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콩 Nov 29. 2021

엄마는 부부싸움을 하면 어디에 풀까?

 이 글은 보다 전업맘에 가까운 글이 되겠다.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있어 전업맘과 워킹맘의 삶을 모두 알고 있는데, 간혹 한 쪽 입장에만 치우치는 글을 쓸 때가 있다. 이번 경우는 육아휴직 상태에서 당한 것(?)이라서 보다 전업맘에 치우친 글이 될 것 같다.     


  부부싸움 이야기다. 최근에 꽤 오랫동안 남편과 냉전의 시간을 가졌는데 사건의 전말은 밝히지 않겠다. 개인 프라이버시도 있고 (큼큼), 싸움이라는 게 언제나 양 손바닥이 부딪쳐야 하는 것이므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부싸움을 해서 마음이 참 공허했는데 딱히 어디서 풀 때가 없었다. 워킹망 시절에는 그것을 회사에서 풀었다. 친한 동료랑 커피 마시면서 툭 얘기를 꺼내거나, 일을 하면서 즉 분위기 전환을 통해 그 감정이나 상황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가끔은 남자 직장 동료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가 나와서 남편 입장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전업맘 입장이 되니 주구장창 이 감정과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부부싸움은 대부분 집에서 오간다. 그러니 집이라는 상황을 벗어나야 그걸 잊어버리는데 집안에 있으니 자꾸만 생각이 났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막 일을 해대도 마음이 풀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갈 생각에 약속을 만들려고 전화를 했다. (이런 상황도 워킹맘이나 직장에 나가 있는 남편과 다른 상황이다. 사람을 만나 얘기하려면 인위적으로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 명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럴 만큼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 사실 불러내는 행위 자체가 씁쓸했다.     

 

 그래서 전화를 한 곳이 친정엄마였다. 처음엔 안부 위주로 쓸데없는 소리를 하다가 그냥 가볍게 “엄마 나 싸웠다” 하고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사실 100% 내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나 유리한 쪽으로. 그런데 엄마는 내 얘기를 별일 아니라는 듯이 들으셨다. 사실 나보다 30년은 더 오래 사셨는데, 결혼 생활도 나보다 배 이상 길게 하셨는데,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는데도 서운했다. 그리고 2차로 서운했던 것은 “그래도 니가 풀어야지!”였다. 아내인 내가 먼저 접고 들어가라고 했다. 남자들은 다 그런다, 남편은 원래 그렇다. 이러면서. 오 노우! 나는 대번에 거절했다. “싫은데? 나 지금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리고 진짜 애처럼 삐쳐버렸다.      


출처:픽사베이


 그리고 며칠 뒤 아이를 학원에 보내놓고 자연스럽게 (이번엔 자연스럽게) 엄마들과 티 타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운 좋게 어떤 엄마가 자신이 남편과 냉전 중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옳거니, 때가 왔구나.’ 나는 거기서 얘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말 그대로 아이 친구 엄마다. 내 친구가 아니다. 우리 집 사정을 완전히 리얼하게 얘기할 수가 없다. 두렵고 그녀들이 얼마큼 허용해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거기서 내가 한 얘기는 “나도 냉전 중인데.” 그게 끝이었다. 더 묻지도 않고 (서로 실례되니까), 더 말할 수도 없었다.      


 내 진짜 친구들은 나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 그중 일부는 워킹맘이고, 일부는 전업이지만 연락 안 한 지 오래된 친구들이다. 갑자기 전화해서 부부싸움 얘기를 하기는 어색하다.      


 그래서 결국 그날 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 아이들한테 하소연을 했다. “엄마가 지금 마음이 서운하다. 아빠하고 싸웠는데, 너도 친구랑 싸울 수 있잖아, 그런데 아빠가 먼저 사과를 안 해. 엄마는 서운해서 말하기가 싫어. 아빠가 먼저 얘기해주면 좋겠는데 아빠도 엄마랑 말 안 해.”      


 혹시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나는 내 부모와 이런 경험이 없다. 엄마 아빠가 싸우고 날 붙잡아 얘기를 하거나, 분노나 슬픔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내 앞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으신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꽤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 본 것이다. 아이도 가족의 구성원이고 이런 냉랭한 분위기를 다 느낄 텐데, 솔직하게 집안 돌아가는 상황을 얘기해주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짝 아이들이 어떻게 대답을 해줄까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날 우리 아이들의 대답은 “그래?” 하고 자기들 딴 얘기로 넘어가는 거였다. (헐~!) 딸이었으면 달랐을까? 시커먼 아들 두 놈이라 그랬나?      


 그래도 내 속 얘기를 가장 제대로 털어놓은 상대는 우리 아들들이었다. 친구랑 수다 떨 듯이 리얼로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아이 눈높이에 맞춘 단어 선택과 최대한 단순화 시켜 사건 전말을 얘기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얘기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냉전이 이어져서 나는 아이들에게 또 얘기했다. 그날 밤에는 “왜 싸웠는데?”하고 물어주고, 그냥 묵묵히 들어줬다. 사실 아이들도 딱히 뭐라 해줄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냥 잠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내가 먼저 해결하자고 말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어떤 말을 해 올지 걱정도 되고, 좋은 쪽이면 좋겠다 희망도 품는다. 이 사건으로 우리 부부가 좀 더 견고해지면 좋겠다. 다시 다정했던 그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이거슨~ 부부싸움 진행 중에 썼고~ 지금은 끝났어요~ 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장래 희망 4개인 아들과 어떤 대화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