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없는 전업주부 May 27. 2022

백인들 동네

인종과 소득

내가 사는 이 곳에서도 가장 비싼 지역이 있다.

우리나라 성수동이나 용산도 그럴 지 모르겠는데

그 동네는 월세가 약 700만원이 넘는다.

고급 아파트를 둘러싸고 공원과 쇼핑단지가 어우러져있다.


그 동네는 일단 안전하고,

핫한 스토어가 많으며 예쁘고 깨끗하다.

대신 물가도 엄청 비싸다.


남편이 내가 이 나라에 처음 온 날

그 동네에 데려갔었다.

그날 저녁 한 끼, 좋은 레스토랑에서 배부르지 않게 먹은 식사에 쓴 돈이 30여만원. 팁이 거의 9만원.


암울한 이 나라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자 남편이 큰 맘먹고 데려갔던 거다.


그러나 그땐 한국에서 바로 왔었던 터라

그 곳이 그저 우리나라 신사동 같은 곳이겠거니 했을 뿐. 전혀 감이 없었다.

그땐 이 나라 돈의 가치도 제대로 모를 때여서

계산서를 봐도 이게 비싼건지 아닌지도 몰랐다.


이 나라의 여러 면을 본 다음에

11개월 만에 다시 찾은 비싼 동네.

단지 햄버거 정도 사먹으려고 매장에 들어갔을 뿐인데, 다시 보니까 보이는 게 있다.


일단 모두 백인이라는 것.

이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원래 하얀 피부였던

나 조차도 인생 최고로 까만 피부가 되었는데

정말 어찌나 그리 다들 하얀 가요.

우리나라도 잘 사는 동네에는 외국인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이 나라는 도데체.. 잘 사는 사람들이

왜 다들 현지인이 아니라 외국인일까.


물론 국적은 이 나라 사람일 수도 있겠으나

내가 주로 만나는 현지인들

예를 들어 골프 캐디, 마트 캐셔, 아파트 시큐리티 등 과는 인종이 다르다.

피부색 머리카락 체형 모두가. 외국인인 것 처럼.


그 다음은 모두 날씬하다는 것.

날씬한 느낌이 그냥 안뚱뚱하네가 아니라

모델같다.

키가 작지 않은 편인데도 내가 그 사이에 있으면 얼굴크고 뚱뚱한 아시안처럼 보여진다.

정말 왜 다들 날씬해? 인종이 달라서 그런가?

비만국가 중 탑티어를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날씬하고 하얗게 살아내고 있는 거지?


동네 분위기, 사람들의 생김새가 참 많이도 다르다.


이 나라에서 내가 주로 만나는,

그나마 스몰톡이라도 나누는 현지인으로는

골프캐디가 있다.


골프캐디와 그 동네 사람들을 비교하면

거의 우리 캐디가 해외여행 가는 거랑 비슷할 것 같다.

골프장이 메인 로드와 많이 떨어져 있어서

가끔은 캐디를 메인로드까지 차를 태워서 같이 가는 경우가 있다.

어색하니까 그 사이 스몰톡을 나눠보면

그 친구들은 그 동네에 가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나라에도 핫?한 스토어가 그 동네에만 있는 경우가 있어서

나이어린 캐디들은 가끔 친구들이랑 가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어보려다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캐디가 뙤악볕에서 우리랑 4시간 동행해주고

오비난 공 찾아주고 해서 받는 일당이

그 동네 아이스크림 한 스쿱 사먹는 것과 거의 맞먹는다.

일당이 싸기도 하거니와 그 동네 물가가 비싸기도 하니까.


그 동네 물가를 한국이랑 비교하면?

아이스크림 한 스쿱을 2만원 정도에 사먹는 느낌

대신 예쁜 분위기의 카페에서.

캐디피가 남편과 둘이 치면 팁 포함해서 3만원정도 주는 것 같다.

정말 인건비가 싸긴 하다.

(한국이랑 캐디피 비교하면 10배이하다!)


그러니 오늘 처럼 라운딩 돌고,

캐디 태워서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그 동네 가서 햄버거 포장해가려고 기다리다보면 새삼 이게 같은 나란가. 같은 도시인가.

백인도 현지인도 아닌 아시안 외국인이라서

두 집단 사이에서 모두 어색하게 섞여있어본다.


다른 나라도 그럴지 모르겠다만,

이나라는 백인계열이 더 부자이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편인 것 같다.

넷플릭스에 이나라 샐럽들 다큐?가 있는데

샐럽과 샐럽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의 인종이 확연히 다르다.

샐럽은 백인, 가정부는 현지인.


실제로 내가 사는 이 동네에서도 아시안 재료 사려고 수입품을 많이 가져다 놓는 비싼?마트를 가면,

엄청 좋은 차에서 백인, 현지인 두 명이 내리는데 가만히 보면 현지인 한명은 운전기사, 다른 한명은 가정부이고 백인이 그들의 고용주인 경우가 많다.

인건비가 많이 싸니까, 세계의 공장이 다 이 나라에 있듯,

잘 사는 집들은 사람을 여러명 고용해서 쓰는 문화인가 보다.


남편도 현지 직원들을 잘 보면 은근히 백인계열이 현지계열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남편이 믿고 인정하는 현지 직원이 백인계열이 아닌 데, 그 친구의 자격지심일 지 모르겠지만

남편한테 이 도시에 한국 기업이 많이 와줘서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차별을 덜 받는 것 같아 고맙다고 했다 한다.

남편한테 줄을 제대로 선 그 직원은 사실,

다른 백인계열 직원들보다 덜 인정받고 있었나보다.


그럼에도 가만히 보면 회사 현지인 여직원들은 다 백인계열이라고.

이번에 현지직원 새로 뽑으려고 면접 봤을 때 부터

백인계열의 여직원들만 면접장에 와있었다고 한다.


남자 직원들은 현지계열도 살아남는데,

여자 직원들은 백인계열 아니면 뽑히지도 않는다는 건가.


다행히도 이 나라에서 아시안들은 지위가 좋은 편이다.

아마도 돈을 잘 써서 일 듯.


중국인은 못 본거 같고, 우리 아파트만 해도 아시안이라고 하면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대다수인데

일본인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이 나라 처음에 왔을 때 전임자가 무엇이든 팁을 다른 외국인들 보다 두 배로 주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팁을 많이 줘도 (아까 그 비싼 동네에서 주는 게 아닌 이상) 5천원을 넘을 일이 없다.

미국가면 팁만해도 만원이 넘는데 말이다.

일본인들도 아무리 검소할지언정 팁을 아끼려나 모르겠네.


다른 한국 주재원들도 아마 팁을 아끼지 않고 주고 있을 듯 하다.

그래서 특히 골프장이나, 식당에 가도

그렇게 차별당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는 않는다.

(차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서비스를 받기 전에 가능하면 팁을 먼저 주는 편이다.

예를 들어 세차장에 가면, 자동 세차 하나를 하는데 사람이 4명 달라 붙는다.

자동 세차 전에 물 뿌려서 초벌 해주는 직원,

자동 세차 장 들어갔다 나오면 물기 닦아주는 직원 3명.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초벌 해주는 직원이 물 파이프 들기 전에 팁을 먼저 준다.

그러면 그렇게 정성스럽게 닦아준다.

물기 닦아주는 직원들 오면 수건 들고 오는 사람들마다 팁을 쥐여준다. 그러면 물왁스 많이 뿌려서 꼼꼼히 닦아주는 편이다.


근데 이건 참, 흉보자는 건 아니다만

이 나라 인건비가 싼 만큼 노동생산성이 크게 높지는 않다.

세차 물기만 3명이 붙어서 닦는다 한들

팁을 미리 주거나 지켜보지 않으면, 그냥 헛손질만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편도 몇 명의 현지직원들에게 일을 시켜보았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애가 없었다고.

한 직원을 잘 챙겨주는 건 유일하게 자기일을 책임있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긴, 남편의 야근 이유 중 하나가 현지 직원 일 끝내는거 감독하는 것 때문이기도.

지켜보고 있으면 일을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일하는 흉내만 내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는 소득격차가 워낙 커서

유독 백인이 잘사는 동네에 모여있는 걸까.

기나긴 식민지역사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중에 노후를 즐기려고 이 나라에 다시

오면, 우리 골프캐디들 같은 현지사람들을

그 비싼동네에서 많이 볼 수 있길

소박하게 빌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라운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