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닫지 않는 남편
30년 넘게 다른 우주에서 살다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만나 한 집 살다 보면
사소한 걸로도 많이 싸운다.
우리 부모님을 봐도 같이 산 세월이, 따로 산 세월보다 더 길지만 아직도 싸우신다.
아주 사소한 이유로.
한국에선 주말부부였던 까닭에
서로 많이 참았다.
주말에만 얼굴을 보는 데 맘에 안 들어도 그냥
잔소리할 것 없이 넘어갔다.
남편도 그랬으려나?
해외에 나와서 친구 없이 둘만 붙어있다 보니
이젠 우리도 서로 덜 참는다.
아니 내가 덜 참는 건가?
일단 골프를 시작하면서 많이 투탁이기 시작했다.
연습장은 각자 플레이라 괜찮았는데
라운딩을 같이 돌면서는 맘에 안 드는 게
어찌나 많은지.
티샷 망치면 어찌나 한숨을 쉬는지.
부부는 골프를 같이 치면 안 되는 걸까 싶다가도
친구가 없어서 어쩔 수 없다.
집에서는?
다행히 남들이 많이 싸운다는 치약 짜는 거는 괜찮았다.
치약은 나도 끝부터 차근히 짜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짜증은 주방에서 시작된다.
일단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채워 넣는 사람 따로 있다고,
남편은 냉장고에 있는 찬물만 마시는 데, 절대 넣어놓진 않는다.
겨울에는 찬물이 싫어서 내가 넣어두지 않았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본인의 필요에 의해서 알아서 물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여름이 되니, 집에서도 숨이 막힐 듯 더워서
내가 물을 꼭 냉장고에 채워 넣는데, 막상 마시려고 하면 항상 없다!
하마 같은 남편이, 한 모금 마시고 집 여기저기 둔 생수병이 천지. 마시던 거 안 마시고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거만 꺼내 마시니까!! 내가 마시려고 하면 없는 거다!!
아오. 열불 나.
화가 나서 냉장고에 물 채워 넣으라 하면
말은 잘 듣는데, 꼬리가 어찌나 기신지
냉장고 문을 안 닫는다.
냉장고 문 안 닫고 어디 가냐고 하면
화장실 잠깐 갔다 온다고.
냉장고 문을 닫고 가야지 왜 열고 가냐 하면
냉장고 문, 일이 분 열려있어도 괜찮다고..
화장실 다녀와서도 물을 계속 넣어야 해서
냉장고 문을 안 닫는다는 거다..
(물을 다 넣고 화장실을 가든가, 냉장고 문을 닫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하지 않나?)
항상 이런 식이다.
고추장이나 된장 꺼내서 쓸 때도
한 숟가락 퍼 내고 다시 냉장고에 넣을 꺼라며
냉장고에서 삐익 삐익 소리가 나도 안 닫는다.
그러고 다른 일을 천천히 하다가 냉장고에
고추장 된장 넣고는 한 참 후에 닫는다.
한국 냉장고는 그래도 저절로 닫혔던 건가?
한국에서도 주말에 같이 살았지만 냉장고를 이렇게까지 열어뒀었나??
이 나라는 직접 닫아주고 문의 아구를 맞혀줘야 하는데,
그래서인 건지 그거 하나 귀찮아서 인 건지
절대 냉장고 문을 닫지 않는다.
그럴 거면 냉장고 왜 쓰는 거지!!
정말 다르다.
냉장고 문을 빨리빨리 닫아줘야 한다는 나와
그거 몇 분 열려있는다고 그렇게 성화냐고 하는 남편의 세계는 접점이 없다.
방에 있다가
부엌에서 냉장고 비명소리가 나면
결국 내가 가서 닫는다.
남편이 냉장고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더라도
절대. 닫지 않기 때문에!
그러면 또 한 번 서로
도대체 냉장고를 왜 열어두냐고 한바탕.
휴.
누가 맞는 걸까 정말.
정답은 없겠지.
냉장고 문 따위로 부부 사이엔 현타가 온다.
나중에 한국 돌아가면
자동으로 닫아지는 냉장고를 사야겠다.
남편이 열어둘 수 없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