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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Dec 14. 2021

일기의 개입은 어떻게, 어디까지 해야 할까?

-개입이 오히려 방해가 되었던 아이

 아이가 일기를 쓸 때 부모가 옆에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방해되지 않게 피해줘야 하는가. 내가 일기코칭을 가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나는 ‘있으셔야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보통 일기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비밀스러운 글이기 때문에 훔쳐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쓰는 일기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그 단계까지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일기 코칭이다. 자신의 온전한 생각과 감정을 담는 공간이 되도록. 그러므로 그전까지는 글쓰기의 기본으로 생각하고 부모님께서 개입해주시는 게 좋다.    

  

 며칠 전 나는 1학년 여자아이 아인이를 만났다. 아인이는 평소 알고 지내던 아이였는데, 또래보다 사고 수준이 높고 학습적으로도 우수한 아이였다. 아인이의 일기를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그림이었다. 아이가 일기를 쓸 때 가장 공들이는 부분이라고 했다. 색감도 좋고, 확실히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는 만큼 그림 실력도 뛰어났다.     


아인이의 그림 일기


 아인이의 글에는 또래 아이들처럼 그날 했던 경험들이 충실히 담겨 있었다. 그날 무엇을 했고, 어디에 갔었고 이벤트 위주의 이야기 구성이었다. 나는 아인이의 일기 중에 ‘순천만국가정원’에 다녀온 글을 보며 이날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았냐고 물었다. 일본 정원, 중국 정원 등 각국의 정원 얘기가 적혀있었다. 그런데 아인이의 대답은 의외로 ‘호텔’이었다. 그날 호텔에서 자고 놀았던 게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텔 얘기는 마지막 줄에 ‘호텔에 가서 쉬었다’가 전부였다.     


 나는 아인이에게 중심 이야기 먼저 잡고 일기를 쓰면 훨씬 재밌고, 좋은 글이 된다고 얘기해 주었다. 이 일기도 호텔 이야기를 중심 얘기로 잡고 썼으면, 아인이 생각이나 기분 쓰기가 훨씬 쉬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인이의 가족나들이. 순천만국가정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쓴 일기


 그리고 일기코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인이가 얼마 전 가졌다는 ‘파자마 파티’를 소재로 일기를 써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인이가 첫 문장에서 파자마 파티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냥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라고 쓴 것이다. 나는 평소 다른 아이들을 지도했을 때처럼 ‘왜냐하면’하고 접속사를 불러주었다. ‘왜냐하면 파자마 파티를 했기 때문이다’라고 쓰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인이는 ‘파자마 파티’라고만 썼다. 문장이 완성되지 않았다.     


‘아 이 아이의 흐름을 깨뜨렸구나. 이 아이는 그냥 내버려둬야 잘하겠구나.’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아무 말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그랬더니 줄줄줄 한 페이지를 금방 채워 넣었다. 글을 길게 쓰는 힘도 이미 키워져 있었다. 나는 다 끝나고 맞춤법만 잡아주었다.      


일기 코칭으로 완성한 글. 그림은 나중에 그리기로 했다. 아인이는 그림을 공들여 그리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 ^^:


 그날 수업에서 내가 한 개입은 글을 쓰기 전에 이루어졌다. 파자마 파티의 어떤 부분을 쓸 것인지. 맛있는 것을 먹어 좋았는지, 게임이 좋았는지 등이었다. 아인이의 선택은 ‘소파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눈 것’이었다. 그다음 아인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개입하지 않았다. 아인이의 경우 방향만 잡아주면 그다음은 스스로 하는 타입인 것 같았다. 이런 아이의 경우 오히려 옆에서 말을 걸거나 개입이 들어오면 흐름이 깨져 작업이 더뎌진다. 혹은 아예 다른 방향으로 망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수업을 마치고 어머니께도 아인이는 스스로 할 수 있게 내버려 두면 더 잘 할 수 있는 아이라고 말씀드렸다. 방향만 잡아주고 오히려 개입하지 않는 것. 아인이에게는 그것이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잘하고 있다는 지지와 믿음 그리고 칭찬이 있다면 아인이는 물과 햇빛을 받은 나무처럼 쑥쑥 잘 자라날 것이다.     




언제 개입하고 언제 개입하지 않아야 하나.     


그 답은 관찰에 있습니다. 개입을 해서 더 나아지는지, 아니면 방해가 되는지 관찰하면 됩니다. 저의 작은아들은 개입을 싫어하는데, 자주 하는 말이 ‘내가 할 거야’입니다. 일기를 쓸 때 제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라고 물으면 ‘아니, 내가 할 거야.’ 라고 답합니다. 큰아들의 경우는 똑같은 질문에 물 흐르듯이 답하고 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개입 해야하는 지도 고민해보세요. 저의 경우 작은아들은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 중심 얘기 찾는데 도움을 주고, 큰아들은 소재거리 찾는데 도움을 주는 편이랍니다.   

       

앙증맞은 손으로 일기를 써내려가던 모습이 참 귀여웠다^^


상기 내용은 코칭 수업 당시의 느낌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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