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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Nov 14. 2021

어린 아이들에게는 감정 단어 말고, 감정 은유를 쓰세요

경험은 잘 쓰는데 감정 쓰기는 어려운 1학년 남자아이 일기

 영우는 영도의 동생이다. 앞서 소개한 영도의 글에 이어 이번엔 동생 영우의 일기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영우는 조심성이 많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래서 낯선 교수법인 일기 코칭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거기다 내가 자꾸 대화를 하자고 하니까 그 부분도 많이 불편해했다. 속으로 ‘이 아줌마 왜 이래?’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글감을 찾기 위해 나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는데 “영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 “엄마”라는 답이 나왔다. 그래서 그날의 소재는 엄마가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영우의 다른 일기들을 보니, 영우 역시 경험은 상세하게 잘 적는 편이었으나 감정 표현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이날의 일기도 경험이 아닌 생각을 적는 쪽으로 유도했다. “영우한테 엄마가 왜 좋아? 착해? 예뻐?”라고 물었더니 “나를 태어나게 해줘서”라고 대답했다. 나 역시 엄마라 그런지 그 말이 뭉클했다. 엄마는 존재의 근원. 영우에게 엄마는 근원이고 우주였다. 나는 그 말 그대로 적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감정을 더 적어보라고 했는데 ‘안아주면 따뜻하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안 안아주면 슬프다’라는 표현들이 나왔다.              

       

나를 태어나게 해 준 존재의 근원, 엄마!


 사실 나는 앞선 글에서 ‘감정의 어휘력’을 늘리자는 얘기를 적었다. 내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 방법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에게 ‘외롭다’와 ‘고독하다’의 감정을 구분해 내라고 하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경우는 아이만의 언어로 다르게 표현해주면 좋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마음이 무겁다’ ‘머리가 뜨겁다’ ‘마음이 차갑다’ 등등. 이런 표현들은 아이들에게 느낌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은유적인 표현도 할 수 있게 만든다. ‘마음의 신호등이 빨간색이야’ ‘풍선처럼 말랑말랑해’ ‘이불 덮고 있는 것 같애’ 등등.       


 그리고 사실 이 방법은 어른들에게도 좋다. 감정이라는 것은 항상 복합적으로 뒤섞여 나타난다. 이것을 하나하나 분리해 정확히 인지하면 좋지만 그것은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방법이 익숙하지 않을 때 어른들도 비유적인 표현을 쓰면 좋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생겼는데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감정이 질투인지, 부러움인지, 미움인지 모르겠다. 그럴 때 ‘내 마음이 뾰족하구나’ ‘내 마음이 꼬여있구나’라고 표현하면 된다. 마음속에 일어난 감정을 무시하기보다는 ‘아? 이게 뭐지?’ 알아차려 주고, 은유적 표현으로 수용해주는 것이 훨씬 건강하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부모를 통해 배울 것이다. 그러니 우리 부모들도 감정을 숨기기보다 아이들 앞에서 표현하고 그 감정을 공유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나는 몸이 지칠 때 짜증을 잘 내는 편이다. 그럴 때 나는 아이들에게 그 상황을 얘기해준다. (물론 그 저변에는 날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도 함께 있다^^;)      


 “엄마가 오늘 쉬지 못하고 계속 일 했어. 너무 지쳤거든. 지금 머리가 안 돌아가. 에너지 배터리가 10%도 안 돼. 엄마 충전할 수 있게 시간 좀 줘.”     


 내가 자주 하는 레퍼토리다. 예전엔 이유 없이 짜증을 냈는데 그보다는 이렇게 내 감정을 말하고 아이와 간격을 벌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기분이 나쁠 때 그 감정의 원인을 비교적 잘 찾아 말하는 편이다. 왜 화가 났는지, 왜 울고 있는지 물어보면 납득할 수 있게 자신의 마음을 잘 털어 놔준다.     


 힘든 것도 좋은 것도 함께 할 수 있어야 가족이 아니겠는가. 아이도 가족의 구성원이다. 무조건 부모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이도 지친 엄마, 아빠의 어깨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 줄 수 있다. 아이와 많은 부분을 함께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왜 자꾸 감정을 알라고 하는 걸까?     


정혜신, 서천석 등 유명 정신과 의사들이 이미 언급했는데, 감정을 아는 것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서서히 자기 자신을 잃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전문가들은 이런 말도 함께 합니다. 알아는 주되, ‘그 감정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지는 마라.’ 이 말은 감정에 매몰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잃고 애도할 때 그 슬픔에 잠식되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되면 안 되겠죠. 너무 화가 났을 때 그 뜨거운 감정에 집중해서 모든 것을 파괴해서는 안 되겠죠. ‘난 안 슬퍼’ ‘나 화 안 났어’라고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슬프구나’, ‘화났구나’ 인정은 하되 그 감정에만 집중하지 말고 현명하게 넘길 수 있는 방법도 함께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꼬물꼬물 귀여운 영우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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