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배웅하고 나니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시끄럽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니 맞은 편 원룸에 사는 아가씨가 창가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 맞은편 원룸에 사는 아가씨는 어깨까지 내려온 단발머리에 경상도 말투를 쓴다. “뭐라싼노? 그래서 내가 간다 안했나. 좀만 기다리래이.”
여긴 이런 곳이다. 비밀이 쉽게 드러나는 곳.
이 곳은 원룸 빌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다. 사방이 원룸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가 사는 원룸에서 나와 열발자국 걸어가면 또 다른 원룸이 나온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맞은편 원룸에 사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칠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커튼을 치지만 사실은 반갑다. 나도 이웃이 있구나.
가끔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누군가 날 보는 시선을 느끼는 적도 있다. 아마도 착각이겠지만. 난 이상하게 샤워를 하고 난 후에는 커튼을 치러 가고 싶지가 않다. 알고 보면 난 노출증 환자인지도 모른다. 창문을 열어놓고 버젓이 알몸으로 돌아다니니까.
“제발, 창문 좀 닫아. 몸매 자랑해?”
내가 알몸으로 돌아다니면 남편은 질색하면서 커튼을 닫는다. 아마도 남편은 내가 알몸으로 자주 집안일을 한다는 건 모를 것이다. 설거지도, 청소도 가끔 알몸으로 한다.
남편은 언젠가 맞은편 남자가 섹스하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얼마 전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내 쪽을 보는 건너편 원룸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고 남편에게 말하려다 만다. 그때 난 커튼을 치러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도 일부러 커튼을 치지 않고 섹스를 했는지도 모른다.
“꺼져!”
창 밖에서 앙칼진 여자의 외침이 들려온다. 남편은 코를 골면서 잠들어 있다. 창문으로 조로록 달려가 구경한다. 원룸 맞은편에 있는 슈퍼마켓 아저씨 역시도 밖에 나와 싸움 구경을 하고 있다. 경찰한테 알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이러지 말고 집에 가자니까.”
허름한 점퍼를 입은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아 끈다.
“이거 놔. 이 새끼야.”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팔을 뿌리친다. 남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 우뚝 서 있다. 어서 도망가, 난 속으로 여자에게 외친다.
“이 시발년이 처 맞을라고 개지랄하네.”
갑자기 남자가 돌변에서 여자의 손을 잡는다.
“악!”
여자가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남자는 여자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몸이 떨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퍼 아저씨가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방에 들어간다.
“안자고 뭐해?”
남편이 잠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묻는다. 입 냄새가 난다. 남자가 여자를 끌고 갔어. 남편에게 알리려다가 만다. 말해봤자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악몽을 꿨어.”
“무슨 꿈?”
“세상이 무너지는 꿈.”
픽, 남편이 웃는다.
“이리 와.”
남편의 품은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