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콩 Dec 10. 2021

낯선 어른과의 대화가 어려운 아이와의 일기 코칭

 내가 만난 3학년 윤슬이는 낯선 어른과의 대화가 어려운 아이였다. 그동안 내성적인 여자아이를 여럿 만나왔던 터라 나는 걱정 없이 그 아이와의 수업에 임했는데, 사실 윤슬이는 나를 많이 당황케 했다. 윤슬이의 특징은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기 코칭의 첫 관문은 대화이다. 상대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아이와 대화하며 그날의 소재거리를 찾고, 아이의 성격을 파악한다. 아이의 성격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그날의 주제를 정하고 아이의 생각이 담기도록 글을 유도하면 수업은 끝나게 된다.     


 그러나 윤슬이와는 첫 시도부터가 막혀버렸다. 아이는 정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보통의 경우 ‘네 생각은 어떠니?’하고 질문을 던지고 기다리면 그 침묵을 못 참고 아이가 대답을 하거나 하다못해 ‘몰라요’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윤슬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고개도 움직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엄마가 귓속말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아이는 급기야 울어버렸다!     


 그날 내가 찾은 돌파구는 ‘지금 이 순간’이었다. 처음엔 아이의 흥미에 맞게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아이는 낯선 내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줄 정도로 (그런 걸 보면 내가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피아노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나는 윤슬이에게 피아노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때는 모두가 눈빛을 빛내고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소재로 대화를 시도했지만 윤슬이는 그때도 입을 열어주지 않았다. 질문을 던져 아이의 생각을 끌어내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왜 낯선 사람과 대화가 어려울까?’를 주제로 글을 써보자고 했다.      


처음엔 피아노였지만, '낯선 사람과 대화가 어렵다'로 주제가 바뀐 일기



 “윤슬이는 지금 아줌마가 자꾸 질문 던지는 게 낯설지? 이런 질문에 답하기가 어렵지?”      


 아이가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기세를 몰아 첫 문장을 완성했다.


 “첫 문장으로 질문은 어렵다 어때?”     


 아이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원율이에게 했던 것처럼 윤슬이에게도 ‘대필 방식’을 택했다. 마침내 ‘나는 낯선 사람과 얘기하는 게 어렵다’까지 왔다. 이제 왜 어려운 지를 쓸 차례다. 나는 윤슬이에게 그 마음을 물어봤다. 두려움인지, 불편함인지, 불안정인지.......


 하~ 윤슬이는 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니 입은 아까부터 다물고 있었다. 이제는 고갯짓이 없었다. 맞다는 끄덕임, 틀리다는 가로젓기가 사라져버렸다. 아이는 또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지막 문장을 쓰고 윤슬이에게 얘기했다.     


 “그래 모를 수도 있지. 내 마음을 어떻게 다 알겠어? 어른들도 어려워하는데. 그런데 윤슬아. 내 마음을 잘 알아채면 사는데 참 편하다. 상처를 좀 덜 받을 수 있어. 다른 사람이 널 오해해도.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찾는 것도 쉬워. 그러니 자꾸 네 마음을 들여다봐 줘.”     


 수업을 마치고 윤슬이 어머니에게도 아이가 깊이 생각하고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질문으로 유도해달라고 코칭을 드렸다. 계단을 내려가듯이 한 단계, 한단 계.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됐을까 질문하고 생각하다 보면 사고도 깊어지고 감정 찾기에도 도움이 된다고.      


 나는 그날 윤슬이가 수업 자체를 거부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내가 윤슬이 어머니와 얘기할 때 그 옆을 뱅뱅 돌거나 앉아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내 장난을 받아주기도 했으니까. 흥미는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생기는 어떤 벽이 있는 듯 했다. 윤슬이는 그 벽을 깨는 방법이나 용기가 아직 부족한 듯 보였다. 어쩌면 그 안에서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눈을 뭉칠 때 안쪽부터 계속 다져나가야 단단해지듯이, 본인을 자꾸 단단하게 다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을 조금만 보여준다면 사랑하는 부모님이, 친구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힌트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윤슬이가 글쓰기를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계단처럼 내려가며 생각과 느낌 찾기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할 때 한 단계, 한 단계, 계단 내려가듯이 질문해주면 좋습니다. 윤슬이의 경우에 빗대어 예를 들어볼게요. 나는 낯선 사람과 대화가 어렵다. 왜 어렵지? 불안해서. 왜 불안하지? 그 사람이 내 얘기를 어떻게 들어줄지 몰라서. 그의 반응이 예측되지 않아서. 만약 이렇게 답이 나온다면 ‘아 나는 반응이 예측되지 않으면 불안하구나.’라고 내 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들어가볼까요? 난 왜 예측되지 않으면 불안할까? 나는 뭐든 통제할 수 있는 걸 좋아해. 또는 과거 어떤 경험으로 예측되지 않는 상황은 피하는 게 좋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아 나는 통제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또는 ‘과거 그런 경험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생각도 감정도 계단처럼 깊이, 깊이, 내려가다보면 그 근원의 무언가를 만날 수 있어요.           


피아노 연주를 보여줘서 감동이었어요.^^ 윤슬아~ 네게 피아노는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
상기 내용은 코칭 수업 당시의 느낌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기 3~4문장 쓰기 어려운 1학년 남자 아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