일상에 침투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keyword
이전 16화니 조선족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