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7개월 만에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 후 매주 제출해야 하는 과제로 자신과 힘겨운 씨름을 벌이는 중이었다. 매주 읽어야 하는 영어논문과 알 수 없는 한글로 번역된 책들을 앞에 두고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곤 했다.
수강 신청에 실패해서 어쩔 수 없이 듣게 된 행정학과 도시공학과 수업은 나름 재미도 있고 과제도 할 만한데 전공인 도시사회학 수업이 난관이었다. 학부는 영문학, 석사는 비영리기구학을 전공해 놓고 박사에서 사회학을 하려니 읽어야 할 관련 텍스트가 너무나 방대했다. 게다가 글은 또 어찌나 하나같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지. 생긴 것만 한글일 뿐, 학술적 개념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외국어나 다름없는 문헌이 태반이었다.
공간이 순수한 투명성을 지닌 신화적인 이미지나 그와 정반대로 자연적인 불투명함을 지닌 이미지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면, 공간이 그 안에 지니고 있는 것들을 의미작용이나 무의미성, 혹은 과도 의미성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면, 이따금씩 공간이 비록 사물은 아니지만 사물들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공간 비판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p.161, 『공간의 생산』, 앙리 르페브르
이런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간이 자연적인 불투명함을 지닌 이미지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름대로 해석해 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명료하게 인식할 수 없는 텍스트가 너무나 많았다. 2차 문헌을 찾아 읽으면서 대충 이런 의미겠거니 유추하는 것 말고는 어찌할 수 없는 난감한 날들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공부를 계속하는 게 맞을까. 솔직히 박사학위가 노후를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고.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연구원으로 취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저런 이상한 문장들과 씨름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 시간에 돈을 벌던가, 글을 쓰던가, 산에나 다녀오는 게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나타난 이명 증상과 슬슬 심해지는 손목 통증, 과제와 통학으로 누적되는 피로감까지.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커졌다.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면의 설득만으로 과연 학업을 완수할 수 있을지.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문헌들을 읽다 보면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읽어야 할 논문과 책을 펼치기만 하면 2학기에 휴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지 않는 공부라면 어영부영 시간을 끌지 말고 아예 관두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 때 도망치듯 향한 곳이 브런치였다. 재미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는 불가해한 문장들을 피해 말랑한 일상이 담긴 글쓰기의 세계로 도망쳐 온 것이다.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큰 돌덩어리로 자리 잡은 공부의 압박감을 저만치 밀어놓고, 태연한 척 글감을 고르고 문장을 매만졌다. 숙제는 미뤘지만 그래도 글은 한 편 쓰겠구나 안도하면서.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현실도피에 꽤나 소질이 있었다. 청량리 단칸방에 나이 많은 오빠들과 살던 4년 간의 서울 유학 시절, 방치된 어린이로서의 적막감을 잊기 위해 밤늦게까지 오락실을 들락거렸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시작된 고향에서의 암울한 사춘기 시절 만화와 소설에 빠진 것도 갑갑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고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에 가서는 만화가라는 꿈과 학업도 내팽개친 채 졸업장도 없이 학교를 나왔다. 그리곤 2년 간 다섯 군데 일자리를 전전하다, 방황하는 젊음이 싫어 결혼을 선택했다.
원치 않는 일을 피하기 위해 결정한 일이 대개 그렇듯, 나는 그 선택들에 늘 확신을 갖지 못했다. 이게 과연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일까. 스스로에게 물을 때마다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없어 괴로웠다. 만약 내가 현실에 눈 감기 위해 만화책을 집어 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만화가라는 엉뚱한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 꿈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학생운동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러느라 학업을 내팽개치지 않았다면? 집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대학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공부가 목적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졸업장도 없이 학교를 뛰쳐나오지 않았다면?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지는 왜곡된 선택의 연속으로 방황하는 이십 대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 방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나간 일들이 '만약'이라는 질문으로 뒷덜미를 잡아당길 때마다 현실의 감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것이 아닌 옷을 입은 채 현실의 언저리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기분이었다. 도피의 도피의 도피가 만들어 낸 서른의 삶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세계였다. 내가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내가 진짜 누구인지 모르는 채 어른이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나를 찾으려는 고단한 여정을 이끌어 준 것이 글쓰기였다. 글은 나를 탓하지 않았다. 내 안에 어떤 썩어 문드러진 것들이 튀어나와도. 자기 연민과 자의식에 가득한 흉한 활자들을 쏟아내도. 왜 그 모양으로 살고 있느냐고 다그치지 않았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노트에 울분을 쏟아냈다. 내가 읽어도 너무 부끄럽고 참담한 내용이 담긴 노트들은 버렸고, 몇 년후부터는 넷북과 노트북에 써나갔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루한 마음을 하얀 여백에 쏟아낼 때마다 본래의 나 자신에게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우리 사회의 모순을 마주한 겁 없는 이십대로, 새엄마를 집으로 들인 아버지를 미워한 사춘기 시절로, 부모님과 형제들의 돌봄을 바랐던 외로운 어린 시절로, 숨을 쉬지 못하도록 이불로 덮어놓은 원치 않는 아기였던 시절로. 그렇게 나는 꼬인 선택의 실타래를 따라 과거로 걸어 들어갔다. 기억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없는 많은 순간들 속에 내가 마주친 것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작고 연약한 등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그토록 도망친 것은 약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약하고 어린 존재를 지키기 위해 선택했던 회피가 어른이 된 나를 여전히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걸.
'약한 나'라는 화석 같은 자의식을 깨뜨리지 못하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도피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흔이 되어서도, 쉰이 되어서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왜곡된 선택을 하며 삶을 놓쳐버릴 게 뻔했다.
넌 더 이상 아이가 아니야. 약하지 않아. 그걸 깨달아야 해!
그것이 글쓰기가 내게 준 첫 번째 숙제였다.
숙제는 길고 지루했다. 현실은 자라는 아이들만큼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나를 힘들게 하던 남편도, 시댁도, 경제적 상황도, 낮아진 자존감도, 건강도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시험을 치르지 않고 성적이 나오질 않으니 내가 잘 해내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계속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절망을 버티며 쓰기. 아니, 절망을 품고 쓰기.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독한 가난과 가족의 학대, 전쟁터의 시체구덩이 속에 던져진 오빠의 죽음을 경험한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느꼈을 절망이 어떤 것일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글쓰기는 모든 것을, 심지어 절망마저 보상한다'는 그녀의 말을 구원처럼 믿었다. 그리고 매일 토하듯 글을 썼다. 상처와 분노, 미움, 슬픔, 무력감을 지겹도록 되풀이하면서.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이렇게 감정을 쏟아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뭐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내 상처를 알아주지 않아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아서, 팍팍한 현실이 달라지지 않아서라는 변명과 핑계를 반복하는데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같았다.
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미워하는 사람이나 변하지 않는 환경 따위 이야기는 집어치워버려!
진짜 네가 원하는 삶에 대해 말해보란 말이야!
그렇게 나를 다그친 건 가족도, 타인도 아니었다.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내 안의 목소리였다.
글을 쓰면서 시작된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신호
불안과 상처로 똘똘 뭉친 내면의 딱지가 떨어져 나가고 흉 진 자리에 새 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원하는 삶의 윤곽을 그려나갈 힘을, 쓰면서 얻은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을 이어주는 마을카페를 만들고, 끝내지 못한 학업을 독학으로 마치고, 돈을 벌기 위해 발품을 팔고,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마음을 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글쓰기 덕분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내 삶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지만, 내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안하고 단단해졌다. 글쓰기가 모든 것을 보상한다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말은 옳았다.
그런데 요 몇 달간 내 마음은 평안하지 못했다. 공부 때문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던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정상일까 싶었다. 대학은 가고 싶지만 수학은 공부하기 싫었던 마음 같기도 하고, 석사 과정도 그리 재밌지만은 않았다는 걸 떠올리며 꾸역꾸역 과제를 해나갔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대신 브런치의 글쓰기 창을 열었다. 글쓰기는 늘 그랬듯 힘들 때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주는 친구이자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혼란마저 수용해 주는 무한한 세계니까. 브런치에 새로운 매거진을 만들고 몇 편의 글을 쓰면서 현실의 장애물을 건너뛴 채 창작의 도파민을 만끽했다.
하지만 과제와 글쓰기 사이를 줄타기하는 동안 내 손가락은 자주 키보드 위에서 멈추었다. '지금은 글을 쓸 때가 아니라 과제를 할 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열흘 전쯤부터 아무것도 쓸 수 없게 되었다. 무언가 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모른 척 외면하고 글을 쓴다는 건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공부에 대한 회피로 글을 쓰는 것이라면, 공부에 대한 생각부터 먼저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선택한 것이 진짜 나의 욕망이었는지, 그 또한 어떤 일을 방어하기 위한 선택이었는지. 진정한 나의 선택이라면 글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공부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맞았다. 글은 과제를 끝낸 후에 써야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과제를 미루고 브런치부터 접속했다. 그러니 이게 공부에 선행하는 글쓰기에 대한 애정과 열망이라는 걸 증명하지 못한다면 회피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더 두려운 건 공부 역시 회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취업에 대한 불안으로 더 길게 공부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학령인구가 줄어 대졸자는 감소하는데 일자리 스펙을 쌓으려는 고학력 박사만 20년 새 3배 가까이 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니 나 역시 그런 불안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공간을 독립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던 측면도 있었다. 일이야 집을 오가며 해도 되지만, 온전히 공부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었다.
15년 전 즈음, 난생처음쓴 버킷리스트에 '대학원 진학'을 썼더랬다. 대학생 때 공부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인지,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부모님의 한을 계승한 것인지, 그저 세상을 더 알고 싶은 지적 욕구였었는지는 모르겠다. 대학원에 진학 후 내가 버킷리스트에 그런 말을 썼다는 걸 뒤늦게 기억해 내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왔구나 싶었는데. 이젠 모르겠다. 늘어나는 학자금 대출과 약해지는 체력과 하루가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압박과 읽어야 할 산더미 같은 문헌에 대한 부담으로 공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공부가 또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라서. 가끔은 경험과 이론이 맞닿을 때, 꺼져 있던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사유가 반짝거릴 때도 있으니까.
너무 많은 상황과 이유가 뒤섞인 탓일까. 과제를 앞둔 마음도, 다시금 글을 쓰는 마음도 복잡다단하다. 분명한 건 도피로서의 공부도, 도망치는 글쓰기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불안과 회피라는 지난한 시절의 굴곡을 벗어던진 후 꽤 오랫동안 건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중단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글쓰기에 집중한 건 그런 믿음 때문이었다. 더 이상 컴컴한 내면의 동굴로 혼자 걸어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글쓰기를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얼마나 외로운 과정인지 겪었기 때문이다.
불분명한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진짜 욕망과 가짜 욕망을 구별하고 진짜 자신을 찾는 일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고독한 작업이다. 그래서 처음 이 글을 쓸 때 브런치에 발행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을 나만 느끼는 건 아닐 것 같아서. 꼭 그 과정이 혼자만의 외로운 길이어야 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을 거라는 믿음도 미심쩍었다. 그때와 나는 달라졌고, 글을 쓰는 환경도 변했다.
꼭 무게를 잡고 진지하게 써나가야 할까. 숙제를 하고 글을 쓰는 것과 글을 먼저 쓰고 숙제를 하는 일의 차이를 이분법적으로 정의해야만 할까. 너무 추상적인 글을 읽다 보니 사유마저 관념적으로 오염된 건 아닐까. 그러니까 배부른 고민하고 자빠졌다고 누군가 후려쳐주면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쓸데없는 고민은 아닐까.
그런 의문의 의문의 의문 덕분에 숙제를 미루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도망치는 글쓰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왜 도망치게 되는가에 대한 글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Epilogue.
청춘의 시절에 놓아버린 공부를 마흔이 되어서야 마무리한 내게, 글쓰기와 공부는 단순한 자기 기록이나 셀프 브랜딩, 스펙 찾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삶의 혼란 속에 팽개쳐 질 때마다 내면의 구원을 위해 붙잡은 것이 글쓰기였다면, 공부는 논리적 사유와 이론을 통해 기존의 경험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사회와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어쩌면 나 자신을 찾고 비로소 나다워지는 것은 이 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대학원 공부에서 배우는 이론과 지식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사회의 연결고리를 파악하고, 그러한 이해와 분석이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가는데 조금이나마 유용하게 쓰일 때 힘을 발휘한다. 지금 나의 공부는 이제 막 2막에 들어섰다. 아직 무언가를 결론짓기엔 이르다는 뜻이다. 지금의 방황과 혼란 속에 할 수 있는 최선은 결국 글을 쓰는 것이고, 공부를 멈추지 않는 것뿐.
그 외에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포기한다면, 답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인생에 정답이란 없고, 누구나 가장 자기답게 사는 방식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