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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Nov 15. 2021

엄마는 왜 집안일을 미룰까?

 나는 그 시절을 '내 에너지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던 시절'이라고 표현한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15% 남으면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듯이, 내 몸은 지금 당장 충전이 필요하다고 알리고 있었다. 거의 10년 여의 시간을 나는 잘 자지 못 했고, 잘 먹지 못 했으며, 잘 쉴 수 없었다. 두 아이를 차례로 임신해 낳아서 키우고 학교까지 보낸 시간. 따라서 나보다 자녀가 더 많거나, 자녀 연령 차이가 많이 나는 엄마들은 나보다 더 오랜 시간 그런 상태를 지내왔을 것이다. 15~20% 사이의 배터리를 겨우 채워가며 살아가는 것 말이다.          

     

겨우 방전되지 않게 살았다 (출처:픽사베이)


 그 시절 나는 틈만 나면 침대에 누웠던 것 같다. 누우면 아이가 “엄마~”하며 달려왔다. 아니면 뭘 쏟든지, 망가뜨리든지, 둘이 싸웠다. 에너지 충전을 1%도 못 한 것 같은데 또 내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참 지독한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음식을 자주 하거나 집안을 깔끔히 정리해 놓고 살지도 않았다. 항상 집은 어지러웠고, 남편이 퇴근해도 제대로 된 식사를 내주지 못했다. 늘 마음은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하고 몸은 자꾸만 ‘누워야 하는데’ ‘누워야 하는데’ 했다. 내 자신이 참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시절 나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한 엄마를 만났다. (사실 한 명이 아니다. 내 주위엔 그런 엄마들은 참 많다.) 그녀는 아이가 셋이었고, 주말 부부를 했고, 같은 집은 아니지만 근처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최근 코로나로 체중이 늘면서 그에 관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그녀가 자주 하는 말은 “나는 자꾸 집안일을 미뤄요” 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자신의 일을 똑부러지게 했던 모양인데, 결혼 후 자꾸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탐탁치 않은 듯했다. 거기다 겉모습까지 변하자 더 괴로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분위기 메이커 답게 쾌활했다. 큼직한 눈과 서구적인 외모는 시선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그녀보고 무척 소진되어 보인다고 얘길하자 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 모습에서 불과 몇 년 전, 정말 1~2년 전까지도 그랬던, 내 모습을 보았다. 나도 꽤나 씩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안 좋을수록 더 소리 내서 웃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쾌활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이 가짜라는 걸 더 쉽게 알아봤는지도 모른다.         


게으르지 않은데 게으르다고....(출처:픽사베이)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스스로를 자꾸 ‘게으르다’, ‘굼뜬다’, ‘미룬다’ 라고 표현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이미 충분히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같은데 자꾸만 자책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집안일을 게을리하는 것이 사실인지 모른다. 싱크대에 설거지 거리를 잔뜩 쌓아놓고 외출을 하고, 빨래 건조대에 개지 못한 옷가지가 며칠째 널려 있으며, 아이가 배고프다 징징거려도 당장 내놓을 음식이 없어 급하게 뭘 만드는 순간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적어도 게으르거나 나태한 성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그녀는 자꾸만 자신을 게으르다고 표현하는 걸까.     


 나는 그녀와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그 말이 왜 자꾸 걸렸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힘들게 지쳐있는 자기 자신에게 계속해서 채찍질을 가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 지쳐 번 아웃이 되었는데도 왜 게으르게 퍼져있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래서 그녀가 계속 안쓰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도 그랬고, 그녀도 그렇고, 많은 엄마들이 그래왔을 텐데, 이제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물어봐주면 좋겠다. “00아. 너 힘들구나. 뭐 해줄까? 잠깐 누워서 쉴래, 아니면 맛있는 거 먹을래? 뭘 하면 네가 기운이 좀 날까?”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런 다정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쳐있는 타인에게는 힘내라고 위로해주면서, 왜 스스로에게는 그런 위로를 보내주지 않았는지. 지금 힘든데, 왜 힘들다고 인정해주지 않았는지. 스스로 다정히 물어주면 잠깐 쉬고 또 힘낼 수 있는 사람들인데 왜 게으르다고 핀잔만 주었는지.     


 그녀를 통해 내 자신을 볼 수 있었고, 그녀가 안쓰러웠던 만큼 내가 짠했다. 이제는 집안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집안일이 쌓이면 쌓일수록 아 내가 지쳤구나, 알아주고 물어봐줘야 겠다. “00아, 네게 뭘 해주면 기운이 좀 날까?”     


 나에게 다정한 내가 되어야겠다.                        

                                          

그래 그래 괜찮아. 이러고 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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