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그린다는 것

by 안녕

가끔 시를 쓰고 싶게 만드는 시를 만난다. 내가 시인이 되었다면 썼을 것만 같은 시들인데, 심보선의 시가 그랬다. 나보다 7살이 많고 외국에서 아내와 함께 유학을 했고, 현재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시인. 공통점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랬다.


시집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하고 어렴풋이 찾은 답.


'너무 생각이 많은게 나의 지병'


우리는 비슷한 병을 앓고 있었다. 생각의 결은 서로 달랐겠으나 너무 많은 생각에 시달리는 병 말이다.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종내는 생각에 지쳐 결론을 포기하고 마는 종족. 생각의 다른 이름인 고독을 짊어지고 사는 부류들. 그래서일까. 끄적거린 그림들 속에 숨겨진 언어들을 그의 시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하는 사물들
간혹 비극을 떠올리면 정말 비극이 눈 앞에 펼쳐졌다
꽃말의 뜻을 꽃이 알 리 없으나
봉오리마다 비애가 그득했다
그때 생은 거짓말투성이었는데
우주를 스쳐 지나는 하나의 진리가
어둠의 몸과 달의 입을 빌려
서편 하늘을 뒤덮기도 하였다....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_심보선'중





마을카페를 열기 전 윗동네의 마을도서관에서 활동할 때였다. 평소 화초를 잘 키우는 자원활동가 언니가 도서관에 식물 몇 뿌리를 가져왔다. 이름은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가느다란 가지에 명주실같은 뿌리가 달린 식물이었다.


꽃이 흙이 아니라 물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며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날.


작은 유리병 안에 담긴 채 창가에서 며칠을 나더니 어느 날 예쁜 자주색 꽃을 피워냈다. 평소 식물이라곤 길러본적 없는 내게 흙이 아닌 물 속에서 자라는 것도 모자라 꽃까지 피워내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한 뿌리를 조심스레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살펴보았다.


제 살던 곳에서 떨어져나와 낯선 물 속에서도 꽃을 피우고야마는 생명력이라니. 이 것이야말로 '우주를 스쳐 지나는 하나의 진리' 가 아닐까. 완벽한 어머니의 자궁에서 떨어져나와 세상에 내던져지는 인간의 모습 속에 '봉오리마다 그득한 비애'가 겹치는 것 처럼. 언젠가는 시들겠지만 아주 잠깐, 이렇게 빛날 수 있다면. 나 역시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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