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그린다는 것2

by 안녕

시나 소설이 작가의 내면세계를 투영하게 마련이듯 자화상은 그리는 이의 내면을 닮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화상을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 내보이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자화상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프리다 칼로의 얼굴에는 그녀가 겪은 육체와 내면의 고통이 연상되지 않을 만큼 강임함이 묻어난다.





마을북카페 나무에서 했던 여러 소모임들 중 드로잉 소모임이 있었다. 이전 마을도서관에서 그림그리는 소모임을 했었다고 하니 마을카페에서도 했으면 좋겠다던 몇몇 언니들의 요청이 있어 열었던 모임이었다. 독서 모임과 영어낭독 모임에 이어 세번째 만드는 소모임이었지만 평소 스스로를 소모임 브로커라고 생각하던 나는 '소모임 하나 더 만드는게 뭐 별거냐' 하는 심정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이 날은 여섯 번째 모임이었고, 주제는 '자기 얼굴 그리기'였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자기 얼굴을 보고 그리는 것이 누군가에겐 태어나서 처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휴대폰이나 카메라로 얼굴사진을 찍는 것이 흔해진 요즘이지만 자기 얼굴을 그리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가끔 대학로나 인사동 같은 곳에서 돈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그려놓은 그림들이 온통 유명인이나 예쁘고 멋진 스타들뿐이라 웬지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은 초상화감이 아니라는 생각에 선뜻 그려달라기가 쑥스럽다. 그래서 드로잉모임 하는 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 자화상 그리기였다.



분명 그리다보면 지우고 싶고, 고치고 싶어질테니 펜으로 작업하기로 했다. 잠시 막막한 기운과 어색한 웃음이 흐르고, 조금씩 펜을 쥔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점, 기미, 모공, 주름, 보이는대로 다 그려봅시다!" 외쳤지만, 생각보다(?) 모두들 깨끗한 얼굴이다.


단정한 선으로 그려 낸 머리카락과 단정한 얼굴.


힘있고 과감한 선의 얼굴.




사라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타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한 투명한 얼굴.



다들 그리기 어렵다며 응석(?)을 부렸던 자화상 작업.

맞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혼자 있을때 거울을 들여다보면 선뜻 내 얼굴을 그릴 엄두가 안 나 그냥 외면해버릴 때가 많다. 그리는 행위가 귀찮아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공이랑 모자 털실 그리다가 포기한 나의 자화상. 왜 하필 그날 털모자는 썼는지..


거울을 통해 보이는 얼굴의 이면에는 시간의 흐름과 내면의 감정이 존재한다. 무언가를 꿈꾸었던 과거와 이루지 못한 것이 존재하는 현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그 시간 말이다. 그 안에는 설렘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고, 또 그만큼의 체념과 포기가 있었다.


자신을 그린다는 것은 그렇게 자기 안에 구축된 시간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조금은 감추고 싶은 마음,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그린다해도 이해할 수 있는게 또 자화상 작업인 것 같다. 스스로 욕망하는 이미지를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림의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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