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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17. 2021

산에서 마주친 세 사람

포기하려던 그때


지난겨울, 그 어느 때보다 산을 자주 올랐다. 간혹 남편과 함께 뒷산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주로는 혼자였다. 그것도 남들이 다 내려가는 오후 시간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점심을 먹고 나서야 '산에나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였다.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인적이 드문 시간에 오르면 좀 더 조용히 산을 오를 수 있으니까.


그날도 점심을 먹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언제나 그렇듯 도봉산 중턱에 위치한 오래된 사찰이었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걸어서 10분이면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는 거리.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출발이었다.


그럼에도 이 날의 산행을 기록하는 건, 평소와 다른 산행로를 걷다가 만난  사람 때문이었다.   




1시가 넘은 시각.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구름 때문에 푸른 하늘을 마음껏 볼 수는 없었지만, 대기는 깨끗했다. 올라가는 길에 밥 줄 고양이가 없는지 둘러보기도 하고, 챙겨 온 뜨거운 생강차도 마시며 쉬엄쉬엄 걸었다. 오후 시간이라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두 세명씩 함께 내려오는 등산객을 가끔 마주칠 뿐이었다.


광법암이라는 작은 암자에서 보면 좌측으로 보이는 사찰이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지어진 망월사이다.


2시 반쯤, 목적지인 사찰에 도착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산속에 자리한 절에 오르면 괜스레 마음이 경건해진다. 모든 욕심을 비우고 겸허해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혼자 묵묵히 산을 오르다 보면 잡념이 없어지기도 하거니와 고요한 절간의 분위기와 바람에 부딪히는 풍경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딱히 고민이 있는 건 아닌데도, '다 내려놓아라. 부질없도다' 뭐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대웅전 위쪽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산멍을 즐기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 여유는 많았지만 딱히 오래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등산화 끈을 질끈 묶고 배낭을 둘러멨다. 왼쪽으로 난 돌계단으로 하산하면 등산로 입구까지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1시간도 되지 않는다. 여느 때보다 목적지에 다다른 시간도, 내려가면 도착할 시간도 빨랐다. 애매한데? 나는 하산로로 이어지는 돌계단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빨간 화살표로 표시된 작은 표지판이 서 있었다.


포대능선.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였다. 늘 내가 사찰에 도착할 즈음이면, 상체만 한 커다란 배낭을 멘 중년의 등산객들이 일찌감치 하산하던 길. 지인으로부터 이 등산로를 알게 된 후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다. 내 손을 잡고 같이 올라가 보자고 한 이도 없었고, 나 역시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포대능선


언젠가부터 나 최종 목적지는 항상 '여기까지'였다. 내 체력을 믿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다음 걸음이 보여줄 풍경을 굳이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비슷한 흙길과 바위, 나무들이 펼쳐지겠지.  


과연, 그럴까?


갑자기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일이지. 가보기 전에는.

포도가 신지 아닌지는 따먹어 보아야 알 수 있는 거니까.

그동안 걷지 않았던 건 오르는 길이 뻔해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었던 것 아냐? 정상이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길을 혼자 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

이게 단순히 등산의 문제가 아니라 낯설고 새로운 것을 대하는 네 삶의 태도라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도전보다 안주하길 바라는 무뎌진 정신 때문이라면? 스스로에 대해 한계를 짓고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는 익숙한 습관 때문이라면?'


내 안의 다른 존재가 다그치는 기분이었다. 왜 하필 그날따라 이런 의문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이대로 내려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갈길 잃은 사람처럼 한참 제 자리를 맴돌다 발길을 돌렸다. 포대능선으로.



산행로는 이미 다녀간 이들의 발자국만 가득할 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없으니 조금 무서웠다. 군데군데 눈이 녹지 않아 길도 미끄러웠다. 금세 후회가 밀려왔다.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발길을 멈추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지금 다시 돌아간대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곤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런데 찝찝했다. 내가 그걸 안다는 사실이(그래서 펜트하우스의 천서진도 친구를 해친 자신의 딸에게 기억을 지우는 약을 먹인 거겠지). 나는 걷다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가는 내내 별다른 풍경 같은 건 없었다. 시야가 모두 나무로 막혀 있는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삼십 분쯤 산을 오르자 그간 걸어왔던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른 길이 나타났다. 거의 경사가 40도쯤은 되어 보였다. 직감적으로 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분명 여기만 올라가면 정상일 것 같은데. 엄두가 안 났다.


아이젠을 차고 오르지 않은 게 실수였다. 눈이 녹지 않은 평탄한 길과 경사는 있지만 눈이 녹은 길이 반복되었기에 별생각 없이 걷다가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나는 낙엽과 눈에 덮여 제대로 된 등산로도 보이지 않는 좁은 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더 이상 올라가는 건 무리야. 괜히 올라가다가 미끄러지면 어쩌려고. 그냥 다음에 다시 한번 오자. 그래,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어디야.


줄을 꼭 붙들몸을 돌리려는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척, 척, 척, 척. 마치 스텝이라도 맞춘 듯 거침없이 오르는 고수들의 발걸음이었다.


그들이 먼저 올라간 다음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왼손으로 줄을 잡고 얼음처럼 서 있는 사이, 몇 명이 빠르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내 앞을 지나간 건 등산객이 아니었다. 단출한 법복을 입은 세 명의 스님들이었다. 스님들은 줄을 잡지도 않고 미끄러운 비탈길을 올랐다. 스틱은 고사하고 등산 장갑 따위도 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 스님들의 고무신이었다.


한 손으로 밧줄을 잡고 한 손으로 뒤늦게 휴대폰을 꺼내 찍은 사진이라 마지막 스님의 뒷모습만 사진에 담겼다.


그때 나는 당근 마켓에서 산 외국 브랜드의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은 상태였다. 겨울산행에 괜찮은 등산화 한 켤레쯤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심혈을 기울여 고른 신발이었다.


그런데요 스님, 고무신을 신고 겨울 산행을 하시 다니오? 

그것도 경사진 정상을 향해 그리 씩씩하게 걸어가시면 등산화까지 신고 포기하려던 제가 뭐가 됩니까.


세 명의 스님이 보이지 않는 죽비로 뒷목을 타다닥 때리는 느낌이었다. 스님들은 반드시 등산복과 등산화를 착용하고 산을 올라야 한다는 믿음을 짧은 순간 와장창 깨버리곤 홀연히 사라졌다. 아무리 어리석은 중생이라도 알건 안다. 이 분들은 내게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조건이 아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부여잡아야 하는 건,

겠다는 의지와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이 분들을 만나기 위해 오늘 내가 정상을 향했던 건가. 아니면 나 같은  등산객우매함을 깨치기 위해 스님들이 부러 오르신 건가. 나는 찰나의 깨달음을 부여잡듯 밧줄을 쥐고 한 발 한 발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잠시 후,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보았다.

수없이 이 산을 오르는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풍경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
신포도가 알고보니 달디 단 포도였던 거다.


정상에 스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올라가는 나와 마주치지 않은 걸 보면 이미 다른 등산로로 하산한 게 틀림없었다. 정상에 서서 산등성이들을 바라보며 이 우연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평소처럼 포대능선을 오르지 않고 그냥 하산했다면 어땠을까. 정상을 목전에 두고 포기하고 내려가려던 그때, 고무신을 신은 스님들이 내 옆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 중 '파파야 세 개'라는 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이것을 잊지 말게.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을 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야.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태어나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잠시 또는 오래 그대의 삶에 나타나 그대에게 배움을 주고, 그대를 목적지로 안내하는 안내자들이지."
<지구별 여행자_류시화>


인도 여행 중 산속을 헤매다 만난 시인에게 수행자가 건넨 말이다. 이때 수행자는 배가 고프다며 시인의 배낭에 있던 파파야 세 개를 달라고 말하는데, 그 파파야는 시인이 충동적으로 산 거였고 그 외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인도의 구루지는 시인이 자신에게 파파야를 주기 위해 왔으며 자신은 그에게 배움을 주기 위해 만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날 나는 어떤 이유에선가 가보지 않았던 길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포기하려던 순간 세 명의 스님을 만났다. 엄밀히 얘기하면 만난 것도 아니다. 그저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우리가 어떤 영혼의 약속 때문에 그 시간, 그곳에서 마주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스님들이 나를 새로운 목적지로 이끈 안내자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생각했다. 스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잠깐 스쳐가는 인연에도 어떤 역할이 있는 거라면. 


엄마, 며느리, 아내, 딸, 친구, 동생, 선배, 후배, 동료...


그밖에도 이름 지을 수 없는 수많은 관계와 인연 속에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안내자일 때가 있을 텐데. 가르치려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겠다는 욕심도 없이. 그저 나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몇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럼 참 좋겠다고.




뱀 다리

네, 스님들은 저와 조건이 달랐습니다. 등산객들보다 훨씬 자주 이 길을 산책 삼아 다니셨을 테니까요. 스님들이 고무신 신고 산을 탄다고 해서 초행길인 제가 스님들처럼 안전하게 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요.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분들이 제 옆을 지나가자마자 제 안에 할 수 있다는 에너지가 막 차올랐다는 겁니다! 수행하며 산의 정기를 듬뿍 흡수한 분들 이어서였을까요? 인간의 신체 에너지는 1.5m 이내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가족 안에 우울한 사람이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산에서 만난 세 명의 스님에 대해 '인간은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므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영향을 미치며 살아간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잠시 나타나 저에게 배움을 주었다고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아름답잖아요. 세상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하고 기적 같은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요.


그렇잖아도 산에나 가볼까 생각하셨던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써서 여러분과 나누기로 약속되어 있다고요. 사실 그 산에서 스님들을 보는 순간 느꼈답니다. 써야겠구나 하고요. 여러분은 이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고, 댓글을 쓰는(응??) 역할을 맡으신 거고요. 이 과정에서 어떤 배움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얼굴도 모르는 우리가 서로의 삶에 잠시나마 안내자가 되어준다면. 참 멋질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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