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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Nov 22. 2021

엄마가 봐주는 일기는 이렇게 다르다

이미 일기코칭을 해오고 있었던 인우네 이야기

 인우는 2학년 남자아이다. 놀이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사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좀 차분한 아이들이다. 앉아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성향의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인우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몸으로 노는 평범한 초등학생 남자아이였다. 그래서 인우의 일기를 처음 봤을 때 속으로 좀 놀랐다. 일기를 제법 잘 썼기 때문이다.


중심 내용이 확실한 인우의 일기


 인우는 일기를 늘어지게 쓰지 않았다. 보통의 아이들은 그날 있었던 일을 다 쓰려고 하기 때문에 중심 내용 없이, 나열식으로 일기를 쓰는데 인우는 최소한 이야기 하나를 잡아 쓸 수는 있었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았다. 앞서 인우는 미술학원에서 루지의 눈을 잘 그릴 수 있게 되었는데 엄마를 보여줄 수 없어 아쉬워한 마음을 담았고, 차양막에 가득찬 물에 신발을 던지고 싶었는데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서 웃겼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모두 독특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이다.     


 나와 일기 코칭을 하며 쓴 글도 독특했다. 쉬는 시간에 반 아이들이 다가오지 않아 혼자 그림을 그렸던 이야기,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내 외로운 마음을 알아줄까 생각했던 마음, 다음엔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바람. 이 모든 게 잘 담겨 있었다.      


교실에 쭈구려있었구나.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래서 그 마음을 잘 알아.


 나는 인우가 조금 더 깊이 있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코칭에서는 해보지 않았는데 인우에게는 한 편의 글을 더 써보길 권했다.


    

절대로 절교하지 않는 우정! 나도 그런 우정을 갖고 싶어.


 인우가 가지고 있는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 동경, 더 나아가 진정한 친구에 대한 가치관 등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인우는 속마음을 잘 보여주질 않았다. 예민한 주제였던 것 같다. 글쓰기 수업도 낯설고, 이런 대화 주제도 낯설고, 대화 상대도 낯선데 예민한 속마음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글은 겉돌기만 하고 끝나버렸다.      


 나는 인우 엄마가 궁금했다. 어떻게 아이와 일기 쓰기를 하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이미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던 일기 코칭을 인우와 해오고 있었다. 아이와 충분히 대화를 나눠 글감을 찾았고, 아이가 쓰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대화 내용을 상기 시켜 다시 이어가게 했다. 아이가 글 흐름과 맞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맥락에 맞도록 유도도했다. 거기다 인우 엄마는 그녀만의 독특한 표현법도 있었다. 내가 인우에게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 일기에 그 감정을 적어봐”

  라고 했는데 인우 엄마가

 “엄마를 접어서 상자에 넣고 싶지?”

 라고 표현했다.


 나는 인우 엄마에게 평소에 글쓰기를 했느냐 물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에 글을 썼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은 쓰고 있지 않지만 동화책을 읽어주다 좋은 표현이 있으면 자주 되새긴다고 말했다. 되새기고 생각하고 감동을 이어가는 것이다.      


초집중


 나는 인우가 글쓰기 참 좋은 환경을 만났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나도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지금의 내 글이 좀 더 좋아졌을까? 나는 더 일찍 작가로 무르익었을까?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 없듯이 인생도 그런 것 아니겠는가. 지금이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지. 이 정도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도 훌륭한 거 아니겠는가.     


 인우에 대한 부러움은 잘 ‘접어 상자에 넣고’ 인우의 앞날을 응원해 본다.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길. 살면서 부딪치는 갈등이나 불만 등 속 복잡한 상황을 글로 달래고 위로받기를. 더 나아가 글쓰기를 업(業)으로 할 수 있다면 사람들 가슴에 남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써내길.     


 9살 인우의 40년 후를 기대해 본다!!




글쓰기 좋은 환경은 조용한 환경이 아닙니다!


글을 쓰려면 주변이 조용해야할까요? 저는 글을 잘 쓰려면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이 많아야 글을 잘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이 직접하는 질문도 의미 있지만, 저는 글을 쓰려는 사람은 질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받고 생각하는 것. 생각하고 답하는 것. 그러다보면 새로운 무언가가 나와요. 아이의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키고 싶다면 엄마가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수다스럽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 '그 의미는 뭘까?' 질문을 던지면 엄마와는 전혀 다른 아이만의 생각과 시각이 답으로 나온답니다.



글쓰기 좋은 환경을 만난 인우! 엄마가 네 곁을 함께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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