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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25. 2020

119 좀... 불러주세요

불러주셔서, 그리고 빨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날따라 둘째 아이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매일 길냥이와 놀아주고 밥 챙겨주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더러 있었지만, 연락까지  안 되니 괜히  마음이 불안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 밖은 이미 한밤중처럼 캄캄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음만 울릴 뿐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늘이 필라테스를 가는 날이었나? 몇 달전 필라테스가 너무 배우고 싶다며 하두 조르길래, 태권도말고  다른 사교육비는 써본적 없는걸 고려해 끊어주었는데 코로나로 영업을 중단했다 다시 재개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저녁 8시 타임이라 너무 늦은 시간에 운동을 다니는 게 좀 불안해서 시간을 당겼으면 했는데. 거기 가서 운동하느라 연락이 안되나 싶었다.


저녁 8시 53분. 도저히 안되겠어서 문자를 보냈다.


'늦었는데 어디야? 전화도 안 받고.'


답이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낯선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저희 아이 휴대폰으로 전화 걸었는데..."

"아.. 000 아파트 종합상황실인데요, 엘리베이터에서 휴대폰을 습득해서 보관 중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근처의 아파트였다. 친구가 그 아파트에 산다는 얘길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친구집에 놀러 갔던 모양인데.. 그럼 지금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차도 없고 이미 날도 어두워져서 내일 휴대폰을 찾으러 가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알 수 없고, 휴대폰은 잃어버렸고, 시간은 밤 9시가 넘은 상태였다. 중3짜리 여자애가 대체 어디서 뭘 하길래  이 시간까지 연락도 안되는 거야? 가만히 손 놓고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의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00이 엄만데, 혹시 같이 있니? 00 이가 폰을 잃어버린 모양이야.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아서.. 아직 집에도 안 들어오고 걱정이 돼서ㅜㅜ 늦은 시간에 미안해.'


문자를 보내고 몇 분을 기다렸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한번 더 문자를 보냈다.


'걱정돼서 그런데 문자나 전화 좀 부탁할게ㅠ'


이때가 9시 20분이었다.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 엘리베이터에 휴대폰을 떨어뜨렸을까. 누군가 강제로 잡아끌었나?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친구폰으로 전화를 걸어서라도 자기 휴대폰을 찾았을 텐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실종신고를 해야 되나?


9시 40분. 옷을 주섬주섬 입고 택시를 불렀다. 아무래도 아이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아파트로 당장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주웠다고 하니 CCTV를 확인하면 어쩌다 폰을 잃어버린 건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아이의 행방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고. 안되면 얼른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던 큰 아이에게, 나 없는 사이 혹시라도 둘째가 들어오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1층에 도착할 때쯤 택시기사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 계세요? 도착했는데 안보이셔서요."

"아, 네. 다 내려왔어요."


나는 왼손에 휴대폰을 들고 택시기사와 통화하며 택시를 향해 뛰어갔다.


"금방 도착해요. 택시 보이네요... "


그때였다. 오른발이 뭔가에 걸렸고, 몸이 허공에 떴다가 바닥을 향해 그대로 떨어졌다. 바닥에 오른팔이 부딪히며 각목으로 바닥을 내려치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가 났다.


"아아아악....!!"


아파트 현관에서 뛰어나오다 주차장 바닥에 부착된 주차방지턱(고무 블럭)에 그만ㅜㅜ...


나는 꼼짝도 못 하고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질렀다. 팔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 택시기사가 황급히 달려오더니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신음 소리 반, 흐느낌 반으로 겨우 말했다.


"아.. 아니요... 팔이.. 으으으... 팔이 너무 아파요.. 으으흐흑"

"택시 타고 병원으로 가실래요?"


하지만 나는 일어설 수도 택시까지 걸어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내가 아파트 입구 주차 구역에 누워 아파트 두 개 동 주민이 다 들을 정도의 큰 소리로 계속 비명소리를 내다가 울다가 했기 때문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한 여성분이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어떡해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극도의 통증 속에서 그녀에게 겨우 부탁했다.


"119 좀... 119  좀... 불러주세요..."


그녀는 119에 전화를 하고 나선 바닥에 떨어진 내 휴대폰을 들더니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주겠다고 했다. 평소 가족 연락처를 즐겨찾기 해두어서 가장 상단에 남편 연락처가 있었는데 그분이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어쩌죠.. 전화를 안 받으시네요."


119가 오기 전까지 아스팔트 바닥에서 계속 통증으로 울며 신음하고 있는 사이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가족이 너무나 먼  존재처럼 느껴졌다.


평소 수없이 많은 회의를 하는 남편은 회의 중엔 결코 통화가 되는 법이 없다. 더구나 그날은 미리 늦을 거라고 얘기까지 했던 터라 아마 회의가 길어지는 중이었을 거다. 큰 아이는 이어폰을 꽂은 채 공부를 하고 있을 테고 둘째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어찌나 서럽던지 마음도 어디 한 군데 부러진 것 같았다.  


"119가 왜 이렇게 안 오지?"


119에 신고하고 나서도 자리를 뜨지 못한 그녀가 가족 대신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끔찍한 통증 때문에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구급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깜빡이는 빨간 불빛과 함께 구급차가 도착했다. 대략 10 분이 안 걸려서 왔던 것 같다. 코로나 때문인지 르스름한 비닐 같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까이 오더니 주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나는 계속 거친 호흡으로 울며 신음하던 중이어서 신고해준 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전하지 못했다.


"팔 움직일 수 있겠어요?"

"아니요... "

"다리는 괜찮아요?"

"네에... "

"머리는요?"

"괜.. 찮아요"

"자,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길게 내뱉으세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다리를 다친 건 아니었기에 일어나 보려고 했지만, 힘이 풀렸는지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만히 계세요. 이동형 침대로 옮겨 드릴게요."


구급대원이 나를 부축해서 의자처럼 접힌 들것에 앉혔는데, 구급차 뒤쪽으로 밀어 넣자 들것이 쭉 펴지며 침대처럼 변했다. 병원으로 이동하던 도중 구급대원은 계속 숨을 천천히 쉬라고 말했다.


분 후 집 근처의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 입구에서 구급대원이 "드랍 다운"이라고 말했다. 넘어진 사고라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누군가 발열 체크를 하고 침대를 밀어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두 사람이 나를 시트에 감싼 채로 들어 올리더니  다른 침대로 옮겼다.


나는 계속 천천히 숨 쉬려고 노력하며 이를 악물고 통증을 견뎠다. 종종 낮은 신음소리와 눈물이 저절로 나왔지만, 어느 누구도 아프냐고 묻거나 진통제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아프고 다친 사람들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곳이라 그렇겠지만, 그 당연한 걸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어 또 서러웠다.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와 물었다.


"보호자는 안 계세요? 혹시 입원하는 상황 생기면 보호자 계셔야 하는데."

"아... 네.. 아직 연락이 안돼서.. 근데 진통제 좀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아픈데... "

"일단 과장님이 보셔야 돼요. 앞의 다른 환자분  보고 계셔서 이삼십 분 걸릴 거예요. 조금만 참으세요."


나는 왼손으로 침대를 더듬어 구급대원이 챙겨준 휴대폰을 찾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 통화는 되지 않았다. 가족 중 누군가 한 명이라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큰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00야, 엄마가... 넘어져서 많이 다쳤어... 지금 구급차 타고 병원에 와 있는데.. "


너무 비명을 지르고 운 탓에 목소리가 마구 갈라졌다. 좀 전까지 휴대폰 찾으러 다녀온다던 엄마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이라고 하니 아이는 놀랐는지 "어?" 하는 한 마디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겨우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보호자가 필요한데... 지금 아빠가... 연락이 안돼. 아빠한테 네가... 문자 좀 남겨 줘. 00이 집에 안 들어온 것도 얘기해주고... 다시 전화할게."


아이와 전화를 끊고 남편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역시나 신호만 갈 뿐 아무도 받지 않는다. 남편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연락처를 아는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어쩌다 보니 작년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한 대학 동기 K가 생각났다. 늦은 시간, 실례인 줄 알면서도 전화를 걸었다.


"어, 안녕아. 어쩐 일이야?"

"00아. 내가 지금... 다쳐서 갑자기 응급실에 왔는데... 남편이 연락이 안돼. 오늘 늦을 거라고 하긴 했는데... 네가 사무실 다른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남편한테 소식 좀 전해줄래?"


전화를 끊고 나니 또 눈물이 났다. 아파서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다쳐서 구급차에 실려왔는데 당장 달려와줄 가족도 없고 남편은 연락마저 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때 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괜찮아? 아빠는 전화 안 받아서 문자 남겼고. 지금 00이 집에 들어왔어."


그 순간 둘째에게 별일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게 아이 때문인 것 같아 화가 다.


"바꿔 줘 봐... 너.. 어디 있었어?"

"고양이 밥 주고... 예전에 다니던 태권도장에 놀러 갔는데... 관장님이 온 김에 운동하고 가라고 그래서..."


둘째는 내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었는지 코맹맹이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따지고 보면 어두운 밤에 주차 방지턱을 보지 못하고 달려가다 넘어진 건 부주의한 내 탓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 아프고 속상해서 누구라도 붙잡고 원망이든 하소연이든 하고 싶었다. 왜 연락도 없이 집에 늦게 들어왔느냐는 야단을 칠 몸상태나 타이밍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아이를 몰아붙였다.


"늦으면 늦는다고... 다른 사람 폰을 빌려서라도 미리 연락을 해야지... 네가 계속 안 들어오니까 엄마가... 불안해서 밤에 그렇게 나가다가 다친 거잖아!"


평소라면 부러 집 밖으로 나갈 일도 없을 그 시간에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려고 서두르다 그리 되었으니 "너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한 것이다. 아이에게 굳이 자책감을 심어줄 필요는 없었는데. 너무 아프니까, 아이의 마음까지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한 번은 따끔하게 말해야 앞으론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아이는 풀이 죽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드디어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괜찮아?"

"아니... 많이 아파... "

"지금 갈게. 한 시간쯤 걸릴 거야."


휴대폰을 내려놓고 혼자 아파서 끙끙 대며 울고 있는데 과장이 오더니 물었다.


"오른팔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

"팔꿈치 근처요... "

"엑스레이 일단 찍어볼게요."


방사선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으려면 각도가 나와야 된다며 촬영하는 사람이 조금 팔을 움직였는데 또 악, 소리가 났다. 아파서 몸을 벌벌 떨며 울었더니 조금만 참으라고, 곧 끝날 거라고 하면서  몇 번 더 팔과 손목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촬영을 했다. 완전히 진이 빠진 채 응급실로 돌아와 누워 있으니 의사가 와서 엑스레이 결과를 알려주었다.


"오른팔에 골절이 의심됩니다. 더 정확한 결과를 위해서 CT 찍어볼게요. 뼈를 다치셔서 많이 아프실 텐데 진통제 주사 놔드릴게요."


진작 좀 놔주지(ㅜㅜ). 주사를 맞고 시간이 좀 지나자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다만 오른팔 전체가 화끈거리고 퉁퉁 붓는듯한 묵직한 통증은 계속됐다.


CT까지 찍고 오니까 남편이 도착했다. 그때까지도 통증 때문인지 심리적 요인 때문인지 눈물이 나던 중이었는데 내 몰골을 본 남편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남편 얼굴을 보자 그제야 서러운 마음이 가라앉고 안도의 한숨이 났다.


의사가 침대로 와서 CT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결과 같이 보시겠어요?"

"아뇨... 당신이 가서 보고 와."


나는 더 이상 움직일 기력도 없는 상태여서 남편만 보내고 침대에서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남편이 오더니 결과를 말해주었다.


"골절상이래. 뼈 붙으려면 6주 정도는 걸린대."


오른팔의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연결된 두 개의 뼈 중 팔꿈치 쪽의 바깥쪽 뼈 끄트머리가 깨졌다고 했다. 넘어졌을 때 오른쪽 팔꿈치가 몸의 하중을 고스란히 받으며 바닥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그때 각목 부러지는 것처럼 "빡"하고 나던 소리는 뼈 부러지는 소리였던 셈이고.


의사가 침대로 와서 반깁스를 해주며 내일 아침에 정형외과 진료를 받으라고 알려주었다. 중간에라도 아프면 먹으라며 3회 분량의 진통제도 챙겨주었다.


수납을 하고 병원을 나와 남편과 집에 오는 길. 아이 휴대폰을 찾으러 갔다가 그리 되었다는 얘길 하니, 가는 길에 찾아가잔다. 차를 돌려 000 아파트로 향하는데 도로의 과속방지턱에 덜컹거릴 때마다 팔에 충격이 가는지 통증이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가 차를 세우고 남편이 휴대폰을 찾아왔다.


집에 들어가서는 너무 지친 나머지 둘째에게 별다른 얘기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부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날 밤. 팔에 깁스를 하니 불편한 것도 있었지만 통증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의사가 왜 진통제를 따로 챙겨주었는지 알았다. 몇 차례 잠에서 깨다가 결국 새벽녘에 진통제를 먹고서야 다시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이틀간은 하루 세 번 먹는 진통제 외에 새벽에 별도의 진통제를 먹어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지역에서 맡기로 예정되었던  개의 일정을 포기했다. 다음 달 중순까지 제출해야 하는 대학원 연구계획서도 취소했다. 이 때문에 대학원 논문과 졸업이 한 학기 더 미뤄지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다친 건 푹 쉬라는 신호라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고 했다. 지만 정말 아무 도 하지 않고 이대로 6주를 보냈다가는 심리적으로 더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쉬는 것도 건강할 때나 즐겁지. 이렇게 다친 상태에서 쉬는 건 제대로 된 휴식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네.' 하며 집에서 두문불출하다 보면 괜히 울적해지기밖에 더할까. 그렇잖아도 코로나에다 건강도 좋지 않아서 힘들었던 올 한 해를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더구나 도저히 중도에 그만둘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마을공동체 관련 강의와 몇 번의 심사, 추진 중인 로컬매거진 창간호의 교정작업을 포함한 여러 번의 회의, 대학원 수업, 마을카페 운영위원 모임, 청소년들과의 영어 낭독 모임, 지역문화재단의 제안으로 시작된 청년 아키비스트 멘토링까지.


진통제의 힘을 빌어가며 열흘간 열다섯 개의 일정을 소화했다. 치료비도 벌어야하고, 프리랜서가 너무 오래 쉬면 아예 일이 뚝 끊어지가도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회의나 교육, 토론 자리에서 글을 써가며 정리하고 발표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걸 못하니 말수가 줄어든 느낌이다. 왼손으로 띄엄띄엄 정리하고 있는데 오른손만 못하다.
대학원 사회심리학 수업 필기. 이 와중에 교재에도 없는 '결혼에 대한 취소 불가능성'을 쓴건 무엇...


여전히 오른팔을 쓸 수 없어 불편하지만, 이삼일 전부터 통증이 줄어들고 왼손 쓰기가 조금이나마 익숙해졌다. 왼손으로 치약 뚜껑도 돌리고 칫솔질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다만 당분간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답답했다. 하지만 늘 노트북으로 쓰던 긴 글을 차마 휴대폰으로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팔을 다치기 전 작가의 서랍에 넣어둔 글을 수정하고 발행하는데도 몇 시간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왼손 손가락 한 개로는 속도도 너무 느리고 오타가 심하게 났다.


그런데 어제부터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왼손으로 며칠에 걸쳐 천천히 쓰다 보면 한 편 정도는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휴대폰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왼손 가운데손가락이 애를 많이 썼다. 막상 써보니 며칠씩이나 걸리지는 않았다. 어제 아침부터 쓰다가 오후에 쉬고 또 밤부터 새벽 2시까지 썼고. 오늘 아침과 오후 잠깐, 그리고 오늘 밤 12시까지 저녁시간을 모두 할애했을  뿐이다. 거의 이틀은 걸린 셈이지만. 그날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시고나니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왼팔까지 다쳤으면 이런 글도 쓰기 어려웠을 테고, 발을 다쳤다면 정말 집안에 갇혀 지냈을 테니까. 그나마 한쪽 팔만 다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처음엔 "하필 오른 팔을 다쳐서... " 그랬는데, 지금은 한 팔이라도 멀쩡해서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감사한 이들이 너무나 많다. 낯선 이의 사고에 발길을 떼지 못하고 옆을 지켜준 이웃과 택시기사, 십 분도 안 걸려 달려와준 119 차량과 차분히 대응해준 구급대원들. 늦은 시간 피로와 싸워가며 응급실을 지켰을 의사와 간호사들. 일정을 취소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집까지 픽업하러 와준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주무관. 다친 팔을 올려놓으라고 쿠션을 챙겨준 지역문화재단 직원. 빠르게 남편에게 연락을 취해 준 친구 K. 걱정을  끼쳤지만 이제 꼬박꼬박 행선지를 알리고 누구보다 집안 살림을 신경 쓰는 둘째. 가장 든든한 남편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고가 난 이튿날 집에 오셔서 1박 2일간 집 청소와 빨래, 반찬까지 해주신 시어머니까지. 걱정해주고 쾌유를 빌어주는 지인들과 브런치 작가님들의 존재도. 모두 고마워요, 정말.




머리로 알던 것과 몸으로 겪는 건 역시나 다르네요. 어느 날 갑자기 119를 타고 응급실에 가보지 않았다면, 어찌 알 수 있었을까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큰 힘이 된다는 걸요.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직업이고, 119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응급구조시스템이라는 보편적 사고에 머무른 채 살아갔겠죠. 예전에 누군가 훔쳐간 제 카메라를 추적해서 기어코 찾아주신 경찰관 아저씨도 생각나고, 우리 사회를 곳곳에서 지키고 있을 수많은 군인, 소방관들도 생각나는군요.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지난 열흘간, 우리는 생각보다 더욱 유기적이고 다양한 관계로 엮인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아주 대단하진 않지만 보잘것없는 저의 존재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게 되는 밤입니다.



*대문 사진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79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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