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작은 은색 가위로 오른팔에 감았던 붕대를 잘라내며 말했다. 전치 6주의 골절상을 입은 지 꼭 4주가 된 날이었다.
"이제 붕대는 풀고, 깁스는 찍찍이 형태로 바꿀게요. 뼈가 아직 안 붙긴 했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팔을 예전처럼 쓸 수 없으니까, 꼭 굽혔다 폈다 하는 운동을 많이 하세요."
집에 돌아와 깁스를 풀고욕실 유리 앞에 섰다. 팔 모양이 깁스처럼 ㄴ자로 굳어서 마치 팔 안에도 깁스가 있는 것 같았다. 몸을 왼쪽으로 틀어 오른팔 뒤쪽을 비추어 보았다.팔뚝 안쪽까지 선명하던 피멍이 누렇게 가라앉고 팔꿈치 인근의 피멍과 붓기만 남은 상태였다. 있는지 몰랐던 손목뼈의 상처와 엄지와 검지 사이의 짙은 멍도 처음 확인했다.
상처를 눈으로 보니 그날의 통증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캄캄한 밤, 보이지도 않던 주차 방지턱에 걸려 훅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던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괜스레 몸이 움츠러들었다. 왼팔보다 유난히 퉁퉁해진 오른팔이 남의 팔 인양 낯설었다.
왼손으로 샤워기를 들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따뜻한 물로 몸을 적시는데 욕실 문 앞에서 둘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내가 도와줄까?"
"어? 응..."
욕실로 들어온 딸아이는 한 손에 때수건을 끼우더니 조심스레 내 등과 팔을 밀기 시작했다. 몸에서 하얀 각질이 끊임없이 밀려 나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씻겨주는 건 늘 내 쪽이었는데. 엄마가 커다란 고무대야 안에서 등이 벌게지도록 때를 밀어주던 어린 시절 이후로 이렇게 내 몸을 누군가에게 맡겨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것 말고도 처음 해보는 일이 많았다. 왼손으로 머리를 감고, 왼손으로 밥을 먹고,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 오른팔을 다치기 전까지는 해본 적 없는 일들이었다. 한 달쯤 그렇게 생활했더니 더 이상 젓가락으로 김치를 떨어뜨리는 일도 없어졌고, 왼손으로 하는 세수와 양치질에도 제법 능숙해졌다. 오른팔을 계속 못쓴다 해도 생활에 큰 불편은 없겠군. 뭐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오른팔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 글을 쓰려면 그래야 했다. 오른팔을 다치자마자 왼손가락 하나로 글 한편을 쓰긴 했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열심히 팔을 움직이며 운동하라던 의사의 충고대로 가끔 깁스의 찍찍이를 떼고 팔을 움직여보았다. 아주 조금은 움직일 수 있었지만, 팔을 완전히 펴거나 접는 건 불가능했다. 더 벌리려고 하거나 잡아당기면 근육이 찢어질 듯 아팠다. 너무 아프니까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왼손으로 생활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통증을 피하자고 팔을 그냥 굳은 채로 내버려 두고 싶어 지다니. 나는 팔을 움직여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과 팔을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육체적 본능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운동할 때마다 뗐다 붙였다 하던 반깁스. 이게 생각보다 무거워서 팔에 걸치고 있으면 무게 때문에 저절로 팔이 밑으로 쳐진다.
깁스를 바꾼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의사는 반깁스를 풀고 팔을 펴고 당겨보라고 했다. 내가 조심스레 팔을 움직이자, 의사가 내 팔을 잡더니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팔이 얼마나 펴지는지 확인해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곤 다시 팔을 힘껏 밀어서 접었다. 어찌나 아픈지 나도 모르게 "악"소리를 냈다. 의사는 야단치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운동을 별로 안 하셨나 봐요. 분명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계속 열심히 안 움직이시면 원래대로 팔 안 돌아가요. 예전처럼 다시 쓰셔야 할 거 아니에요?"
꾀를 조금 부린 건 맞지만 어쩐지 조금 억울했다. 재활이 혼자서 뚝딱 되는 일인가.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꼭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혼자서 해도 충분해요."
"저 혼자서는 아파서 이 정도밖에 펼 수가 없는데..."
"그럼 오늘 물리치료받고 가세요."
의사로부터 어렵게 허락을 받고 지하 1층에 위치한 물리치료실로 내려갔다. 데스크에 이름을 쓰고 잠시 대기하니 이십대로 보이는 여성 물리치료사가 이름을 부른다.
"안녕님"
나를 한쪽 구석의 침대로 안내한 그녀는 수없이 되풀이했을 법한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겉옷 벗으시고 침대에 누우세요."
"네"
"오늘 처음이시니까 조금만 움직여볼게요."
재킷을 벗어 다리 옆에 밀어 두고 천천히 누웠다. 물리치료사가 두 손으로 오른팔을 잡았다. 그리곤 안쪽으로 밀었다.
"아아아 아악!!"
창피하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소리를 꽥 질렀다.
"10초간 유지합니다. 하나, 둘, 셋.... 환자분, 몸에 힘 빼세요. 천천히 호흡하시고.... 일곱, 여덟, 아홉, 열."
"으흐흐흐.... 후 우우우...."
나는 몸을 덜덜 떨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몇 초 후 그녀가 다시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다시 한번 더 갑니다. 하나, 둘, 셋...."
"아악.. 으흐흐흐.."
눈에서 결국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긴장 푸세요. 숨 깊게 들이마시고, 깊게 내쉬세요."
물리치료사는 연신 긴장을 풀라고 했지만 나는 계속 흐느끼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할게요."
그녀가 잠시 내 팔에서 힘을 뺐다. 도망가고 싶었다. 물리치료가 이렇게 아픈 건 줄 알았으면 절대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아파하시네요. 오늘 처음이라 많이 약하게 한 건데. 원래 아픈 거 잘 못 참는 편이신가요?"
이게 약하게 한 거라고? 다시 팔이 부러지는 것처럼 아픈데? 안 그래도 아파 죽겠는데 엄살이 심한 모양이라는 그녀의 말투에 기분이 확 상하고 말았다. (이래 봬도 맹장 터지고도 3일간 참았던 사람이라고, 내가! 아이도 자연분만으로 둘이나 낳았는데!!)
약 10분간의 물리치료가 끝났을 때, 나는 완전히 진이 빠져버렸다. 이건 치료가 아니라 공포 체험에 가까웠다. 혼자서 어떻게든 재활운동을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려던 찰나. 자리에서 일어난 물리치료사가 단호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셨어요. 내일도 오세요. 매일 오셔야 합니다."
매일이라니. 매일이라니.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세상에 이토록 듣기 무서운 말은 없었던 것 같다. 이 고통을 어떻게 매일 맞닥뜨리란 말인가. 그건 마치 넘어져서 팔이 부러질 걸 알면서도, 다시 주차 방지턱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아.... 네...." 건성건성 대답한 나는 옷을 대충 손에 들고 물리치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입구 의자에 앉아 통증으로 얼얼한 오른팔을 매만지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다시는 오나 봐라...
그 후 나는 물리치료실을 딱 한 번만 더 방문하고 그만두었다. 의사의 말 마따나 스스로의 힘으로 꾸준히 운동하면서 굳었던 근육이 많이 풀렸고, 둘째가 자주 아로마 마사지와 함께 물리치료사가 했던 방식대로 재활치료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시어머님이 다니시는 건강원에서 저주파 치료도 받았다. 기존의 손목 통증 때문에 사두었던 원적외선 치료기도 꾸준히 사용하고 스트레칭을 했더니 ㄴ자였던 팔이 거의 일자로 펴졌다. 여전히 팔이 자주 뻣뻣해지고, 새벽이면 혈액순환이 안되어 통증을 느끼지만 생활의 불편함은 많이 사라졌다.
팔을 다치고 거의 두 달만에 오른손이 오른쪽 얼굴에 닿았던 날.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보자마자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나 오늘 양손으로 세수했어!! 이제 귀랑 볼에 손이 닿는다고!!"
나는 아이처럼 흥분해서 오른손으로 볼과 귀를 만져보였다. 억지로 손을 바르르 떨며 겨우 닿는 거였지만, 양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게 이토록 큰 행복인지 예전엔 몰랐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박수를 치고, 두 팔 벌려 아이를 안아주고, 헤어질 때 힘차게 양 손을 흔들며 인사할 수 있다는 건. 두 달간 뼈가 부러지는 아픔과 재활의 통증을 버티며 얻은 가장 소중한 배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는 평범한 일들이 실은 커다란 선물이자 축복이라는 걸.
팔을 다친 후 두 번의 제사가 있었는데(제사 모시는 큰며느리라...), 이번엔 어머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멀뚱멀뚱 지켜보는 일이 많았다. 어찌나 마음이 불편하던지.
그래도 일은 해야 했기에 왼손으로 ppt강의 자료도 만들고, 30페이지에 가까운 수업 자료들도 편집하고, 잡지와 보고서의 교정도 보았다. 그래서 브런치는 더욱 안드로메다로....
제사를 지내고 남은 멜론을 혼자 쪼갤 수 없어서 사용한 방법. 왼손으로 식칼을 가운데에 살짝 꽂은 다음 고기 망치로 칼을 두드려 깼다. 이런 식으로 사과와 단감도 혼자 쪼개 먹었다
그야말로 뼈아픈 깨달음이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네요. 그리고 브런치를 방치한 기간에 들러 안부인사 남겨주신 브런치 작가님들과 구독자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그 기운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궁금해하고 기다려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어요.
이제 다시 브런치에서 자주 뵙도록 할게요. 아무쪼록 코로나와 건강 유의하시고 희망하는 일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새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