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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un 17. 2022

얼마나 확신해야 결혼할 수 있을까?

귓가에 운명의 종소리가 들리길 기다리는 연인들을 위하여


4년을 꽉 채워 연애를 하고 마침내 결혼을 했다.

30년간 쭉 아빠의 딸이기만 했던 내 등본에 누군가의 배우자라는 새로운 이름이 달린 것이다.


4년. 나름 긴 시간 동안 순탄하다면 순탄하다 할 연애를 했다.

헤어진 적도, 끝장을 보자며 죽자 살자 싸운 적도 없다. 싸울 일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둘 다 그렇게 싸우는 스타일이 아니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남들 눈에 싸움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 그런데 순탄한 연애의 끝이 결혼이 되기를 꿈꾸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어른들이 말하는 '때'를 놓칠까 하는 불안한 마음 한 조각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때'를 지키기 위해 결혼을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결혼에도 시큰둥, 아이에도 시큰둥한 나에게 엄마는 꾸준히 이야기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이제껏 느끼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 최고의 행복을 만나게 된다고. 

그 말에 나는 뭐라고 답했을까? 


"엄마, 나는 최고의 행복을 포기하고 최대로 불행할지도 모를 가능성을 피해 갈래." 


나는 그렇게 욕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방처럼 터지는 최고의 행복이 없더라도, 큰 불행이나 희생 없이 헨젤과 그레텔이 뿌려 놓은 빵 부스러기처럼 잔잔한 행복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우며 인생길을 걸어가도 좋겠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뭘 하나 하더라도 수십 번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돌다리를 800번이라도 질리지도 않고 두드려보고 건너는 사람에게 결혼이란,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도, 대비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을 맞닥뜨리든 견디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 아주 무모한 것이었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나니 많이 받는 질문이 있었다.


"언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제 결혼에 대한 확신이 들었어?"

"정말 이 사람이다 싶은 생각이 딱 들어?"


모태솔로인 C, 오랜 연애를 위태위태하게 이어가고 있던 P,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Y, 모두가 같은 것을 궁금해한다는 게 신기했다. 우리 모두에게 결혼이란 참 막막하고 아득하고, 언뜻 반짝하고 빛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다시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기에 다들 그토록 확신을 구하고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돌다리를 800번이라도 질리지 않고 두드릴 수 있는 다소 지긋지긋한 면을 가졌다. 그렇게 해서라도 100%의 확신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정말로 보증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확신은 말 그대로 강한 믿음이다. 내가 선택한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 결혼 생활을 하기 전에는 그 믿음의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


남편은 장점이 참 많은 사람이다. 4년을 사귀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이제 막 1년쯤 된 연인으로 오해할 만큼 한결같이 애정어린 눈길로 나를 봐준다. 한결같이 다정하다. 한결같이 성실하다. 한결같이 진실하다. 하지만 남편의 이런 장점들이 내게 확신을 준 건 아니었다.


어느 날엔가 남편은 "나는 너를 평생 변함없이 사랑할 거야"라는 로맨틱한 말 대신, "나는 앞으로도 너를 의지적으로 사랑할 거야"라고 선언(?)했다. 


뭐야, 나를 사랑하는 게 그렇게 의지를 끌어올려서 해야 하는 일이야? 


눈을 게슴츠레 뜨고 노려보며 생각하자니 그 말이 맞았다. 그렇지, 나처럼 예민한 사람을 사랑하고 보듬는 게 보통 의지로 될 일이 아니지. 로맨틱함은 요만큼도 없고 다소 비장하기까지 한 저 말이, 왜인지 나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준 놀랍고도 신기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사랑을 불안해하는 이유는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사람이, 내년 오늘에도 같은 눈빛으로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남편의 말이 내게 안도감을 준 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감정의 흐름에 따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사랑하겠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고 로맨틱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그 사랑 자체가 가장 비겁한 변명이 되기도 한다. 마음이 떠난 걸 어떻게 해. 더 이상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걸 어떻게 해. 마음이 떠났는데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던 사랑이 어떤 상황, 어떤 순간이 닥치면 가장 손쉬운 책임 전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의 마음이 없는데, 의지만으로 억지로 관계를 붙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정말 생각만 해도 슬픈 일이다. 다만 그 마음을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친구들이 여러 번 내게 결혼의 확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남편의 보석 같은 장점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답하곤 했다. 그 질문에 다시 답할 수 있다면 나는 상대방에게서만 확신을 찾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오롯이 한쪽에서만 100%의 확신을 얻자면 연애 10년도 부족하다.


상대방이 내게 줄 수 있는 확신과 나의 의지가 합쳐져 100%를 이룬다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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