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

by 아이없는 전업주부

절대 먼저는 연락하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를 찾는 건 항상 내가 먼저 인 것 같은.

생일도 그렇다.

가끔은 나는 친구 생일을 먼저 축하해줘도, 그 친구는 내 생일을 까먹고

그대로 잊어버린 채 그냥 지나친다.

그런 걸로 서운하다고 투정을 부리기엔 없어 보이고,

쪼잔해 보이기도 해서 그냥 나도 또 그러고 넘어간다.


그래도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함께한 친구라

나에겐 소중하다.

그 친구에게도 내가 소중한 걸 안다.

다만 연락을 먼저 하지 않는 것뿐.


그 친구가 아이를 낳고부터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건 항상 내 몫이었다.

친구 남편이 육아에 도움이 안 되기도 하고

친구의 고집스러운 면도 있어서 저렇게까지 혼자 고생하는 걸

지켜보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친구가 운전을 못하고, 자차가 없기도 해서 친구의 남편 대신

친구가 아이와 어디 가고 싶다고 하면 내가 시간을 내주어

차와 운전기사를 자처하고 데리고 다닌 적도 많다.

그때마다 친구는 고마워하긴 했지만,

실컷 놀고 잠든 아이와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돌아오는 길은

뭔가 씁쓸했다.


정말 고마운 게 맞을까?


아이가 없는 나와 시간을 보낼 땐 항상 친구 아기가 같이 있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다른 동창이 세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 친구를 만나러 갈 땐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간다고 한다.

아이가 4명 이상 모여 있으면 안 그래도 세 쌍둥이 키우는 친구한테 민폐가 된다며.


뭘까?


어린이집에는 안 보내고 3살까지는 엄마 손에 커야 한다는 신념이 강한 친구라

거기다 모유수유를 직수로 계속했던 터라,

친구는 아이와 한 시도 떨어질 수 없다고 했었다.

소중한 친구고 그녀의 육아방식이 그렇다고 하니

조금은 답답하지만 그래도 다 이해했다.


아이와 떨어질 수 없어서 곤란한 처지에 놓이면

홀홀단신인 나는 그녀의 부탁도 흔쾌히 들어준 적 많았고

주말에 친구의 아이를 데리고 외곽으로 드라이브 다녀 주기도 했다.


친구를 존중하기 때문에 나는 나름의 호의를 베풀었던 것인데

가끔 느껴지는, 왜 나만 호의를 베풀어야 하지 하는 현타.


현타가 오면 나도 그냥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 낌새를 눈치챈 건지, 그럴 때면 그 친구는 절대 나에게 먼저 연락하진 않았다.

미안하다고 하기도 뭐해서 그런 걸까?


오늘 우연히 티비를 보는데, 친구와 비슷한 육아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 나왔다.

그래서 불현듯 그 친구가 생각났지만

연락을 해볼까? 아이는 많이 컸을까? 궁금했지만

그냥 마음을 접는다.


내가 있는 이 나라 음식을 보다가도

내 생각이 났다며 연락 오는 지인이 많은데

그와중에도 연락 한 번이 없는 그 친구.


그 친구를 생각하다가 한번 연락처 목록을 쭈욱 보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모든 친구가 매일 연락을 주고받아야만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럼 피곤하다 정말 진심으로.

좋은 소식 나쁜 소식만 전해줘도 감사하다.

근데 유독 마음 쓰이는 사람은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도 누군가에 기대를 채워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자존심을 접고, 먼저 연락해서 안부를 물으면 그만이다.

사람과 기싸움을 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근데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지가 않다.


다음에 또 생각나면 그땐 많은 생각하지 말고

먼저 연락해서 잘 있냐고 물어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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