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를 키운 워킹맘
딸은 엄마의 삶을 닮아갈까?
나는 정말 우리 엄마를 닮고 싶은데, 내가 엄마처럼 계속 일할 수 있을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엄마는 멋있는 여성이다.
티브이에 나오는 그런 유명세가 있는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의 일을 놓기는커녕, 점점 발전해나갔고
그럼에도 우리는 엄마의 사랑이 부족하지 않았고.
나는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자랐다.
내가 어릴 때 주말마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같이 구립도서관에 갔다.
어릴 땐 엄마랑 같이 도서관 가면 주로 책을 읽었고 엄마는 옆에서 공부하셨다.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수학을 빡세게 배워서,
수학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었고, 그 덕분에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잘 해온 것 같다.
이상하게, 엄마랑 같이 도서관 간 기억은 많은 데 그때 동생이 같이 갔었나?
동생은 아빠가 데리고 다니면서 놀았던 건가.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하니 엄마의 인생은 정말 슈퍼엄마였구나.
근데 하나 확실한 건. 엄마는 항상 자신의 인생을 최우선에 두시긴 했다.
엄마한테 한 번도, 자신이 우리 때문에 무엇을 포기했다는 그런 원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당연히 포기나 희생이 있어왔겠지만.
내 친구는 엄마가 너희 때문에 직장도 다 포기하고 살림만 했는데
엄마 마음 몰라준다고 항상 원망 같은 걸 하셔서, 엄마를 실제로. 힘들어한다.
나도 어릴 때 그런 얘길 듣고 자랐다면 엄마한테서 서둘러 도망가려고 했을지도.
회사 친구는 엄마가 가정주부로만 살아오셔서 많이 해보신 게 없다고 그렇게 불쌍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빠가 밖에서 밥을 못 드시고 집에서만 꼭 식사를 하셔야 하는 못된? 습관이 있으셔서
정말 결혼 후 평생 밥만 차리셨다고.
그래서 좋은 게 있으면 엄마를 위해 사거나, 엄마를 모시고 보여드리고 싶어 한다.
그렇게 서로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난 그런 게 없다.
우리엄마보다 여행도 덜 다녔고, 취미생활도 더 적고 심지어 영어도 더 못한다.
나는 엄마보다 더 잘하는 게 와 뭐가 없네.
요리도, 수영도, 골프도, 영어도, 심지어 쇼핑마저도. 대충 일본어라고 치자.
그래서인지 좋은 걸 보면, 이런 거 이미 엄마가 다 알고 있겠지? 싶다.
실제로 그랬다. 회사에 수양딸들을 많이 둔 엄마는 나보다 더 트렌드에 밝으셨다.
직원들 직구할 때 같이 하셔서 로봇청소기도 먼저 사셨고,
나훈아 콘서트 티켓팅도 매번 성공하셨다.
고3일 때 진짜 예민했는데, 엄마는 친구들이랑 모여서 캐나다 여행 갔다 오셨다.
그때도 엄마 친구들이 큰애가 수험생인데 그래도 되냐고 물었는데,
내가 공부하는 데 엄마가 크게 필요하지도 않았고, 내가 너무 예민해서 주변에 아무도 없었음 하기도 했고
엄마도 애가 공부하는 데 24시간 지켜볼 것도 아니라는 쌍방 동의가 있었다.
이게 지금에 와서 서운하냐고?
아니 내가 서운한 건, 내가 고3일 땐 맘 놓고 여행 다니셨던 분이
내 동생이 수능 보는 날엔 절에 가서 하루 종일 기도 올리셨다.
왜 나한텐 안 해줬냐고 했더니, 너는 알아서도 잘하는데 동생은 알아서 하는 게 없어서 그런다고.
이런 게 서운하다.
초등학생 때는 내가 다른 엄마랑 비교하면서 투정 부렸던 게 기억이 나긴 한다.
학교 끝나고 비가 오면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정문 앞에서 항상 기다리는데
나는 친구 엄마의 우산을 같이 쓰고, 그 친구 집에서 밥도 얻어먹고 집에 갔다.
그래도 나는 집에만 있는 친구 엄마보단 아침에 멋있게 옷 차려입고 출근하는 엄마가 좋았는지
출근은 하고, 잠깐 날 데리러 왔다가 다시 회사가라고 했다 한다.
투정을 부려도 어쩜 이리 현실적일까.
어쩌면 엄마를 계속 일하게 한 건 자기를 닮아가는 딸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언니가 루틴은 퇴근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데,
코로나일 때 재택근무하면서 집에서 입던 편한 옷을 입고 어린이집에 아들을 데리러 갔더니
아들이 엄마 인어공주 치마 입고 오라고, 이렇게 입고 오지 말라고 했다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어릴 때 엄마가 차려입고 출근하는걸 멋있어했다는 게 다시 생각났다.
출근하는데 차려입는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데.
사실 회사에 좋은 옷, 비싼 파운데이션 바르고 가는 거 아까워서 어디 놀러 가는 것 보다도 못한
고무줄 바지에 선크림 바르고 출근했는데, 아이 눈엔 그게 멋있게 보이는 거겠지?
회사 언니 인어공주치마 그거도 고무줄 치마라서 입고 다닌 건데
아들 눈에는 그게 예쁜 엄마의 상징이었나 보다.
엄마는 정년을 꽉 채우고 퇴직하셨고, 그전부터 워낙 보직이 많으셨던 터라
지금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바쁘시다.
엄마의 퇴임식을 갔을 때, 그동안 멋있던 엄마가 새롭게 다시 보이기도 했다.
와. 나의 작고 소중한 10년의 직장생활은 감히 엄두도 못 내게, 30년을 넘게 다니시다니.
이미 그 긴 세월을 매일 출퇴근하셨다는 것에 존경과 찬사를 드릴 수밖에.
퇴임식에서 엄마를 떠나보내며 눈물짓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 직원들은 우리 엄마를, 자기들의 엄마였다면서 나보고 딸 자리 내놓으라고 하기도.
사람들과 잘 지내오셨구나.
퇴임식 이후 어쩌면 엄마를 더 존경하게 된 것 같다.
이런 멋있는 엄마를 둔 나인데,
나도 엄마처럼 늙어갈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쉬어가는 시간일지
전업주부로써의 새로운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간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양 쪽을 둘 다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쌓고 있는 것 같다.
양 쪽을 이해해야 무례하고 실례되는 행동을 안 할 수 있겠지.
엄마의 삶을 존경한다는 얘길 하다가, 뜬금없이 생각난 사건이 있다.
집안이 다 농사를 짓는 그 전업주부 지인과 지인의 언니, 지인의 엄마
우리엄마, 나 이렇게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중소기업을 6개월 다녔던 지인의 언니가
자기는 회사생활 6개월도 힘들어서 아이 생기고 바로 그만두었는데
우리엄마의 30년 넘는 직장생활이 정말 대단한데 독하시다고.
비꼬는 건지 칭찬인 건지 뭔가 기분이 안 좋았다.
가만히 있을 우리엄마가 아니지,
6개월도 힘들었다고 징징대는데 30년 넘게 회사 다니고도
이 아줌마는 징징거린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회사는 그저 고맙고 자기는 많은 걸 해볼 수 있었다고 교양 있는 일침을 쏘셨다.
과연 그녀가 알아들었을지는 미지수.
(못 알아들었다에 500원)
뭔가 나도 직장생활 10년 했지만 감히 엄마에게 그런 소리 못하는데
저 사람은 6개월밖에 안 해봐서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구나.
사람이 참 경험이 중요하네, 그래야 무례하지가 않겠네.
내가 존경하는 엄마의 삶 중 절반을 차지하는 직장생활은
6개월짜리 사회경험으로 깎아내릴 만큼 가볍지가 않단다.
그 지인은 가정주부로 살아온 엄마의 삶을 따라가겠지?
그 삶도 정말 무겁고 누구보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딸인 네가 엄마의 삶을 살아가면서 존경하게 되길 바라본다.
(6개월 사회생활로 엄마와 다르다 하지말고, 엄청 자부심 있어 보이던데...)
나는?
이미 엄마랑 다른 선택을 해버렸는데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