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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Nov 24. 2021

엄마는 장래 희망 4개인 아들과 어떤 대화를 할까?

  여덟 살 우리 아들의 장래 희망은 네 가지다. 건축가, 파일럿, 소방관, 야구선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1시부터 2시까지는 건축가, 3시부터 4시까지는 파일럿, 5시부터 6시까지는 소방관, 7시부터 8시까지는 야구선수”     


 그렇게 살겠단다.      


 아이의 장래 희망은 때론 여섯 개가 되기도 하고, 때론 직업의 귀천을 넘나들기도 한다. 어떤 날은 요리사와 경찰이 추가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가 되겠다고 말한다. 사실 청소부 얘기를 했을 때는 ‘그건 아니지~’ 라고 할 뻔했다. 하마터면 아이에게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법을 가르칠 뻔했다.     



출처:픽사베이


 이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 아이. 당시 열여덟이었던 그 남자아이가 생각났다.     


 당시 난 한 공공기관의 홍보작가로 일하고 있었고, 아이를 블로그 기자로 만났다. SNS가 막 시작하던 시절, 공공기관은 본인들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블로그라는 매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 주부, 일반 성인 등을 ‘블로그 기자’로 임명해 각종 행사에 초청했고 행사 홍보나 정책 홍보의 글을 쓰도록 했다. 나는 그 블로그 기자를 관리하고 행사에 동행하는 등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 아이는 외고에 다니는 유능한 인재였다. 활동도 열심히 하고 적극적이었다. 나는 행사에 참여하기 전에 아이와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내게 자신의 장래 희망을 얘기해줬다.     

 

 “저는 사무관이 될 거예요.”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사무관은 직업이 아니라 직급이다. 말하자면 ‘저는 한 기업의 과장이 될 거예요. 차장이 될 거예요’하는 소리와 똑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공공기관을 드나들며 5급 공무원인 사무관들의 모습이 좋아 보여서 그랬던 것 같았다.     


 “어 그래.”     


 나는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는데 아이는 내 반응이 신통치 않았는지,     


 “현실적인 꿈 아닌가요?”     


 했다. 현실적인 꿈이라...... 살아오면서 어떤 자극들을 받았기에 이 아이는 열여덟의 나이에 ‘현실적인 꿈’을 꾸게 된 것일까. 외고를 다닐 정도니, 공부 머리는 있는 것 같고 어쩌면 이 아이에게 ‘5급 공무원’은 정말 ‘현실적’인 꿈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씁쓸했다. 그 아이에게도 지금의 우리 아들처럼 네 가지, 여섯 가지 하고 싶은 일을 늘어놓던 시절이 있었을까? 그 모든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나눠 직업을 갖겠다는 맹랑한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어쩌다 그 아이는 일찍, 그 어린 나이에 현실적인지 아닌지 자신의 꿈을 평가하게 된 것일까.     


출처:픽사베이


 아이들이 터무니없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때 어른들은 보통 이렇게 반응한다. ‘아니야 청소부는 아니지~’ 하거나 ‘의사해라’ ‘공무원해라’ 한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좋다고’ 생각하는 직업을 권한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전에 그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자신의 허무맹랑한 꿈을 재단한다.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겠어?’ 생각하며 ‘현실적인 꿈’ 속으로 자신의 몸을 구겨 넣는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또 ‘안았으면~’이 나왔다. 아이를 키우고, 세상을 지켜보면서 나는 우리 아이가 ‘그랬으면~’하는 것과 ‘안 그랬으면~’하는 것들이 자꾸 생긴다. 자신의 꿈을 미리 재단하고 현실적인 꿈에 안주하는 일. 나는 우리 아들이 ‘안 그랬으면’ 좋겠다. 마흔이 넘은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나의 삶에 활력을 주고 동기부여가 되는지 모른다. 그 즐거움을 우리 아들도 맛보며 살았으면 좋겠다.     


 장래 희망이 열 개가 되고 스무 개가 되고, 우주에서 살겠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해도,     

 

"그래 넌 다 할 수 있어!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계속 그렇게 격려해주는 엄마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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