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과 ‘아이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 하고 음흉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선입견을 가지고 그 아이를 대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아이가 그런 아이와 어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경계한다는 말도 나누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1학년 원율이는 그야말로 천진난만이다. 자유분방하고 아기처럼 수줍고 또 아이답게 ‘하기 싫어’했다.^^
원율이는 일기 쓰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평소 쓴 일기를 보니 3~4문장 이상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엄마가 옆에서 도와줘서 그 정도라고 했다. 나와 가진 수업에서도 원율이는 일기를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럼 내가 쓸게. 너는 불러!”
대필 형식을 취했지만, 아이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
이날의 일기 소재는 ‘미술학원’이었다. 원율이는 얼마 전 미술학원을 그만뒀는데 그 이유가 ‘귀찮아서’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 귀찮냐고 다시 물었다. 그림을 그리는 게 귀찮은지, 선생님이 시키는 것을 하는 게 귀찮은지. 그러자 아이는 ‘가는 게’ 귀찮다고 말했다. 즉 집에 있다가 학원으로 가야하는 그 행위, 그 자체가 귀찮은 것이었다. 정작 학원에서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았다고 말했다. 거기다 학원에 가면 같은 유치원 친구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자신이 좋아하는 두 친구를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원율이 어머니는 놀라워했다. 그런 속마음을 전혀 몰랐다고 하셨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좋은 이야깃거리라 생각했다. 원율이만의 고유한 생각이 담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는 연필을 잡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었고, 낯선 수업이었고, 그 아이에게 연필을 잡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대필’이라는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쓰면 좋겠어? 나는 미술학원을 끊었다고 쓸까? 아니면 다니지 않는다고 쓸까? 그만뒀다고 쓸까?”
그러자 원율이는 ‘귀찮아서 끊었다’라고 써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말 그대로를 적었다. 그리고 ‘왜냐하면?’이라고 접속사를 불러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집에 있고 싶은데 가기 귀찮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사실 그림 그리는 건 재밌었지?”
하니까 맞다고 해서 그다음 문장을 썼다. 우리는 그렇게 일기 한 편을 완성했다. 아이는 신기한지 노트를 계속 바라보았다. 나는 본인의 생각을 온전하게 담으면 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글이 얼마나 풍성해지는지 원율이가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율아, 봐봐. 네 생각을 적으니까 글이 훨씬 길어지지? 이게 벌써 몇 문장이야? 일기 쓸 때 했던 일만 적지 말고 네 생각을 적어봐. 네 의견이나 느낌을 쓰면 훨씬 재밌어.”
그건 사실이다. 사실 글의 가장 큰 매력은 내 생각을 마음대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의 간섭이나 제한 없이 흰 백지 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그것이 글의 가장 큰 매력이다. 원율이에게도 그 매력이 느껴졌을까? 가만히 일기를 들여다보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아이답게 자유롭고 순수한 원율이. 앞으로 이 아이의 일기 속에 그런 원율이의 고유함이 자주 등장해줬으면 좋겠다.
일기를 길게 쓰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코칭.
기술적으로는 접속사를 불러주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냐하면’, ‘그런데’라고 옆에서 불러주면 그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그러다 보면 글이 길어집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긴 글을 쓰려면 글 쓰는 행위 자체가 재밌어야 합니다. 엄마는 학원을 가라는데 나는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쓰는 글, 친구가 자신을 무시해서 화가 났는데 그때 한마디도 하지 못 해 억울하다고 쓰는 글 , 엄마 아빠가 내 말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됐으면 좋겠다는 글. 이런 글들은 두 문장이 아니라 한 페이지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담는 건 그래서 중요합니다. 독서의 글밥을 늘리듯이 글의 양도 늘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함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원율아~ 생각보다 일기 쓰기 재미있지?^^
상기 내용은 코칭 수업 당시의 느낌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