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의 비싼 취미

주재원 생활에서 중요한 골프

by 아이없는 전업주부

요즘의 취미는 골프다.

비싼 골프.

한국에 있었으면 골프를 쳤을까?

(골프 치는 전업주부라고 하면 불량 딱지 바로 붙었으려나)


여기 있으니 자의적 타의적으로 골프를 치게 된다.


원래 나의 오랜 취미는 수영이다.

유치원 때 유아체육 유치원을 다녀서 수영을 배웠고

고등학교 3년 빼고는 평생 수영을 하면서 살았다.


수영을 아주 오래 한 것 치고는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겁이 많아서 스타트는 아직도 배치기를 하고

후천적인지 선천적인지 어깨가 너무 넓어서

어깨 근육을 더는 키우지 않으려고 접영을 소심하게 한다.


수영만큼 가성비 좋은 운동도 또 없다.

백수였어도 수영은 꼭 할 수 있었던 점이 한 달 회비가 5만 원쯤?

지역마다 시대마다 달랐지만 한국 오기 전에 코로나로 최소인원만 운영할 때

10만 원이 안되게 냈던 것 같다.


두 번째 취미는 필라테스다.

필라테스를 한 건 4년쯤 된 것 같다.

집 앞에 필라테스 스튜디오가 생겨서 등록해본 것을 계기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수영이 코로나로 문을 닫으면서 생각보다 꾸준히 했다.


운동을 많이 한 피지컬을 갖고 있지만

워낙 유연성이랑은 담을 쌓고 있는 터라, 필라테스 4년을 해도 계속 초급이었다.

필라테스는 수영에 비하면 아주 비싼 취미였다.

한 달이 아니라 한 회에 4만 원? 그것도 할인받아서 그룹으로 해서 그 정도 가격을 내고 다녔던 것 같다.

돈 많이 썼었네.


그래도 필라테스는 꽤 좋은 운동이었다.

수영만 해서는 근력이 도저히 생기지 않았는데, 필라테스 덕분에 근력이 조금 생겼다.

코어 힘이라는 것도 아주 없었다가 조금은 생긴 것도 같고.


운동을 하는 건 운동 갈 땐 귀찮아 죽겠으나, 하고 나면 너무 개운해서

그 중독성? 에 하게 된다.

적어도 수영과 필라테스는 그랬다.


근데 골프는 영. 그런 게 없다.

운동 후 개운함? 골프 하면서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진짜 이게 스포츠 맞아?

연습장 가서 100개의 볼을 쉬지 않고 드라이버로 치다 보면

이건 운동이 맞다.

땀이 비 오듯 오고 손도 팔도 저리고 다리도 당긴다.

유산소 운동인지 근력운동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치고 오면 다음날 손가락이 안 펴질 정도다.


근데 뿌듯하냐고? 개운하냐고?

골린이인 나는 성질만 안 나면 다행이다.


마지막 볼이 창~ 하고 잘 맞았으면 기분 좋은데

마지막까지 공이 안 뜨고 뱀샷만 날렸으면 기분이 너무 안 좋다.

샤워하고 씻기까지 내가 골프를 계속하는 게 맞나 의문만 들고

당장 떼려 쳐도 무방하다고 화가 치밀지만,

다 씻고 소파에 누워서 또 유튜브 골프채널을 찾아본다.

아까 그립을 이렇게 잡고 연습해볼 걸 이러면서.


반면에 라운딩

스포츠 정도 까진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대중이 없다.

OB가 많이 나서 공 주우러 여기저기 다니면

이건 등산 겸 골프가 되는데

OB 안 나고 잘 치면 그냥 산책?

우리나라와 다르게 이곳은 페어웨이까지 골프카트를 타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잘만 치면, 딱히 운동을 했다는 느낌은 안 든다.


다른 운동은 운동 가려고 할 때 정말 귀찮고 가기 싫고 그랬다.

특히 수영은 정말, 한 달 등록해놓고 한 번만 간 적도 많다.

매 순간 오늘은 빠질까 백번 고민하다가 꾸역꾸역 가는 느낌.

오죽하면 샤워하고 수영복 입는 순간에도 씻고만 갈까 고민한다.

그치만 운동 시작해서 500m 정도 돌면서 몸을 풀다 보면 물속에 있는 게 너무 좋고 잡생각도 다 떨쳐진다.

그리고 운동 끝나고 나오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라운딩은 가기 전에 너무 설레고 좋다.

귀찮아서 억지로 갔던 적 한 번도 없다.

뙤약볕에도 티타임 예약에 성공하면 신나서 얼음물 챙겨서 간다.

대신 4홀, 5홀쯤 되면 집에 가고 싶다.

너무 덥고, 지치고, 남편은 자꾸 오비 내서 신경질 부리고

언제 18홀까지 돌아 너무 많이 남았어 이러면서.

4홀부터 13홀까지는 정말 억지로 친다.

신경질도 나고 이게 골프냐 그동안 연습 왜 했냐 하면서.


그런데 14홀부턴 공이 잘 맞기 시작하고 17홀쯤 가면 한 홀 밖에 안 남았다는 게 아쉽다.

18홀을 망치든 잘 치든 집에 오는 길에 골프 왜 하냐,

연습할 땐 잘 맞았는데 티 박스에선 왜 공이 맞질 않냐

불평불만 다 하는데, 씻고 누워서 또 골프 유튜브 보고 찍어둔 동영상 보고

다음 주말 티타임을 예약한다.


비용은 말해 뭐해.

한국보다야 싸지만, 그렇다고 아주 싸지도 않다.

회원자격 유지를 위해서 월마다 내야 하는 돈이 있고

라운딩 돌 때마다 드는 비용이 추가적으로 있다.


전업주부인데 이렇게 비싼 운동 해도 될까? 싶지만

위로라고 하면, 남편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는 점?

골프라도 쳐야 한국 사람들을 좀 만난다는 점.


주재원 생활에서 골프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전임자에게 뭘 준비해서 가야 하냐고 물으면 빼먹지 않고 골프를 얘기한다.

사실 남편은 코로나 때문에 회사 사정 상 아주 급하게 파견을 왔고

골프가 뭐 중요하겠어? 하면서 약간의 무시?를 하고

출국 직전에 그냥 골프옷이랑 신발만 사서 왔었다.


그러나 웬걸.

일단 급한 대로 귀임하는 전임자한테 중고로 골프채를 얻고

나한테도 오기 전에 레슨 꼭 받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골프 옷, 신발, 용품도 한국에서 챙겨 오라고.


아니 한국에 남아있는 내가 처리할 일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는데

골프 타령이냐.

그땐 정말 어이도 없고 화도 났다.

그리고 나도 약간의 무시?를 하고 골프옷 한 벌 제대로 챙겨 오지 않았다.

남편 성화에 못 이겨 엄마가 신던 골프화를 챙겨 왔을 뿐.

골프웨어? 그냥 필라테스 할 때 입었던 옷 입으면 되겠지 중요하겠어?


여기서 라운딩 다니려고 하니 골프웨어 한 벌도 없어서

한국에서 입어보고 사 왔으면 해결될 일을

여기선 골프옷, 모자 산다고 얼마나 돈을 많이 썼는지 모른다.

한국은 여성 골프웨어 시장이 큰 편인데

여긴 남자 꺼만 있고 여자 꺼는 없는 편이라서,

한동안은 그냥 남자 티셔츠 하나 사서 입고 다녔다.


근데 골프장만 가면 한국인들이 많고,

다들 어찌나 예쁘게 입고 오시는지.

제대로 된 한 벌을 마련하기 전 까지는 진짜. 너무 창피했다.


골프장에 가면 이곳에 파견 온 주재원들 절반 이상은 있다.

주재원으로 나오면 일단 이 회사에 새로 부임한 파견자가 누구인지

전임자가 골프장 데려가서 먼저 인사를 하는 편인 것 같다.

가끔 회사가 밀집되어있는 주정부나 시정부에서 택도 없는 요구를 외국회사에 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 기업끼리 대응 협의?가 종종 필요해 보였다.

남편도 남편 필요에 의해서 골프장을 가지만,

나 같은 주부가 사람을 좀 만나보려면 골프가 정말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도 제대로 골프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그리고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외로움을 달래줄, 어떠한 관심사가 되어주는 것 같다.

해도 잘 늘지 않고 잘 치다가도 어느새 무너지고

그래서 노력을 쏟을 수밖에 없는,

외로움을 느낄 때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집중할 수 있는 그 무언가라고 해야 하나.


골프는 여기 있는 시간 동안 뭐라도 배워가는 기분이 들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하고 싶고

시간을 잘 쓰는 것만 같은 착각과 위로를 주고 그런 것 같다.


외벌이 전업주부가 취미를 갖는 게 얼마나 많은 제약이 있는지.

예산 압박이 맞벌이나 미혼보다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외벌이 전업주부 친구는 내가 같이 필라테스 배우자고 했을 때,

비싸서 못하겠다고 단 칼에 거절했었다.

그래 놓고는 취미 만들고 싶다고, 운동하고 싶다고 자기도 좀 자기만의 시간을

잘 챙겨서 살고 싶은데 돈 안 드는 거 없냐고 찡찡댔었지.

그 친구에게 골프 배워보라고 권하면 진짜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들을 것 같다.


주말에 골프장 가면 6살 정도 된 아이들이랑 같이 라운딩 도는 부모가 많다.

김효주 프로도 6살부터 쳤다고 하던데.

그 아이들이 티 박스에서 치고 있는 거 보면 진짜 신기하다.

폼이야 제멋대로지만 공 안 나갔다고 짜증 내지도 않고 잘 나가면 팡팡 뛰면서 좋아하고

가끔은 엄마 아빠보다 더 잘 쳐서 그린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기들도 있다.


사실 골프가 이렇게 세대 불문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인데.

애랑 놀아주면서 부모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애랑 놀아주느라 주말마다 고민하는 친구한테 적극적으로 얘기해주고 싶지만

한국에선 힘든 일이지.


한국은 정말 골프에 대한 장벽이 너무 높다.

나도 그랬다. 한국에 있었을 땐 골프 잠깐 배우다가 비싸서 안쳤다.

한국에서 라운딩 가본 적은 없지만, 비용을 듣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여기서 많이 쳐야지.

매일 골프장 오는 주부님들 심정 이해되기도 하고.

그녀들과 친구가 돼서 나도 매일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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