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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Oct 21. 2021

엄마는 건강을 챙기지 못한다.

 가을비가 전국에 내리더니 어느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옷차림이 전부 긴팔, 긴바지에 점퍼까지 챙겨 입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아이들은 재빠르게 옷차림부터 바꾸었다. 그들의 부모가, 보호자가 세심히 챙겨준 덕분일 것이다.       


 오늘은 비가 왔다. 아이들을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제법 추워진 날씨에 몸을 웅크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 층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서 있었다. 앞집이었다. 앞집엔 우리 집처럼 남자아이 두 명이 산다. 5살, 3살이라고 했던가. 한창 손이 많이 가는 연령의 아이들이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마도 어린이집에 가는 모양인데 조금 늦은 듯 했다. 그런데 아이들보다 나는 아이들 엄마인 앞집 여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미처 말리지 못해 젖은 머리, 얇은 티셔츠,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한눈에도 너무 추워보였다. 반대로 아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쉘파 후리스 자켓을 입고 있었다. 아기띠로 엽혀 있는 어린 아이는 모자까지 야무지게 쓰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아침을 상상해보았다. 아마 머리도 오랜만에 감았을 것이다. 엄마가 머리를 감는 동안 방치된 두 사내 녀석은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거나, 한 놈이 다른 놈을 물거나, 먹으라고 꺼내놓은 아침을 바닥에 쓱쓱 바르고 있었을 것이다. 욕실에서 나온 엄마는 그 광경에 기가 막히지만 일단 아이들 옷을 입히고 얼굴을 닦인다. 집안은 나중에 돌봐야 한다. 어린이집에 가져가야 할 짐을 챙기고, 아이들 신발을 하나하나 신긴다. 빈 유모차를 끌고 나온 걸로 봐서 아마 둘째가 강력히 유모차에 타는 것을 거부했나 보다. 걸음이 느린 둘째를 할 수 없이 아기띠로 업고, 큰 애의 손목을 잡아끈다. 현관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몰아든다. 본인이 겉옷을 챙겨입지 않았음을 그제야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점퍼를 입으려면 아기띠를 다시 푸르고 옷 입고 도망간 둘째를 다시 잡아와 아기띠로 업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거쳐야 한다. 잠깐이니까 라고 생각하며 그냥 나온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와 마주쳤을 것이다. 그녀를 본 순간 그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듯했다.     


 “밖에 비 와요.”     


 내 말에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그녀는 우산 두 개를 챙긴다. 유모차에, 아기띠에, 큰애 손을 잡고 우산까지 챙기니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녀는 허겁지겁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나는 그녀를 보자 나의 몇 년 전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딱 저랬으니까. 그리고 어린 자식을 키우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 딱 저럴 것이다. 그 삶이 얼마나 지치고 고된지 왜 모르겠는가. 눈물이 글썽 괴었다.      


 엄마가 자신의 건강을 챙기지 못 하는 것은 바로 그 분주함 속에 있다. 나보다 아이를 챙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내 몸을 제대로 챙길 수가 없다. 그런데 그 관행 때문에 엄마들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고, 내 몸을 충분히 돌 볼 수 있을 때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 한다. 어색한 것이다. 내 몸을 위해 영양제를 챙겨 먹고, 아플 때 병원을 간다는 것이. 그 당연함이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그녀들은 버틴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무릎이 아프지만 괜찮아지겠지 하며 버틴다. 그렇게 ‘자란’ 엄마들은 나이가 환갑이 되고 여든이 되어도 병원을 잘 안 가시고 앓아누우시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손이 거칠어지고, 심해지면 빨갛게 터서 간지럽고 아프다. 설거지를 마치고 핸드크림 하나만 발라줘도 괜찮을 텐데 그걸 못 해서 늘 손이 거칠게 늙어간다. 발뒤꿈치도 마찬가지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크림을 발라줘야 하는데, 그걸 못 해서 발뒤꿈치가 갈라져 피가 나고 걸을 때마다 아프다. 이렇게 추울 때는 목에 스카프 하나만 둘러줘도 감기 안 걸릴 텐데 그걸 못 해서 아침마다 마른기침을 한다.     


 날씨가 달라져서 아이들의 두꺼운 옷을 꺼내 정리한 엄마들이 정작 본인들의 옷은 잘 꺼내입고 있는지 궁금하다. 오늘도 아이들 남긴 밥으로 아침을 해결했을 우리 엄마들!! 이번 환절기도 건강하게 잘 보내보자!!


나도 얼마전 계절에 맞는 아이들 옷을 꺼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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