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무겁니?
예전에 가입한 지역 맘카페를 보았다.
육아에 지친 전업주부의 사연이었다.
회식하고 온다는 남편
워낙 술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데 퇴근 후 육아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회식이라는 단어에 이미 짜증이 확.
저녁만 먹고 9시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저녁을 먹는데 9시까지 먹냐고
불끈 화부터 나는 마음.
글쓴이는 점심에 양장피를 시켜서 배부르게 먹었고
저녁도 갈비를 해서 배부르게 먹은 상태였는데
속도 모르는 남편은 와이프를 생각해서 곱창을 포장해왔다고.
이거 식으면 맛없는데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고 사왔냐고 버럭.
남편은 물어보면 사오지 말라고 할 거 뻔한데
아내가 먹어봤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사왔다고
왜 몰라주냐고 화부터 내냐고 버럭.
글쓴이는 남편의 저런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작 본인은 원하지 않는데
저녁 상 잔뜩 차려놓은 날 원하지 않은 음식을 포장해온다고.
이 사연에 댓글을 달고 싶었다가 참았다.
남편 마음이 좀 더 이해가 가서.
글쓴이 마음을 위로해줄 수 없을 것 같아서.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가족을 위해 음식을 포장해가는 건
아마, 남편이 아내에게 다 말하지 못하는
혼자 끙끙 앓고 있지만 가족을 위해 참고 있다는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버텨본다는. 자기 보상과도 같을 걸 텐데.
그 마음을 알아주고 칭찬 한 마디 해주면, 그 남편 내일을 출근할 힘을 낼 수 있을 텐데.
글쓴이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겠지
단지 당장의 육아가 힘들어서 날카로운 말들이 쏟아지겠지.
그저 생활비 아껴보려고 끙끙대는 데 먹지도 않을 음식에 돈을 쓴 걸 보고
화가 먼저 나는 거겠지.
휴, 그 남편 분
회식을 하고 9시까지 집에 올 수 있는 건
정말 저녁만 먹은 걸 텐데, 어느 정도 싫은 소리 듣고 나온 걸 텐데
아직은,
전업주부의 마음보다는 외벌이 남편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있나 보다.
회사일이 너무 힘들 때
다 먹지 못할 거 알면서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그냥 편의점에 들러서라도 뭔가를 사야, 보상. 나를 아끼는 마음이 들었다.
한 동안 동생과 같이 지낸 적이 있는데
동생도 바뀐 부서에서 적응하기 힘든 시기에
누나 먹으라고 꼭 하나씩 뭔가를 들고 왔다.
너나 나나.
지금 힘든가 보다.
다 먹지도 못할 것들을 하나씩 냉장고에 쌓아두더라도
그냥 나에게 필요한 위로였다.
부모님이 늦은 밤 귀가하면서 치킨을 사오는 그런 마음을
나이가 들어서 이해하게 돼 듯.
본인이 겪어보면 더 잘 이해하게 돼 듯.
육아라는 걸 겪어본 적이 없으니
글쓴이의 속상한 마음보다는 외벌이 남편의 서러운 마음을 더 알 수밖에 없는 거겠지.
외벌이 가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까.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내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할까.
내 인생, 나 하나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기도 참 벅찼는데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서 회사에서 힘든 일 있어도 그저 버티고 버텨봤는데
나에게 가족의 삶까지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그 무게는 얼마나 클까.
미안하고 벅찬 마음으로 남편 없는 시간에 이런 글을 썼다가
잠들기 전 남편한테 외벌이의 무게가 어떠하냐 물어봤다.
그러나 웬걸.
무게가 없다고 한다.
지킬 아이가 없어서 그런 거냐고, 왜인지 서운하다고 했더니
자기가 무너지더라도 동반자인 내가 일어날 텐데 뭐가 무섭냐고
팀플레이라고.
남편은 나를 믿는 다고.
내가 어느 순간 대박을 터트려서 자기를 부자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다고.
놀리는 건지, 그냥 하는 소린지, 진심인 건지
심란했던 마음이 그래도 조금 가벼워진 채로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힘들면 말해.
내가 뭐라도 해볼게.
너 하나쯤 내가 먹여 살려볼게.
뭣도 없는 주제에 허세만 늘어가는 전업주부 그게 바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