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가는 길1
어린이날이 낀 연휴를 앞둔 3년 전 봄. 연휴 내내 집에서 밥 차리고 설거지나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문득 언젠가 지리산 둘레길이나 가봐야지 하고 농담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운동도 되고 좋은 공기도 맘껏 마시고.
재빨리 버스와 숙소를 예약했다. 마음에 쏙 드는 커다란 배낭과 평생 사본 적 없는 바람막이 점퍼를 샀다. 하루 만에 주문한 물건들이 도착했다. 박스에서 포장된 물건들을 꺼내는데, 주문할 때까지만 해도 설레던 마음이 갑자기 가라앉는다.
앞으로 6개월 동안 할부금을 갚아야 하다니!
게다가 짐 꾸리고, 새벽에 길을 나서고, 장시간 버스를 타고,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잠도 자야 하잖아.
휴식을 하러 떠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일을 또 하나 해치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휴에 혼자 여행을 갈 거라던 내 말에 ‘대단하셔’라며 비아냥거리던 남편의 말도 마음에 걸렸다.
출발 이틀 전. 가족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남편이 물었다.
“어디로 가?”
“지리산 둘레길”
그리고 침묵. 어색한 정적이 잠시 흐르더니 남편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는 당신이 간다는 얘기 듣고 좀 황당했어. 화도 나고”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황당했다. 이게 화까지 날 일인가? 귀찮게 느껴지던 여행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침착하자. 이런 분위기에 여행을 떠날 수는 없으니까. 최대한 감정을 누르고 물었다.
“왜?”
남편이 잠깐 멈칫하더니 대답한다.
“상의도 안 하고 통보하듯이 말하니까.”
그렇다. 나는 상의하지 않았다. 상의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이만큼 크는 동안 1년에 360일가량을 집에서 잤다. 나머지 날은 명절 때문에 시댁에서 잔 날이다. 요 몇 년 사이에서야 아이들을 두고 숙박교육도 가고, 혼자 여행도 가기 시작했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 봤자 지금껏 두 번 가본 게 다다. 한 번은 2년 전 추석 연휴 때 명절 노동을 끝내고 떠난 제주도 2박 3일이었고, 한 번은 홍대입구 게스트하우스에서의 1박 2일이 전부다. 이제 아이들도 컸고, 아이들조차 찬성하는 나의 여행을 왜 걸고넘어지는 걸까. 왜 통보하듯이 떠나면 안 되느냔 말이다.
갑자기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가 2박 3일 동안 없으면 아빠는 뭐가 불편해?”
남편이 잠깐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한다.
“아빠가 연휴 동안 계속 일이 있어서 너희들을 못 챙겨주는데 엄마도 없으면...”
둘째가 곧바로 치고 들어온다.
“우리 안 챙겨줘도 돼. 엄마가 밥 해 놓은 거 데워먹으면 되는데?”
아이들을 키운 보람이 있다. 남편은 당황한 듯 말이 없다. 혼자 궁지에 몰린 표정이다. 갑자기 측은해 보인다. 나까지 아이들에게 맞장구를 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 아빠는 좀 당황스러우셨을 수도 있겠다. 엄마가 미리 상의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남편은 여전히 말이 없다.
“아빠는 연휴 내내 일이 많아서 쉬지도 못하는데 엄마도 집에 없고. 그래서 너희가 걱정도 되고, 엄마가 아무런 상의 없이 결정하고 통보하듯이 말해서 화가 날 수도 있지.”
두 딸에게 내가 남편을 감싸는 모양새가 되었다. 남편이 아무 말이 없으니 나만 계속 말이 많아진다. 나는 남편을 보지 않은 채 아이들만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엄마는 1년 내내 집에서 밥하니까 며칠 정도는 밥 안 하고 좀 쉬고 싶어.
휴가가 필요해. 그러니까 일단... 갈 거야”
이미 아이들은 찬성이었기 때문에 그 말은 결국 남편을 향한 거였다. 물론 남편도 반대하지는 않았다. 미리 상의하지 않았던, 함께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아서든 그저 서운해서 해본 말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왕 가는 거 기분 좋게 보내주면 어떤가. 황당하다는 둥, 화가 났다는 둥 그런 말을 해서 나랑 아이들한테 점수만 깎이고. 하지만 남편이 아무 말도 안 했다면 나도, 아이들도 남편의 불편한 감정을 몰랐을 테지. 그렇게 생각하면 또 다행인 것도 같다. 속상한 감정은 이렇게 털어놓는 게 좋으니까.
출발 전날. 짐을 꾸려놓고, 마트와 빵집에서 간식거리를 사고, 2박 3일간 먹을 두 가지 종류의 볶음밥과 밑반찬을 새벽 2시까지 만들었다. 요일과 시간별로 챙겨 먹을 식단표를 만들어서 냉장고에 붙여두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겨우 두 시간쯤 눈을 붙이고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집 앞을 지나가는 1-1번 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6시 5분. 터미널 안은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로 새벽부터 북적거렸다. 뭔가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빈 속에 버스를 타면 속이 울렁거릴 것 같아 간단하게 요기를 하기로 했다. 버스 출발 시간이 7시였기 때문에 시간도 넉넉했다.
식당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지리산 공용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는 34번 탑승구 쪽으로 걸어갔다. 출발 시간이 20분이나 남아서인지 버스 안은 불이 꺼져 있고 문도 굳게 닫혀 있다. 너무 일찍 온 모양이다. 잠시 근처 대합실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다시 출발 5분 전 탑승구로 가니 버스 출입문이 때마침 열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버스 앞으로 우르르 몰린다. 게 중엔 캐리어를 끌고 가는 이도 둘이나 있다. 지리산 둘레길 가는데 캐리어라니. 사람들 참. 요즘은 숙소에 캐리어 두고 옷이랑 신발을 갈아 신고 가는 게 유행인가? 남이야 배낭을 메고 가든 캐리어를 끌고 가든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버스에 올라타니 입구에 선 기사가 티켓을 받아서 한쪽을 탁 뜯어 다시 준다. 새로 산 바람막이 점퍼 주머니에 대충 티켓 쪼가리를 구겨 넣고 자리를 찾았다.
앞에서 다섯 번째 줄 오른쪽 좌석. 이미 창가 쪽에는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다. 등산복 차림에 별다른 짐도 없이 허리에 작은 가방 하나만 걸친 차림이다. 어디선가 아마추어들은 배낭에 온갖 먹을 것과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가지만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은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오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왠지 고수의 향기가 났다.
왼쪽 앞 좌석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연신 과자를 집어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는 기다란 원피스에 1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통굽힐을 신었다. 오늘이 석가탄신일이라 어쩌면 평평한 논 가운데 자리 잡았다는 사찰이나 쉬엄쉬엄 둘러보려는 걸까. 지리산 쪽이 저런 차림으로 놀러 갈 데이트 코스는 아닌 것 같은데. 커다란 배낭에 등산 양말과 등산화까지 신은 내 차림새가 꽤 우쭐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리산 공용버스터미널행 버스에 함께 탄 사람들 중에 내가 제일 준비를 열심히 하고 떠나는 것 같았다. 옆자리의 아저씨만 빼고.
버스 앞쪽에는 가족 단위의 승객들도 탔는데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도 있다. 저렇게 작은 아이도 지리산 둘레길을 가다니 대단하다. 저만할 때는 놀이공원이나 좋아할 나이인데. 어쩌면 지리산에 걸친 남원이나 산청 쪽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사실지도 모르지. 어쨌든 긴 연휴인 데다 어버이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리산까지의 예상 소요시간은 3시간 20분. 모자란 잠이나 보충하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배낭에 챙겨 온 안대를 꺼내 눈을 가렸다.
한참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여전히 버스는 달리는 중이었다. 벌써 출발한 지 4시간이 넘었는데. 오는 길이 막혔던 모양이다. 다시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잠을 청했다. 얼마 후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났는지 속도가 느려지고 움직임이 달라진다. 이제 거의 도착했나 보군. 안대를 벗고 시간을 확인하니 거의 5시간이 걸렸다. 이렇게나 오래 걸리다니. 창밖을 바라보니 예상했던 지리산의 자그마한 터미널 대신 도시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들과 큰 터미널이 보였다. 지리산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시골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짐을 챙기고 내릴 차비를 하는데, 기사가 외친다.
"자, 울산입니다. 내리세요!"
뭐라구? 사람들은 짐을 들고 바삐 내린다. 마지막까지 버스에 남은 나는 버스기사에게 떠듬떠듬 물었다.
"여기... 울산이에요?"
"네"
얼떨떨한 상태로 버스에서 내린 나는 버스 행선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이럴 수가. 처음 동서울터미널에서 타려고 했던 청록색의 함양 지리산 고속버스가 아니다. 그 버스는 분명 옆면에도 커다랗게 지리산 둘레길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대체 왜 이 버스를 탄 걸까.
문득 제주도를 가기 위해 탑승 수속까지 마치고 비행기로 오르기 위한 계단 바로 앞에서 내게 이런 질문을 하던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이거 제주도 가는 거 맞아요?"
"아, 네"
그때 나는 뭘 그런 걸 묻나 싶은 표정이었던 것 같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 앞에서 마치 "이 버스 종로까지 가요?"하고 묻는 것처럼 쓸데없는 질문 같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아셨던 거다. 자신에 대한 과신이 어떤 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그러니까 이 버스에 안 어울리는 사람은 캐리어를 끌고 오거나 하이힐을 신은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배낭에 등산화를 신은 나였던 거다.
-'지리산 가는 길' 계속