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

폭염 속 라운딩 가느냐 마느냐

by 아이없는 전업주부

내가 있는 이곳은 4월에 이미 40도를 한번 찍었다.

그러다 잠시 20도 정도로 내려오긴 했지만

요즘은 38도를 꾸준히 찍는다.


이미 더웠는데, 이번 주말부터 본격적인 폭염주의보라고.

주말 오후 3시 라운딩 잡아뒀는데 큰일이다.


워낙 더운 나라라서, 겨울에도 그렇게 춥진 않았다.

추우면 9도 정도?

겨울에는 오히려 집이 더 추웠다.


여기 건축기술은 어떤 건지 모르겠다만,

방한은 전혀 안되고 방냉은 잘된다.

단언컨대 바깥보단 집이 더 시원하거나 춥다.


겨울에 집이 너무 추워서 밖에 햇살 쐬러 나가면 따아뜻.

여름은 밖이 너무 더워서 집에 들어오면 조금은 냉랭.


하긴 일단 바닥이 돌이다.

대리석 정도로 고급진 소재는 아니지만

겨울에는 발 시려서 슬리퍼를 꼭 신어야 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맨발로 다니는 돌바닥이다.


그리고 벽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데, 밖에서 부는 바람이

집 안으로 잘 들어온다.

열도 잘 내보내 주는 듯

그래서 방한은 안되고 방냉은 되는 기술인가 보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많이 헐벗고 다닐 것 같지만

이곳 문화는 아주 보수적이다.

여자분들 중 반바지를 입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외국 여행 다닐 때만 입었던 야시시한 보헤미안 원피스를 입고 나갔다가

창피함만 느끼고 집에 돌아온 기억이.


아파트에 있는 수영장에 가면, 비키니 입은 사람도 많이 없다.

미국에서는 다들 그렇게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거의 티 팬티 같은 수영복을 입으신 분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용기 내서 그런 거 한번 여기서 입어보려고 샀다가

그냥 조용히 장롱에 처박아두고 있다.


여름밤에 아파트 풀장에 나가면 가끔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파티 같은 걸 하고 있다.

파티라고 하면 거창한가? 모임?

테이블에 음식이랑 맥주 같은 거 두고 블투 스피커로 노래 틀어놓고

수영장에 발 담근 후 노는 모습이 가끔 보인다.

나름 파티니까 수영복이 야시시할 것 같음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


프로 수영러인 나는

그 옆에서 수영모자까지 야무지게 챙겨 쓴 후

폭풍 수영을 한다.

남편도 지지 않고 수영한다.


저 아시안들 뭐지, 이상한 눈초리 가끔 느껴지지만

이 좋은 수영장을 너희만 전세 낸 건 아니지 않냐는

당당함으로 열심히 수영하고 온다.


그런 적이 몇 번 있어서 그런가.

아파트 시큐리티 중 한 명이 나를 보면 그렇게 수영 얘기를 하신다.

이제 더우니까 수영하러 나오라는 둥

수영 잘하는 거 여러 번 봤다는 둥

자기도 수영 오래 했다는 둥


적막한 엘베에서 시큐리티와의 스몰톡 주제는 항상 수영인 듯하다.

여기는 마스크 의무화가 전면 해제된 지 꽤 오래되었다.

하긴, 한국보다 빠르게 오미크론에 다 걸려서 끝나기도 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가져온 마스크가 많기도 하고

외국에서 병 걸리면 답도 없으니 열심히 마스크 쓰고 다녔는데

진심으로 35도까지만 되어도 마스크 벗지 않았던 것 같은데

38도부터는 숨이 막힌다.


아직 5월인데 40도를 찍는 이곳.

본격적인 여름이 아직 시작도 안된 거라는데.

다가올 여름이 벌써 고민이다.

집에 혼자 있으면서 에어컨을 빵빵 틀어놓기는

아까운데, 아파트 로비나 헬스장이나 수영장으로

열심히 피신 다녀야 할 것 같다.


에어컨.

그나마 고마운 점은 아파트 공동 에어컨이라

방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는 점.

이런 건 우리나라 돌아가도 그리울 것 같다.


주말 3시에 잡아둔 라운딩을 남편이 열사병 걸릴 수 있으니 취소하자고 한다.

이미 새벽시간은 풀북인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한낮 41도라는 날씨 앱을 보고 계속 고민이 된다.


41도를 무릅쓰고라도 아까우니까 라운딩을 하고 싶은 마음과

정말 열사병 걸려서 드러누울까 싶은 걱정과.

날씨 앱 믿을만한 건가 싶은 의심과.


이렇게 더운 날을 겪고 있다 보면

한국에서 내가 덥다고 짜증 냈던 건 정말 애교 수준이었나 싶을 때가 있다.

그래도!

한국은 여름에 35도였다가 겨울엔 영하 15도까지 가는,

기온차가 40도나 되는 나란데 어떻게 짜증이 안 나겠냐.


폭염주의보와 한파주의보를 다 겪고 살아온 의지의 한국인들은

과연 이번 주말 오후에 라운딩을 돌고 있을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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