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통곡

부끄러운 통곡


처음, 솜털 같던 고양이, 한 손에 들어오던 고양이는 점차 자랐다. 그러면 안 되지만 고양이가 자라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장난감 공을 굴려놓고 막 쫓아가며 놀던 아기, 그 아기가 살며시 다가와 발등을 물었다. 때는 한여름이라 맨발이었고 아무리 새끼 고양이라지만 이빨이 날카로워 물리고 나니 꽤 아팠다.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다. 왜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무는 걸까. 남편은 안 물고. 그럴 때면 난 벌을 준답시고 방에 가두었지만 가두고 나면 금세 마음이 약해져 삼십 분이나 한 시간 후에 다시 꺼내주었다. 고양이는 거실에서 놀다가도 내 손이 다가가기만 하면 또 물어버렸다.

남편은 고양이가 자신은 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심 자랑스러워했다.

“이것 봐. 내 손 물려다가 핥는 거 보이지?”

왜 나만 물어. 어느 날은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남편은 아기가 날 무는 건 내 탓이라고 했다. 내가 고양이를 귀찮게 해서 고양이가 앙갚음 하는 거라고 했다. 거짓이라고 하기엔 사실 찔리는 부분이 있었다. 고양이는 안기는 걸 싫어해서 억지로 안으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난 사실 자주 안고 쓰다듬어 주고 둥개둥개 어르고 있었다.

아기야, 아기야, 엄마한테 와. 억지로 품에 안을 때마다 고양이는 내 손을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내 맘도 몰라주고.

정말 내 맘도 몰라주고 고양이는 남편만 좋아했다. 남편이 자러 들어가면 귀신같이 알고 남편을 따라 들어갔다. 처음에는 남편 베개에서 얌전히 잠을 자다가 점차 남편의 품을 파고들기도 해 남편은 몇 번씩 깬다고 했다. 혹여 자신이 몸으로 고양이를 누를까 봐.

“자다가 깨면 나 따라서 고양이도 귀신같이 깨거든. 나 쳐다보는 고양이 눈 보면 너무 귀여워.”

원래 남편은 자는 중에 자기를 건드리는 걸 아주 싫어한다. 신혼 초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흔들어 깨우면 다음 날 “너무 피곤하다. 자는 거 같지도 않아. 자기가 나 자꾸 깨워서.” 하며 날 원망하곤 했다. 남편의 코골이는 우리가 각방을 쓰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고양이 때문에 몇 번이나 깨도 행복하다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남편 방에 따라 들어가는 고양이에게 난 점차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난 일찍 나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나서 다시 잠을 자다가 열시쯤 일어나곤 했다. 그런데 일어나 거실에 나오면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고양이가 소파 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깨는 시간에 같이 깨다니. 내 일거수일투족을 아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워졌다. 난 고양이는 알아서 일어나고 혼자 노는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고양이는 아니었다. 내가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고 잠에서 깨면 저만치서 내가 뭘 하는지 빤히 바라보곤 했다. 컴퓨터를 켜고 뭔가를 쓰려고 해도 고양이가 자꾸 신경이 쓰여서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 더 심각했던 일은 고양이가 거실에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요가와 춤 연습을 할 수 없었다는 거다. 나의 일과는 늘 요가와 스트레칭으로 시작했다. 목부터 시작해서 어깨를 풀어주고 앉아서 양 발을 넓게 벌린 채로 고관절 스트레칭을 하며 앞으로 기어가기 사 분, 누워서 구십 도로 다리 들었다 놨다 하기 구십 번, 플랭크 일분씩 세 세트를 하면 약 삼십분이 걸렸다.

그 후엔 댄스 학원에서 배우는 힙합 댄스 연습을 했다. 댄스 선생님이 추는 춤을 핸드폰으로 미리 녹화해 텔레비전으로 연결해서 보면서 그대로 따라하다 보면 또 한 삼십분이 지나갔다. 이 한 시간이 곧 나의 나머지 스물 세 시간을 지켜주는 보루였다. 그렇게 몸을 움직인 날과 움직이지 않은 날은 컨디션에 큰 차이가 났다. 그래서 나는 목숨 걸고 스트레칭과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하지만 고양이가 나를 따라서 깨고, 깨고 나면 나를 빤히 쳐다보는 통에, 그리고 혹여 내가 고양이를 밟을까 봐 하는 염려 때문에 도무지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잠시 다른 방에 갖다 놓으면 되지 않나? 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고양이가 집 안 어딘가 존재한다는 생각만으로 마치 운동에 방해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넌 고양이가 사람인 줄 아니?”

엄마에게 이야기하자 대뜸 핀잔을 주었다.

“그 고양이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는 건데 넌 왜 고양이를 사람처럼 생각해서 혼자 스트레스를 받니? 그냥 없는 것처럼 행동해.”

하지만 저기 있는 걸 어떻게 없는 척 할 수 있나. 엄연히 존재하는 걸 없는 척하며 살아가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실제로 고양이 주인들의 경우에는 고양이가 책상에 올라와 발로 컴퓨터 키보드를 치고 별 난리를 치더라도 그 모습이 귀여워서 오히려 하던 일들을 멈추고 고양이와 놀아준다고 하던데, 그게 집사의 운명이라나, 뭐라나.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과 남편 친구 그리고 나 셋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의 동료는 내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하율씨, 무슨 띠에요?”

“닭띠요.”

“닭띠라 그런 거네. 고양이한테 밀리는 거예요. 고양이는 닭을 잡아먹잖아요. 그래서 고양이가 하율씨 기를 다 빨아먹는 거예요.”

실제로 고양이가 오고 나서부터는 아침에 일어나 방문 밖을 나서기가 두려웠다. 고양이 눈을 바라보는 것도 무서웠다. 정말 고양이에게 기를 다 빨리는 느낌이었다. 운동은 고사하고 이상하게 잠이 많아졌다.

학원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시간이 한 시 십오 분이라면 약 열두시 반까지 잠을 잤다. 부리나케 깨어나 나갈 옷으로 재빨리 갈아입고 거실로 나가면 고양이도 같이 깨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안녕, 잘 잤어?”하고 억지로 웃으며 인사한 후 사료를 부어주고는 버스를 타러 집안 문을 나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놀아주다 보면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 끝에 학원에 가기 전 고양이와 삼십 분 동안 의무적으로 놀아주기로 했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끝에 깃털이 달린 낚싯대를 이리저리 흔들면 고양이는 그 깃털을 잡으려고 사방을 달려 다녔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기는 했다. 고양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내가, 이놈의 내가 문제였다. 내 마음이 변한 거였다. 이 갈대 같은 내 마음이 말이다.

결국,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애착 관계가 강하게 형성된 남편을 설득하는 게 문제였다. 남편은 정말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고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그게 더 무섭다.

“지금 고양이를 갖다 버리겠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다른 주인을 찾아주자는 거지. 나보다 좋은.”

“그게 갖다 버리는 거지. 고양이는 이미 태어난 곳에서부터도 버림받았어. 지금 우리가 버리면 두 번 버림받는 거야.”

“미안해, 그런데 도저히 못 키우겠어. 고양이가 무서워.”

남편은 그런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고양이가 왜 무서워. 그냥 없는 것처럼 행동해.”

남편 역시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같은 말을 했다.

“그게 안 된다고.”

나도 내가 왜 그렇게 고양이를 두려워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보는 사람마다 족족 고양이 입양 의사를 물어봤다. 아니, 애원하고 다녔다.

“제가 사정이 생겨서 못 키우게 되었습니다. 귀가 접히는 먼치킨 숏 레그이구요. 애완동물 가게에서 팔 십 만원에 사 온 아이에요. 이제 겨우 삼 개월 됐고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한번은 처음 가는 카페 내부에서 돌아다니는 개를 보고 주인이 애완동물을 좋아할 것 같다는 생뚱맞은 추측으로 주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혹시 지금 삼 개월 된 귀여운 고양이 맡길만한 아시는 데 있으세요?” 그 주인은 자기가 좀 알아보겠다면서 내 전화번호를 따 갔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학원 원장님과 다른 선생님에게도 사정을 말하고 하소연을 했다. 학원 원장님은 애들한테 좀 물어봐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하율 선생님이 고양이를 키울 수가 없어서 맡길 사람을 찾으신대. 누구 고양이 키우고 싶은 사람 있어?” “저요, 저요.”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다음 말이 날 낙담시켰다. “그런데 엄마 허락 맡아야 돼요.”

그래, 엄마 결정이 중요하지.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지 없는지는 결국 엄마 결정에 따른 거야. 아이들은 힘이 없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 동안 고양이는 계속 자랄 테고, 아기 고양이일 때가 가장 인기 좋을 때인데.


결국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엄마, 나 지금 괴로워서 미칠 거 같아. 남편은 나한테 매일 화내는데 일단 내가 살아야겠어. 엄마 어디 맡길 데 있어?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 아는 사람 좀 있어?”

결국 날 가장 이해해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엄마, 뿐이었다.

“그럼, 엄마가 친구한테 이야기해서 맡아달라고 할게. 내가 이번 주 토요일 날 가서 데리고 올 테니까 아무 걱정 말아.”

그러고 나서 엄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하율이가 너무 힘들어 하니, 다시 생각해 보라고, 정 안되면 내가 이번 주에 데려갈 테니 그렇게 알라고.

상황이 그쯤 되자 남편도 안 되겠다 싶었나 보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와 말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도저히 못 주겠어. 우리 형한테는 줄 수 있을 거 같아. 자주 가볼 수도 있고.”

정말 다행히도 남편의 형은 선뜻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했다고 한다. 너무너무 고마워서 형을 붙잡고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 고양이는 새 주인을 찾아 가게 되었고 지금은 그 집에서 막내 노릇을 하며 듬뿍 사랑을 받으면서 아주 잘 지내고 있다.

고양이가 가던 날, 나는 집에 없었다. 남편은 토요일 오후 고양이를 데리고 형네 집으로 떠났다.

집에 돌아와 대문을 여니 집은 온통 적막했다. 고양이의 흔적은 이미 다 사라진 후였다. 한 쪽에 놓여 있던 고양이 집, 모래 통, 사료, 거실에 흩어져 있던 고양이 장난감들....... 모두 없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릴라치면 쏜살같이 달려와 현관문에 나와 있던 모습.

마루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뒷발치기를 하고 물어뜯으며 신나게 놀던 그 모습.

짧은 앞발로 장난감 공을 굴려가며 놀던 모습.

공중에다 끝에 깃털이 달린 장난감 낚시 대를 이리저리 흔들면 그 깃털을 따라 목이 홱홱 돌아가던 모습, 그 깃털 한 번 잡아보겠다고 사활을 걸며 덤벼들던 모습.

그 생기, 귀여움. 이젠 볼 수 없는.


내가 결국 너를 버렸구나. 아기야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너무나 미안해. 울 자격도 없는 내가 슬퍼해서 미안해. 부끄럽게도 눈물이 철철 났다. 미안해, 미안해. 거실 한 구석에 주저앉았다. 소파 밑에 뼈다귀 장난감이 보였다. 빼놓고 간 것 같았다. 그 장난감을 보자 더욱 눈물이 났다. 아기야, 아기야, 미안해. 어두운 거실 한 구석에서 부끄러운 통곡을 했다.

keyword
이전 17화아기야, 아기야, 우리 아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