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친구 사귀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혼자 라운딩하게 예약을 받아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4인 돈을 다 내고 혼자 치는 거야 가능하겠지만?
한국만 빼면? 다른 나라들은 혼자서도 라운딩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필드 한 번 나가본 적이 없는 내가,
여기서는 혼자 가서 치고 온다.
친구가 생기면 같이 돌기도 하고, 친구가 안 생기면 혼자 돌기도 하고.
근데 보통은 혼자 가면 친구를 못 만들고 혼자 치게 된다..
오늘은 최고기온이 40도가 넘는다고 하길래 새벽? 시간을 예약하여 혼자 라운딩을 돌고 왔다.
티업이 7시 반이었던가.
6시 반쯤 출발하면 출근 러시아워를 피할 줄 알았더니,
웬걸.
가는 길이 꽤 막혔다.
최고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이곳.
출근시간 역시 빠르구나.
아니지 한국도 비슷하네.
출근하느라 바쁜 차들 속에서 라운딩 가려고 속? 편한 주부는
사고라도 날까 봐 80킬로를 준수하며 무사히 필드까지 도착했다.
필드에 도착하면, 나와 같이 속? 편한 주부들이 새벽부터 와서 연습 티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몸을 풀고 있는다.
이 시간은 한국인이 많아서인지 다들 옷도 예쁘고 가방도 예쁘다.
한국보다 예쁜 게 없는 이 나라에서 산, 초라한 내 가방을 보니 좀 창피하기도.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를 용케 사귀어서 함께 라운딩 온 게 부럽다.
처음에 골프를 칠 때는 내가 너무 못 쳐서 감히. 남편 말고는 다른 사람과 같이 치는 게 죄송스러웠다.
매번 티박스에서 오비가 나고, 수도 없이 멀리건을 쓰고 그래도 공이 뜨질 않고
칠 줄 아는 건 아이언밖에 없어서 온 그린까지 7번 아이언만 주구장창.
다들 그린에 먼저 도착해서 내가 오길 기다려주는데 18홀 내내 어찌나 죄송했던지.
그냥 좀 뻔뻔해져 볼걸.
지금은 우드가 잘 맞기 시작하고 티박스에서도 웬만하면 오비가 나지 않아서
사모님들과 쳐도 죄송스러운 정도는 아닌데,
자신 있게 저 이제 늘었으니까 같이 도시죠?
이런 말을 건네기가 어렵다.
골프계의 암묵적 룰이
잘 치는 사람이 못 치는 사람에게 같이 치자고 할 순 있어도, 그 반대는 잘 안 되는 편이다.
18홀 중 9홀을 첫 타임으로 혼자 도니 40분 만에 쳤다.
후반전 시작하러 갔더니 그다음부턴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모여서 치고 계셔서
기다리며 치느라 1시간 좀 더 걸린 듯.
서로 버디 찬스라고 까르르하시는데
기다리면서 듣고 있으니 오늘따라 유독 외로웠다.
외로운데 왜 이리 공은 또 잘 맞는지
남편은 일하느라 혼자 왔냐고 친근히 다가와준 캐디 덕분에 그래도
조금은 위로받으면서 라운딩 돌았던 것 같다.
공이 너무 안 맞아도 치기 싫은데
공이 너무 잘 맞아도 참.
이거 누가 봐줄 사람이 없으니 외롭기 그지없네.
혼자 쳐서 잘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골프는 동반자와 함께 하는 스포츠라는데
내가 배우고 익히는 골프는 고독한 편이라서,
나중에 한국 가서는 제대로 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도 골프가 뭔지.
2시간 만에 18홀을 다 돌고 나면 뭔가 그렇게 아쉽다.
중간엔 외로워서 집에 가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그래도 오늘 해저드에 버린 공이 3개밖에 되지 않았다.
물속에 두 개, 숲 속에 한 개.
예전엔 오비가 너무 많이 나서,
공을 하나라도 더 주우려고 열심히 공을 찾아다녔다.
물속은 못 들어가도 숲 속은 웬만하면 들어갔고
가끔은 지난 주말에 남편이 오비 내서 잃어버린 공을 발견하기도.
그래서 공 하나 찾으러 갔다가 세 개씩도 주워오고 그랬다.
그렇게 공 찾으러 숲 속을 다니다가 가시나무에 긁히고
벌레에 물리고 돌에 걸려 넘어지고.
몇 번을 다치고 난부터는
공 그냥 잘 가라 인사하고 보내주고 있다.
누군가 나와 같은 초보가 득템 하겠지?
골프를 좋아하는 아빠한테 혼자 라운딩 다닌다고 말하면
엄청 호사 부린다고 부러워하신다.
호사 맞지, 호사이기도 하고 집중이 잘 되기도 하고.
사실 혼자서 라운딩을 돈 덕분에
구력보다는 빨리 골프 실력이 성장한 것 같기도.
하지만 혼자 치는 골프는 정말 외롭다.
나와 어느 정도 비슷한 실력의 주부 한 명
딱 한 명의 친구만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 한 명을 만드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네.
다들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 걸까?
그동안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지 나는?
아이 엄마들이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에 골프장에 나와있어서
아이 때문에 친해진 것 같아 보이진 않은데,
다들 어디서 그렇게 골프친구를 사귀시는 건가요?
오늘 캐디한테 나도 친구들이랑 같이 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같은 한국인들인데 가서 얘기하고 친구가 돼보라고.
그게 참 어렵다구..
오늘 버린 공이 3개밖에 없다는 점,
바디랭귀지와 3개월 배운 언어로 현지인 캐디와 스몰 톡을
가까스로 해내고 있다는 점에 그저 뿌듯함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