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정훈이라고 해.
아침 교내방송국 동아리 방에 들어가자 왠 처음 보는 남자아이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선배는 이제부터 훈이라는 아이와 내가 요일을 나누어 디제이를 한다고 했다. 아니, 왜? 선배를 쳐다보았다. 내가 못미더워서 그애를 데려온 걸까.
-어디 한 번 해봐.
그 아이는 믹싱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꽤 하네.
그때야 그의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애처럼 체크무늬가 잘 어울리는 남자 애는 처음 봤다.
어느 날 밤새 과 선배들과 술을 마시고 지끈거리는 머리로 일어나던 아침이었다.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죽었다. 아침 방송 담당인데. 미쳤어. 미쳤어.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큰일이다. 난 죽었다.
헥헥거리며 교문에 들어섰다. 이게 웬일인가. 교정에서 유재하의 음악이 들려왔다.
지난 옛 일 모두 기쁨이라고 하면서도
아픈 기억 찾아 헤매이는 건 왜 일까
가슴 깊이 남은 건 때늦은 후회
덧없는 듯 쓴웃음으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네
예전처럼 돌이킬 순 없다고 하면서도
문득 문득 흐뭇함에 젖는 건 왜 일까
그대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세상 사람 얘기하듯이 옛 추억이란 아름다운 것
방송국 안에 들어서자 그가 날 보고 환하게 웃었다. 주책없게 가슴이 뛰었다. 왜 이러지, 싶어서 난 툴툴거렸다. 고맙다고도 못하고.
-아침 못 먹었지? 같이 밥 먹을래?
그가 말을 건넸다. 그와 같이 구내식당에 가는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써야 했다. 난 조심스럽게 숟가락질을 했다. 입도 조그맣게 벌리느라 그가 밥을 다 먹었을 때 반 밖에 먹지 못했다.
-천천히 먹어.
-아냐. 배부르다.
대충 입고 나온 게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어서 집에 돌아가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는 교내 방송에서 뿐 아니라 자주 유재하의 노래를 틀었다. 나는 학교 가기 전에 거울 앞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 곧 학교 축제가 시작된다. 그와 나는 무슨 음악을 틀지를 두고 고심했다. 축제에서 춤추는 시간에 틀 음악으로 뭐가 좋을까. 친구들은 모두 파트너를 찾느라 분주했지만 나는 방송실에서 일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우울한 편지'를 틀고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내게 다가와 내 허리를 안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 이러지 갑자기.
-왜 그래...
-나 군대가. 영장 나왔어.
그는 내 허리를 안고 손을 맞잡았다.
-춤추자. 우리.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생각한다. 그 때 왜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왔는지.
그 친구는 지금 무덤 속에 있다. 군대에서의 의문사.
다시 못 올 지난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가버린 지난날
잊지 못할 그 추억 속에
난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보리
하루하루 더욱 새로웁게 그대와 나의 지난 날
노래만 덩그러니 남았다.
노래만이라도 남아주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